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세 시장의 동문서답 2


‘시장 원리’·‘내 집 마련 욕구’ 인정해야
전세난에 귀 닫은 정부… 월세 지원, 궁극적인 해결법 아냐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한경비즈니스 칼럼=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전세 시장은 혼란에 빠져 있다. 서울 강서구 어느 단지에서는 전세를 얻으려는 사람이 9명이나 몰려 제비뽑기로 전세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정했다고 한다. 경제 수장이 매도한 아파트의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웃돈을 주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러면 현재의 전세난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아쉽게도 단기적으로는 없다. 현재의 전세난은 정부의 정책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기 때문에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이지만 현 정부는 이를 인정하지도 않고 본인들이 만든 정책을 뒤집을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본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기존의 정책을 흔들려는 세력의 음모로 생각하기 때문에 귀를 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정부가 고민 중인 월세 지원은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전세는 나쁜 제도이니 착한 제도인 월세로 살아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실제로 주머니 속의 현금을 내야 하는 사람은 세입자 본인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에 호응해 전세가 아니라 월세를 선호하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공공임대주택, 중산층에 제한적

고품질의 공공임대주택 공급도 듣기에는 좋지만 중산층의 수요를 잡아두기에는 제한적이다. 임대주택의 건설비를 증액해 플라스틱 변기 덮개 대신 비데를 설치하고 현관에 자물쇠가 아니라 디지털 도어 록을 단다고 고급 아파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어진 지 10년도 되지 않은 2기 신도시에 가서 임대 아파트와 인근에 있는 분양 아파트를 둘러보라. 단지 분위기 자체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비데나 디지털 도어 록이 보이지 않는 건물 밖에서도 단지 관리 수준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자기가 소유하는 집과 자기 것이 아닌 집의 차이다.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지향한다. 다만 경제적 한계로 인해 그 욕망을 자제할 뿐이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에게는 공공 임대주택 공급은 좋은 해법이 되겠지만 소득이 상대적으로 많은 중산층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그마저도 단기간 내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할 방법이 없다. 관련 법을 정비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그것이 지어질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을 설득하고 터를 파 공사하고 입주하는 데 5년의 시간도 빠듯하다. 지금 배고파 죽겠는데 몇 년 후 맛집에 데려갈 테니 그때까지 참으라는 이야기에 공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실이 난 빌라나 다가구 주택을 공공기관이 매입하거나 임대해 전세로 공급한다는 아이디어도 현실적이지 못하다. 양질의 주거지를 원하는 실수요자의 눈높이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혈세만 낭비하는 결과가 된다.


현재 문제의 본질은 전셋값 상승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전셋값이 폭등하는 이유가 전세 기간이 실질적으로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4년 동안 전세금을 올리지 못하는 집주인들이 4년 치 전세금을 한꺼번에 올려서 그렇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인간은 탐욕의 동물이다. 매매가 1억원짜리 집이라도 10억원에 전세로 들어온다는 사람이 있다면 마다할 집주인은 없다.
전세난에 귀 닫은 정부… 월세 지원, 궁극적인 해결법 아냐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역대 정권, 매매 시장보다 임대 시장 안정

하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집주인의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가격에 전세로 살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장의 기능이다. 후진 집을 비싸게 전세 놓으려는 집주인의 탐욕과 좋은 집을 싼값에 전세로 살려는 세입자의 탐욕이 시장의 기능에 의해 조정돼 시장 가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장의 기능이 임대차 보호2법으로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문제의 본질은 전셋값 상승처럼 보이지만 진짜 핵심은 전세 물량의 실종이다.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도 나타나고 이사 가기 싫어도 다른 집으로 가야 하는 사람도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중에 전세 물건이 없으니 전셋값이 오르는 것이지 전셋값이 오르니 전세 물건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 시장에 전세 매물이 없어진 원인을 제거하고 전세 매물이 쏟아져 나오게 하면 전세 시장은 쉽게 잡을 수 있다. 전세 매물이 없어진 원인은 100% 정부 정책에 기인하므로 정부만 생각을 바꾸면 된다.


현 정부 들어 집값을 잡으려는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정책의 조화보다 당장의 결과를 보여주려는 조급함 때문에 무리수를 둔 것도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시장에서 전세 매물이 사라지고 있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바위가 나타나면 바위가 부서질 때까지 머리를 부딪치는 것을 ‘소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바위를 돌아갈 줄도 알고 더 나아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을 알았다면 그 길을 돌아가는 ‘지혜’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주택을 수요 이상으로 공급하면 매매 시장이나 전세 시장 모두 안정되겠지만 지금 당장 전셋값과 집값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주식 투자는 겁이 나면 하지 않아도 된다. 주위 동료가 수익을 얼마 냈다고 해도 약간의 배 아픔만 참으면 된다. 주택 시장도 본질은 비슷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서 아파트에 투자한 동료가 수익을 냈다고 자랑해도 참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주택 임대 시장은 다르다. 집을 여러 채 사 세금 폭탄과 집값 하락 가능성에 전전긍긍하는 동료의 모습에 고소해 하는 것도 잠깐이고 본인은 전셋값 폭등이라는 후폭풍을 맞게 되는 것이다. 본인이 참여하지도 않은 시장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주택 임대 시장이다. 이에 따라 역대 정권들은 매매 시장 안정에 앞서 임대 시장 안정에 주력했던 것이다.


인간의 질투는 아담의 아들인 카인에게부터 나타난 오래된 인간의 본능이다. 어쩌면 탐욕의 역사보다 더 길 수도 있다. 결국 배고픔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배 아픔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배 아픔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면 배고픔만이 기다리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의 말과 같이 우리가 맛있는 빵을 먹는 것은 제빵업자의 이웃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맛있는 빵을 싸게 먹으려면 빵집들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무주택자의 친구는 (전세를 시장에 공급하는) 다주택자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