與 여성 공천 검토, 박영선 등 물망에
국민의힘, 나경원·윤희숙·조은희·이혜훈 등 후보로
김종인·안철수, 힘겨루기…“국민의힘 중심” “신당 창당”
[홍영식의 정치판] 여성후보들이 흔드는 서울시장 보선판
[홍영식 대기자] 서울시장 선거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민심 풍향계 역할을 해 왔다. 비단 전국 유권자의 약 5분의 1(19.3%, 지난 4·15 총선 기준 약 847만 명)을 차지하고 있다는 숫자적인 의미만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서울은 지지하는 특정 정당과 정치인 없이 그때그때 정치 상황과 이슈에 따라 투표하는 ‘스윙 보터’들이 많다. 영호남과 달리 특정 정당에 대한 편향성이 적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 시행 이후 특정 정당이 서울시장 직을 꾸준히 차지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의 표심이 전국 단위의 선거, 특히 대선 판도를 좌우해 왔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역대 선거가 이를 증명한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실시 이후 서울시장을 차지한 정당이 그다음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92년 14대부터 2017년 19대까지 여섯 번 실시된 대선 득표 결과를 보면 2012년 한 차례만 빼고 대선 승리자는 서울에서도 이겼다. 역으로 말하면 서울에서 이겨야 대선에서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론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하는 경우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고쳐 내년 4월 예정된 서울시장 출마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도 서울시장 선거가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서울시장 보궐 선거는 민주당 소속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실시된다. 2022년 대선을 11개월 정도 앞두고 치러지는 전초전 성격을 갖는 만큼 욕먹을 것을 감수하고라도 후보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당이 처한 상황이다.

그런 만큼 민주당으로선 박 전 시장의 성추행과 약속 번복으로 악화한 민심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4선의 우상호 의원, 재선의 박용진·박주민 의원, 재선 의원 출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거론된다.

주목되는 것은 여성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 여성 후보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당 지도부도 이를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 여성 후보 공천론은 당이 처한 불리한 상황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미투’ 논란에 이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이에 따른 보궐 선거, 무공천 약속 번복 등은 민주당으로선 악재다. 미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2030세대와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광역단체장 잇단 ‘미투’…2030, 여성 표심 고려 불가피”

서울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박 전 시장 사태 이후 지역구 여성 유권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며 “여성 후보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경선을 거쳐야 하는 만큼 전략 공천 등 인위적인 방법으로 여성 후보를 낼 수는 없다”며 “다만 분위기가 그런 쪽으로 흐르고 국민의힘에서 여성 유권자를 내세운다면 경선 과정에서 당원들이 잘 판단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당내 여성 후보들의 경쟁력도 상당하다는 점도 여성 후보론에 무게를 싣는다. 오랜 여의도 정치 경력에 부처장을 맡아 행정 경험도 쌓았다.

당 지도부도 여성 후보론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증 과정에서 여성에게 유리하도록 판을 짜고 있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1월 2일 고위 전략회의 뒤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가 11월 중순까지 설치돼야 한다”며 “검증위가 여성과 청년의 비율이 50% 이상 되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 참석자들의 동의가 있었다”고 했다.

거론되는 여성 후보들이 공직에 있다 보니 아직 출마에 대한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박 장관은 지난 10월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대해 “언론에서 많이 거론되지만 내가 맡고 있는 직분에 충실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거기(출마)에 대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 정말로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연말로 예상되는 개각 때 박 장관이 장관직을 그만둔 뒤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국민의힘도 고심이 크다. 거론되는 후보는 많지만 아직 ‘이만하면 여당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줄 만한 후보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관건은 국민의힘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출마하느냐 여부다. 이들은 대선으로 직행하겠다는 뜻이 강하지만, 변수는 있다. 안 대표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서울시장 불출마 뜻을 밝혀왔으나 최근 “정권 교체를 위해 어떤 역할이라고 하겠다”고 말해 여지를 남겨뒀다. 그러면서 신당 창당론을 꺼냈다. 국민의힘으로 들어가지 않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시민사회 세력과 힘을 합해 신당 창당을 통한 문재인 정권 교체에 나서자는 뜻이라고 한 측근은 전했다.

안 전 대표 측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은 “제로(0)와 무조건은 지금 정치 지도자들이 (얘기)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여지를 남겼다. 안 대표의 측근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국민의힘과의 연대에 대해 “명분과 내용이 중요하다”고 했다. 두 정치 세력이 단순하게 합치는 게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국민의힘 간판으로 출마할 수 있느냐도 관심사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 등 영입 얘기도 나온다. 국민의힘 내에선 당내 후보들과 안 대표, 금 전 의원, 김 전 부총리, 염 전 총장 등을 포괄한 ‘반문(반문재인)’ 연대를 구성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이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완전 국민 경선제로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방안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국민의힘, 안철수·금태섭 등 묶은 ‘반문연대론’ 힘 얻어

국민의힘 내 일각에서도 여성 후보론이 제기된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본회의 5분 발언’으로 주목 받은 윤희숙 의원,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3선 출신의 이혜훈 전 의원 등이다. 민주당이 여성 후보를 내세운다면 맞대응 카드로 유효할 수 있는 후보들이라는 게 당의 판단이다. 나 전 원내대표는 “지금은 개인이 아니라 당이 우선이다. 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고민할 것”이라며 출마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 전 의원도 “고민하고 있다”며 “고민이 거의 막바지에 왔다”고 했다.

조 구청장은 최근 한경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 최초로 여성 부시장을 지냈고 서초구청장으로 7년째 일하는 등 10년간 서울 행정을 맡으면서 현장에서 숱한 단련을 받았으며 문제의 핵심을 짚는 직관력도 키웠다”며 “기회가 온다면 경험을 바탕으로 잘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 후보들의 서울시장 도전은 2006년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테이프를 끊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2018년 제7회 지방 선거 때까지 후보가 나왔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2010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 맞붙어 패배한 바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땐 추 장관과 박 장관이 당 경선에서 대결해 박 장관이 이긴 바 있다. 하지만 박 장관은 시민 후보로 나온 박원순 전 시장과의 단일화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해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지만 본선에서 박 전 시장에게 밀렸다. 2018년 민주당 서울시장 당내 경선 땐 박 장관이 다시 도전했으나 박 전 시장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가 많다. 거론되는 여성 후보들 모두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다. 여야 모두 ‘다크호스’가 아니라 애초부터 선거판을 흔드는 주역으로 등장했다. 여성 최초의 서울시장이 탄생할지 주목된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2호(2020.11.09 ~ 2020.11.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