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디지털 화폐, 국제 통화 질서 바꿀까…중국, 디지털 위안화로 화폐 발행 차익 얻을 수 있어
Fed, 디지털 달러화 도입… 세계 ‘화폐 개혁’ 논의 힘 받는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한경비즈니스 칼럼=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지난 5월 이후 중국은 쑤저우·선전·청두·슝안신구 등 4개 지구를 대상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용해 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상당 기간 늦춰지지 않겠느냐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앞당겨 추진됐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빠르게 다가올 디지털 통화 시대에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야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활동 조기 재개에 이어 디지털 위안화 시범 계획은 적중했다. 올해 중국 경제는 지난 1분기에 마이너스 6.8%까지 급락한 이후 2분기 3.2%, 3분기 4.9%에 이어 4분기에는 6%대까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V’자형 반등이다. 디지털 위안화도 시범 운영한 지 6개월 만에 법정 화폐로 인정하고 중국 밖으로 사용을 검토할 만큼 성공적이다.
Fed, 디지털 달러화 도입… 세계 ‘화폐 개혁’ 논의 힘 받는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Fed, 디지털 달러화 도입… 세계 ‘화폐 개혁’ 논의 힘 받는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중국, 강한 통제력으로 디지털 위안화 정착

디지털 위안화는 종전의 가상 화폐와 페이스북이 계획한 ‘리브라’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차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게 평가돼 왔다. 실물 화폐와 달리 자체적으로 가치가 없는 화폐가 교환 수단, 가치 저장, 회계 단위 등과 같은 3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발행 기관과 법정화 여부가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디지털 위안화를 일대일로 교환해 구권을 신권을 교체할 때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 거래 단위 축소)’에 대한 우려도 불식했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 소비자(고객)의 전자 수첩에 넣어줘 사용하도록 하는 국가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은행이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개월 동안 시범 지구에 운영됐던 디지털 위안화가 빨리 정착된 것은 통제력이 강한 중국이 내부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검토하고 있는 중국 밖의 사용 문제도 세계 1위의 수출 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 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 비율이 의외로 빨리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바짝 긴장한 각국 중앙은행도 디지털 통화를 도입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보다 앞서 스웨덴은 지난 2월부터 ‘e-크로나’를 도입했다. 아시아 중심 통화의 지위를 중국에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감에 일본도 디지털 엔화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디지털 유로화 도입을 시사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8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마존과 구글 등 민간 권력이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하는 트럼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미국 중앙은행(Fed)도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앞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Fed는 지난 3월 임시회의 이후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최종 대부자 역할(lender of last resort)을 포기하고 ‘무제한 달러화 공급’이라는 1913년 출범 이후 가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달러화가 많이 풀릴 때 가장 우려되는 부작용은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는 벨기에 경제학자인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미국은 경상 수지 적자 등을 통해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신뢰도가 떨어져 기축 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Fed의 무제한 양적 완화로 달러 가치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한다면 기축 통화국인 미국이 더 이상 ‘글로벌 시뇨리지(화폐 발행 차익)’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과다 달러화 보유 구속, 즉 달러 함정(dollar’trap)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그렇다.


Fed가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풀린 달러화를 환수하는 출구 전략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금리 인상 이후 추진됐던 출구 전략 추진 과정에서 입증됐듯이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폐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선호하는 ‘금본위제 부활’이다. Fed가 달러화 공급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금값이 오르는 것도 이 요인이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적인 금 공급량 제한과 금 보유국에 또 다른 특혜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실행에 옮기기는 사실상 어렵다.


무제한 달러화 공급, 트리핀 딜레마 촉발

다른 하나는 디지털 위안화 발행을 계기로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앞당기는 방안이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는 평가다.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디지털 달러화로 격상시키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조 바이든 당선인도 반독점 규제를 강화할 방침인 것을 감안하면 직접 도입하는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위안화가 조기에 정착되면 ‘디지털 달러화’와 또 다른 형태의 기축 통화 전쟁이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을 통한 위안화 국제화 과제를 꾸준히 추진해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국의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해 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먼저 들이닥칠 디지털 국제 통화 질서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구축하면 중국은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국 금융사의 자금 조달 효율성과 편리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미국은 글로벌 화폐 발행 차익을 연간 23억~118억 달러로, 전체 조세 수입의 0.4~1.8%에 달하는 큰 혜택을 누린 것으로 추정된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되면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는 각국 중앙은행은 전통적인 목표인 ‘물가 안정’에만 둘 수는 없다. 아마존 효과 등으로 물가가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기준 금리 변경, 유동성 조절 등과 같은 종전의 통화 정책 수단도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 주체도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주도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중앙은행과 시장 참여자 간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위상, 금융 시장의 효율성 지표인 기준 금리와 시장 금리 간 체계 약화가 불가피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각국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화폐 개혁 논의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 금융 행위도 판치게 된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 감독이 새로운 방식, 이를테면 옴니버스 방식 등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에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앞으로 화폐 개혁 논쟁은 국민의 저항이 높은 ‘리디노미네이션’보다 ‘디지털 원화’를 도입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무 부서인 한국은행은 내년에 ‘디지털 원화’ 시범 운용 계획을 발표한 만큼 중앙은행 목표 수정, 디지털 통화 지표 개발, 통화 유통 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통화 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 정책 전달 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등의 과제를 사전해 준비해 놓아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4호(2020.11.23 ~ 2020.11.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