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바이오·헬스케어로 눈 돌리는 기업들
-포스코 등 ‘중후장대’ 기업, 벤처 육성
-온라인 쇼핑몰·식품 회사도 신약 개발 목표로 투자
한컴과 포스코, 오리온의 공통점은?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제약·바이오·헬스케어 산업을 새 먹거리로 삼는 기업이 늘고 있다. 중후장대(정유·철강·조선) 기업을 비롯해 식품 회사도 바이오·헬스케어로 눈을 돌리는 중이다.

한국의 양대 정보기술(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8월 ‘데이터 3법(개정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헬스케어 산업 진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인터파크·한컴그룹, 제약·헬스케어 중점 육성

한국 기업들 중 새 성장판인 제약·바이오산업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 착실히 준비 중인 곳으로는 인터파크를 꼽을 수 있다. 인터파크는 1996년 한국 최초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한 이후 전자 상거래 기업 간 경쟁이 심화하자 2017년 ‘인터파크 바이오융합연구소’를 세우며 신산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인터파크 바이오융합연구소는 오가노이드(유사 장기)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19년 12월 오가노이드를 통한 유전자 조작법 전문가로 꼽히는 구본경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 박사를 자문 교수로 위촉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3차원적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장기의 유사체다. 장기의 실제 조직과 닮아 약물 효과나 질병 원인, 생리적 반응 등을 연구할 때 사용한다. 인터파크 바이오융합연구소는 2018년 11월 연세의료원과 오가노이드 정밀의학공동연구단을 세우기도 했다.

구 박사는 “오가노이드는 신약 개발 효율을 높이고 동물 시험을 줄여 관련한 윤리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오가노이드 연구를 기반으로 환자 맞춤 치료는 물론 궁극적 목표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루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파크는 지난 7월 바이오융합연구소를 분사해 자회사 ‘인터파크바이오컨버전스’를 설립하며 제약·바이오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기술 혁신) 전략과 기존 바이오융합연구소의 오가노이드 기술을 활용해 항암 신약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화이자 한국·일본 메디컬 디렉터 출신의 이상윤 내과 전문의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10월 말 표적 및 면역 항암제 개발 전문 기업 비씨켐으로부터 항암 신약 파이프라인(후보 물질)을 약 100억원에 사들였다.
한컴과 포스코, 오리온의 공통점은?
홍준호 인터파크바이오컨버전스 대표는 “도입한 파이프라인의 치료 기전은 세계적으로 아직 승인된 약물이 없다”며 “내년 말 선진국에서 임상 1상을 시작하고 개발 과정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하는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꼽히던 한글과컴퓨터그룹도 노인 헬스케어 등 신사업을 키우고 있다.

한컴위드는 IT를 접목한 데이케어센터 ‘한컴 말랑말랑 행복케어’를 지난 7월 서울 도봉구, 경기 수원 팔달구, 경기 용인, 부산 해운대, 제주 서귀포 등에 열었다. 인지 훈련 치매 예방 가상현실(VR), 건강 상태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 등을 제공한다. 2023년까지 3000곳의 데이케어센터 오픈이 목표다.

한컴그룹이 2017년 인수한 개인 안전 장비 전문 기업 한컴라이프케어는 한컴의 ‘캐시카우’로 떠오르고 있다. 박종선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글과컴퓨터는 3분기 연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60.0% 증가한 102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며 “자회사 한컴라이프케어의 K5 방독면 공급 재개와 KF94 방역 마스크 판매 증가, 코로나19 대응 방역복 공급 등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IT 기반의 헬스케어 서비스 등의 출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8년 12월 대웅제약·분당서울대병원과 헬스케어 합작법인 ‘다나아데이터’를 설립했다. 지난 8월 개인 정보 등의 빅데이터를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데이터 3법이 시행되면서 개점휴업 상태였던 헬스케어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의 투자 전문 자회사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는 2018년 8월 현대중공업그룹·서울아산병원과 의료 데이터 전문 기업 ‘아산카카오 메디컬데이터’를 출범시켰다. 서울아산병원의 환자 정보와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의료 서비스 고도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포스코·OCI·오리온도 제약·바이오 투자 나서
한컴과 포스코, 오리온의 공통점은?
철강 기업 포스코와 OCI 등도 바이오 산업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태양광 소재 기업 OCI는 2018년 5월 부광약품과 합작사 비앤오바이오를 설립하는 등 바이오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중이다. 지난해 1월엔 췌장암 치료용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에스엔바이오사이언스에 50억원을 투자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OCI 바이오사업본부는 국내외 유망 바이오 벤처에 전략적 투자자(SI)로 지속 참여할 방침이다.

포스코는 유망 바이오 벤처 발굴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9월 7일 조성한 벤처투자조합 ‘IMP(Idea Market Place)’ 1호 펀드를 통해서다. 이 펀드는 재활 의료 기기 전문 업체 네오팩트 등을 배출한 ‘아이디어 마켓 플레이스’ 전용 펀드로 총 51억원 규모다.

아이디어 마켓 플레이스는 포스코가 2011년부터 운영한 벤처 발굴·육성 프로그램이다. 한미사이언스와 함께 식물 기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바이오앱 등이 이 프로그램을 거쳤다. 포스코는 펀드를 통해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발굴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사장이 이끄는 한화솔루션도 헬스케어 소재 시장에 진출한다. 지난 9월 대표이사에 취임한 김 사장이 추진하는 첫 신사업이다.

한화솔루션은 고순도 크레졸 시설에 1200억원을 투자한다고 11월 10일 공시했다. 전남 여수산업단지에서 연간 3만 톤의 고순도 크레졸을 생산한다는 목표다. 내년 4월부터 2023년 6월까지 투자해 생산 시설을 완공할 계획이다. 고순도 크레졸은 비타민E 등 헬스케어 제품을 비롯한 농화학 제품 등의 기초 재료로 쓰이는 정밀 화학 소재다.

최근엔 식품 기업 오리온이 중국 제약·바이오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1차적으로 한국의 우수 바이오 기업을 발굴해 중국 진출의 파트너 역할을 담당하고 장기적으론 합성 의약품과 신약 개발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간다는 목표다.

오리온홀딩스는 10월 23일 중국 국영 제약 기업 ‘산둥루캉의약’과 제약·바이오 사업 진출을 위한 합자 계약을 체결했다. 오리온홀딩스와 산둥루캉의약은 각각 65%, 35%의 지분을 투자해 합자법인 ‘산둥루캉하오리요우생물과기개발유한공사(가칭)’를 설립한다.

합자법인은 우선 한국 바이오 진단 전문 기업 ‘수젠텍’의 결핵 진단 키트와 ‘지노믹트리’의 대장암 진단 키트의 중국 내 인허가를 추진한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 결핵 환자 수 발생 세계 2위 국가다. 고령화로 고령층 결핵 환자가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수젠텍이 보유한 결핵 진단 키트는 소량의 혈액으로 결핵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 엑스레이 검사 위주의 중국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오리온의 설명이다.

지노믹트리를 통해서는 1~2g의 분변만으로 대장암을 90%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는 대장암 진단 키트를 현지에 도입한다. 중국 의료기관 내 대장 내시경 장비 보급률은 35%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건강보험료 재정 부담 해소를 위해 암 조기 진단 필요성 등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허인철 오리온홀딩스 부회장은 “오리온의 중국 내 브랜드 파워와 신뢰도, 사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국의 우수한 바이오 기술을 현지 시장에 선보이는 등 국내 바이오산업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됐다”며 “제약·바이오 사업을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추진해 글로벌 식품·헬스케어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4호(2020.11.23 ~ 2020.11.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