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스몰 브랜드의 힘]
-스토리·라이프스타일에 끌리는 소비자들…‘제주맥주’, ‘무신사’처럼 팬덤 형성하며 성장
‘취향’과 ‘경험’ 저격…팬덤 만드는 스몰 브랜드의 힘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작은 가게가 가진 힘이 커지고 있다. ‘취향’과 ‘경험’이 소비 시장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지금, 철학과 스토리로 무장한 ‘스몰 브랜드’가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다변화되는 세상 속에서 소비자들의 취향은 세분화됐다. 그들은 평준화된 소비보다 차별화된 경험을 중시했다. 그 변화 속에서 구독 경제, 맞춤형 소비, 골목 상권의 부흥, 큐레이션의 발달 등 다양한 현상과 트렌드가 발현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형 자본 대신 ‘스몰 브랜드’가 있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소득 증가는 이런 현상을 더 가속화했다. ‘킨포크’, ‘매거진 B’, ‘모노클’ 등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중심의 잡지가 등장했고 소비자들은 대형 서점과 프랜차이즈 빵집 대신 독립 서점과 동네 빵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기업 역시 스몰 브랜드처럼 소비자들의 취향을 빠르게 반영했고 오프라인 공간을 철학과 경험의 공간으로 재무장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시리즈나 아모레퍼시픽의 ‘아모레 성수’ 등이 대표적인 예다.
‘취향’과 ‘경험’ 저격…팬덤 만드는 스몰 브랜드의 힘
◆스몰 브랜드가 도시를 바꾼다

스몰 브랜드는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고 젊은이들을 그러모으는 주체가 된다. 프랜차이즈가 많은 대형 상권보다 골목 상권이 소비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남들이 찾기 어려운 입지에 있어도, 간판이 없어도 소비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핫 플레이스를 발견하고 모여든다. 자연스럽게 상권 트렌드도 변했다. 거대 자본이 들어선 중심 상권이나 가두 상권의 가치는 떨어졌고 골목 상권이 콘텐츠와 감성을 내세우며 떠올랐다.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모노클’은 매년 ‘삶의 질 평가’를 통해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한다. 모노클이 좋은 도시를 선정하는 기준을 보면 ‘스몰 브랜드’가 도시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모노클은 ‘대형 프랜차이즈의 수’가 많으면 감점하고 작은 ‘독립 서점’이 많으면 점수를 준다. ‘소규모 사업을 얼마나 신속하고 간편하게 열수 있는지’ 역시 중요한 기준이다. 도시의 인프라보다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경험의 질에 방점을 둔 것이다.

‘핫 플레이스’ 역시 다양한 콘텐츠를 담은 작은 가게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결정된다.

을지로가 새롭게 태동하던 2018년 1월, 지금의 을지로를 만든 젊은 크리에이터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손님이 찾지 않을 것 같던 낡은 산업화의 골목에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이 모여든 이유는 임차료가 저렴하고 권리금이 없어서였다. 자본이 부족했던 이들은 구도심의 낡은 껍질을 벗지 못한 을지로를 그대로 보존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냈다.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핫 플레이스’가 모여 있는 을지로3가 수표동 일대의 88.2%가 보수나 재건축이 필요한 노후·불량 건물이다.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던 서울의 중심에서 새로운 문화가 생산됐고 독특한 공간들이 탄생했다. 1층에는 인쇄소나 노포가 자리하고 있고 젊은 상가들은 3층이나 4층에 터를 잡고 있다. 다른 골목 상권과 달리 중심이 되는 거리도 없다. 낡은 건물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 자체가 곧 을지로의 정체성이 됐다.

서울뿐만 아니라 빈집과 노후화로 골머리를 앓는 지방 역시 마찬가지다. 대전은 그동안 특색 없고 재미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하물며 ‘노잼 도시(재미없는 도시)’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재개발만 기다리며 낡아 가던 소제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취향’과 ‘경험’ 저격…팬덤 만드는 스몰 브랜드의 힘
낡은 동네 ‘소제동의 변화’를 만든 주체는 대전시나 대형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아니었다. 소제동의 숨은 가치를 발견한 익선다다는 2014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한옥촌 ‘익선동’을 부활시킨 스몰 브랜다. 이들은 대전에 잠재돼 있던 고유의 모습을 끌어내 ‘철도’ 도시였던 대전의 100년 전과 현재의 모습을 공존하게 만들었다. 익선 다다는 1920년대부터 시작된 소제동 관사촌에 쌓인 시간과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회색빛 석기와’를 활용한 독특한 카페와 식당을 만들어 냈다.

박한아 익선다다 대표는 스몰 브랜드가 도시를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스토리’를 담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단순히 시장에서 핫한 카페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오면 대중은 오히려 식상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공간이 지역의 스토리를 얼마나 새롭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도시를 온전히 새롭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스몰 브랜드에 철학과 스토리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마케터 제레미 D. 홀든은 ‘팬덤’을 꼽는다. 그는 “팬덤이야말로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고 작은 아이디어로 시장의 흐름을 단번에 뒤엎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스몰 브랜드는 취향을 공유하는 소수의 마니아를 형성하며 떠오르기 시작한다.
‘취향’과 ‘경험’ 저격…팬덤 만드는 스몰 브랜드의 힘
◆철학과 스토리가 형성한 ‘팬덤’

지난 몇 년간 맥주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한 ‘제주맥주’는 시작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 팬덤을 모았다. 맥주업계 최초로 직접적 지분 투자 방식을 활용해 수제 맥주 팬층에게 ‘주주’가 될 기회를 제공했다. 2017년 펀딩을 시작한 제주맥주는 당시 한국에서 진행된 주식형 크라우드 펀딩 중 역대 최단 시간인 11시간 만에 목표 금액 7억원을 달성했다. 당시 펀딩 ‘대란’으로 입소문이 난 제주맥주는 2017년 매출액 7억원에서 2018년 74억원으로 급격히 성장했다. 2019년에도 매출액 84억원을 기록했다. 수입 맥주가 차지하고 있던 수제 맥주 시장에서 제주맥주 탄생 취지에 공감한 팬덤은 기업에 직접 투자까지 단행하며 함께 성장했다.

커피계의 ‘애플’이라고 불리는 블루보틀 역시 처음에는 소수의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스몰 브랜드였다. 블루보틀은 원두를 섞어 맛을 평준화하던 다른 카페들과 달리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싱글 오리진(하나의 원두로만 내린 커피)’을 원칙으로 했다. 그 결과 블루보틀은 ‘커피 맛을 아는 사람들만의 브랜드’에서 ‘세련되고 멋진 사람들이 즐기는 브랜드’로 시장에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2년만 해도 하루 매출이 고작 70달러였던 블루보틀은 현재 스타벅스를 위협하는 빅 브랜드로 성장했다.

한국 1위 온라인 패션 쇼핑몰 무신사 역시 패션을 좋아하는 소수의 마니아로 시작했다. 신발 마니아였던 조만호 무신사 대표는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의 한정판 운동화 사진과 다양한 패션 정보를 소개하며 패션과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통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 커뮤니티에 커머스 기능을 구축하자 ‘패션을 아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인식 아래 Z세대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캠핑 용품 브랜드 헬리녹스는 글로벌 캠퍼들 사이에서 ‘명품’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텐트 폴 시장점유율 90%에 달하던 아버지 회사(동아알루미늄)의 기술력을 아들이 브랜드로 진화시켰다. 캠핑 마니아들 사이에서 ‘캠핑 체어의 대명사’였던 헬리녹스는 슈프림·나이키·포르쉐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수의 글로벌 브랜드에서 협업 러브콜을 받았다.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헬리녹스의 캠핑용 의자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디자인이나 기능을 가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kye0218@hankyung.com

[커버스토리=스몰 브랜드의 힘 기사 인덱스]
-'취향'과 '경험' 저격... 스몰 브랜드가 주도하는 소비시장
-타일 아니라 '문화'를 파는 타일 회사... 사옥 갤러리 문화·예술 명소로
-'캠핑 의자의 샤넬'... 압도적 기술력·독보적 디자인으로 마니아 사로잡다
-'인생 맥주'에 콘텐츠를 더하다... 제주 공장 투어·원데이클래스 운영
-'나만의 브랜드' 한 곳에... 신진 디자이너 해외 진출 통로 역할
-매출 2억원 동네 양조장 10년 동안 100배 성장... 옛맛 복원하고 디자인 차별화
-"누구나 사는 빅 브랜드 만족 못하는 사람들... 차별화된 가치로 승부해야죠"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1호(2020.10.31 ~ 2020.11.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