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제도화 움직임…바이든 정부 이후 비트코인 상승 기대감 높아
‘코인 광풍’ 재현하며 비트코인 고공 행진…2018년과 뭐가 다를까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2018년 불었던 ‘코인 광풍’을 재현하고 있다. 11월 13일 한국 거래가가 1800만원을 넘어서며 연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1800만원 선을 넘은 것은 3년여 만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가격은 1800만원을 넘어섰다. 글로벌 비트코인 시황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11월 12일 1만6369.99달러(약 1825만원)를 기록했다.


4000달러 후반대까지 떨어지며 바닥을 쳤던 지난 3월 말과 비교하면 7개월 만에 260% 상승했다. 올 초와 비교할 때 11% 상승한 코스피지수나 8% 상승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등 전통 금융 지표와 비교할 때 비트코인의 상승세는 더욱 뚜렷하다.


2018년 때로 가격이 회복했지만 달라진 점도 있다. 광풍 이후 폭락했던 당시 상황과 달리 제도권과 글로벌 금융 기업에서도 가상화폐에 대한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비트코인이 자산 시장에서 인정받으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트코인은 왜 오를까. 이번엔 무엇이 다를까.
‘코인 광풍’ 재현하며 비트코인 고공 행진…2018년과 뭐가 다를까
#지난 7월 미국 통화감독청(OCC)은 뱅크오브아메리카·씨티은행·골드만삭스 등 은행의 가상 자산 수탁 서비스를 허용했다. 이 결정으로 미국 은행들은 암호화폐 전용 창구를 열고 가상 자산을 주식·채권 등 금융 자산이나 부동산 등 실물 자산처럼 수탁할 수 있게 됐다. 금융회사가 암호화폐를 경계하던 과거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싱가포르 최대 상업은행 DBS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통화청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디지털 자산 거래소에서는 비트코인·비트코인캐시·이더리움·리플 등 주요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지원할 예정이다. 운용 자산 기준 동남아 최대 은행인 DBS의 지난해 자산 규모는 5800억 달러(약 646조7000억원)에 이른다. 통화청의 승인이 떨어지면 은행에서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가 유통되는 셈이다.



앞선 두 사례처럼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고 있다. 독일 정부도 은행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은행이 고객에게 암호화폐 수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은행 스탠더드차타드도 당국의 승인을 받아 올해 말부터 수탁 서비스를 시험 운영한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중국건설은행은 미국 달러화나 비트코인으로 거래할 수 있는 30억 달러(약 3조3450억원) 규모의 디지털 채권을 발행할 계획이다.
‘코인 광풍’ 재현하며 비트코인 고공 행진…2018년과 뭐가 다를까


◆페이팔,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는 시작에 불과”




막대한 이용자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회사들이 비트코인을 수용하고 있는 것 또한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됐다. 특히 지난 10월 세계 최대 간편 결제 업체 페이팔의 발표가 기폭제가 됐다.


페이팔은 이른 시일 내에 모든 고객이 페이팔 지갑과 연동해 가상 자산을 거래하고 보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해외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나아가 2600만 개에 달하는 페이팔 가맹점에서 비트코인 결제를 지원하면 파급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페이팔이 지원하기로 한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이더리움·비트코인캐시·라이트코인 등 4종이다. 페이팔이 비트코인을 품자 대기업이 암호화폐의 적법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좀처럼 1만2000달러(약 1338억원)를 넘지 못하던 비트코인 가격은 단숨에 1만3000달러대까지 올라섰다.



암호화폐 전문 미디어 더블록에 따르면 댄 슐만 페이팔 최고경영자(CEO)는 3분기 기업 실적 발표 자리에서 “공개된 신규 암호화폐 산업은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이와 관련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암호화폐 유형을 추가 지원하기 위해 규제 기관과 협력 중”이라며 암호화폐 사업 확대 의사를 밝혔다.



아마존 산하 동영상 중계 플랫폼 트위치 역시 비트코인 결제를 재개했다. 사용자 20억 명을 보유한 페이스북이 리브라 어소시에이션과 자체 암호화폐인 리브라 개발을 지속하고 있는 점 또한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계적 플랫폼인 페이팔·페이스북·트위치 등의 이용자를 기반으로 암호화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는 희망이 반영되자 비트코인이 들썩인 것이다.



◆바이든 경제팀, 암호화폐 전문가 대거 영입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도 호재가 됐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의 경제팀에 암호화폐를 비롯해 가상 통화에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암호화폐 전문 외신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인 캠프 경제팀에는 게리 겐슬러 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을 포함해 가상 통화에 친화적인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겐슬러 전 위원장은 미 중앙은행(Fed)과 은행 및 증권 감독 기구 등 금융 기관 검토 팀의 책임자로 낙점됐다. 겐슬러 전 위원장은 최근 미국 의회에서 페이스북의 가상 통화 프로젝트 ‘리브라’가 적법한 보안 요건을 갖췄다고 증언한 바 있다.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교수도 암호화폐의 근간인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업계에 미칠 영향을 꾸준히 연구해 왔다.


이 밖에 미국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서 블록체인·암호화폐 규제 틀 마련을 주장한 메흐사 바라다란 UC어바인 교수, ‘디지털 달러’ 개념의 창시자인 레브 메난드 컬럼비아대 교수 등이 포함됐다. 제도권 진입에 끝내 실패했던 2018년과 달리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부정적인 시각을 보냈던 글로벌 금융업계도 태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간은 “금과 비트코인을 유사하게 보는 밀레니얼 세대의 시각이 비트코인 가격의 장기 상승세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또한 지난 5월부터 JP모간은 미국의 대형 가상 통화 거래소 코인베이스와 제미니에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2017년 JP모간이 “비트코인은 사기”라며 “결국은 무너질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태도다.


JP모간 측은 10월 보고서를 통해 “패밀리 오피스 등 기관투자가들이 비트코인을 금의 디지털 대체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투자 포트폴리오에 BTC를 추가하는 기관투자가들이 늘고 있다”며 “미국 암호화폐 헤지펀드 그레이스케일이 운용하는 비트코인 신탁의 수요는 이미 금 ETF 수요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JP모간의 분석처럼 기관투자가들은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를 노리고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 시장에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넘쳐나자 투자처를 고민하던 투자자들이 가상 자산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글로벌 자산 운용사 피델리티그룹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비트코인(BTC·시총 1위)과 전통 금융 자산들과의 가격 상관관계는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델리티 디지털에셋은 지난 10월 보고서를 통해 “2015년 1월부터 2020년 9월까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트코인의 차별화된 리스크 및 수익 요인, 사용 사례로 인해 장기적으로 전통 금융 자산과 낮은 상관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며 “2020년 비트코인이 기관 포트폴리오에 통합되기 시작하며 다른 자산과 점차 상관관계가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금리가 0에 가까울수록 비트코인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비트코인을 예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피델리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상장 기업 중 비트코인을 예비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곳은 18개로, 이들은 60만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약 10조원에 달하는 규모다.
‘코인 광풍’ 재현하며 비트코인 고공 행진…2018년과 뭐가 다를까


◆CBDC 시대 개막, 암호화폐에 득일까 실일까



화폐는 권력이자 자본주의 시스템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이다. 텔레그램과 페이스북이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암호화폐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강력하게 제동을 건 이유다.


디지털 화폐가 보편화되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금융·통화 정책이 힘을 잃을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리브라 같은 암호화폐에 자금이 모이면 시중 은행에서 돈이 빠져나가 지급 능력을 잃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흥국에 금융 위기나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 자국 화폐에서 가상화폐로 갈아타는 ‘뱅크런’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각국 중앙은행은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인 CBDC는 암호화폐나 민간 기업이 만든 디지털 화폐와는 차이가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통제하며 법정 화폐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 가격 변동성이 크고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는 일반 암호화폐와 달리 CBDC는 국가가 가치를 보장하고 거래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


국가가 모든 화폐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화폐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등에 따르면 전 세계 66개국 중앙은행 가운데 80% 이상이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R&D)에 돌입했다.



카리브해에 자리한 바하마는 가장 먼저 중앙은행 주도의 디지털 화폐인 ‘샌드달러(Sand Dollar)’를 전국적으로 상용화했다.



1등은 빼앗겼지만 CBDC 개발과 확장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국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선전시와 함께 디지털 화폐 대규모 공개 테스트를 실시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과거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지역의 상점마다 알리페이나 유니온페이 결제 시스템이 깔렸듯이 향후 중국인이 많이 가는 곳마다 법정 디지털 위안 결제 시스템이 널리 보급될 가능성도 높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의 나라 밖 결제를 통해 기축 통화인 달러의 영향력을 줄이고 위안화의 국제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중국이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오래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자리에 올라섰지만 국제 결제 수단으로서의 위안화의 위상은 아직 초라한 수준이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 8월 국제 지급 거래에서 위안화의 비율은 1.91%에 그쳐 달러(38.96%), 유로(36.04%), 파운드(6.7%)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디지털 유로’ 도입 여부를 내년에 결정하기로 했다. Fed도 관련 연구를 강화하면서 시범 운영 계획을 논의 중이다.


CBDC에 미온적이었던 호주 중앙은행도 CBDC 실험에 돌입했다. 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호주중앙은행은 이더리움 기반의 분산 원장 기술(DLT)을 활용한 CBDC 발행을 준비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호주중앙은행을 비롯해 커먼웰스은행·내셔널호주은행 등 민간 은행과 이더리움 기술 업체인 컨센시스가 참여한다.




한국은행은 올해 들어 디지털 화폐(CBDC) 파일럿 테스트를 추진하는 등 이전과 달리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CBDC 도입을 바라보는 반응은 엇갈린다. CBDC가 확대되면 비트코인 등 ‘탈중앙화’를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오히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자산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공존한다.



암호화폐 전문 외신 AMB크립토는 CBDC가 비트코인에 대해 단기 강세 심리를 형성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 가격 하락과 시가총액 감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세계 최대 디지털 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배리 실버트 CEO는 CBDC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인프라 확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버트 CEO는 “향후 80여 종의 CBDC가 나온다면 모든 금융회사들은 이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거래할 금융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이러한 인프라가 구축되면 비트코인 등 일반 암호화폐도 이를 이용할 수 있을 것”라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3호(2020.11.16 ~ 2020.11.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