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베를린, 전기자전거 이용률 급증하며 ‘모빌리티’ 부각…홈스쿨링·홈오피스 분야도 성장 [한경비즈니스 칼럼=베를린(독일) 이은서 유럽 통신원] 각국의 봉쇄 정책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럽질병관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11월 17일 기준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유럽 경제 지역(EEA)과 영국의 누적 확진자는 1090만8028명, 사망자는 27만664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나라별로 강도 높은 봉쇄 정책과 방역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확진자 증가 추세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동안 유럽 내에서도 방역의 선두를 달리고 있었던 독일도 방역 정책에 비상이 걸렸다. 독일 질병 대책본부인 로버트-코흐연구소는 11월 11일 코로나19 일일 상황 보고를 통해 독일 코로나19 중증 환자 수가 지난 4월 최고치(2933명)를 초과한 3059명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주로 사적 모임과 파티로 인한 감염으로 보고되고 있고 최근 양로원·요양원·교회 등의 시설 내 집단 감염 역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빌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독일 내 자가 격리 중인 학생 수도 3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치원과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방역을 위해서는 교육 기관의 운영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경제 상황이 위기인 것은 자명하다. 2020년 3분기 EU와 유로 지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년도 같은 분기 대비 EU 마이너스 3.9%, 유로 지역 마이너스 4.3% 등 마이너스 수준이 지속되고 있어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급격히 성장하는 산업 분야가 눈에 띈다.
코로나19로 시작된 모빌리티 지각변동
코로나19로 인해 대중교통 이용률이 낮아지고 그 대신 자동차·오토바이·스쿠터·자전거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관련 분야의 산업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2020년 6월 베를린의 자전거 이용자 수는 전년보다 26% 증가했다. 뮌헨시에서도 자전거 사용자가 전년 대비 20% 늘어나는 등 자전거 이용률이 급증했다. 독일 연방 교통부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25%가 전년 대비 더 자주 자전거를 이용하고 32%는 코로나19 사태 후 대중교통 수단을 작년보다 덜 이용한다. 1차 확산기였던 4월과 5월에는 평소 판매량의 3배를 기록하는 상점이 있을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동시에 독일에서는 오토바이와 스쿠터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늘어났다. 독일연방교통국(KBA)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과 9월 사이에 오토바이의 신규 등록은 약 18만5000대로, 이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로 많은 타격을 입었던 유럽의 자동차 산업 분야도 전기차 구매 보조금 확대, 부가 가치세의 한시적 감면, 노후 차 교체 지원금 등의 정책에 힘입어 점점 회복세를 보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특히 독일의 자동차 산업은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월 6일 진행된 독일의 자동차 기업 대표들의 회담에서 폭스바겐·BMW·다임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전기차 시대로의 전향’을 선언하며 자동차 제조 회사로서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로서의 미래 계획 발표와 함께 테슬라를 벤치마킹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 1차 위기 때 겪었던 홈 오피스와 온라인 수업의 경험을 반영하듯이 유럽 내 노트북, 웹캠, 빔 프로젝터 헤드셋, 오락 기기, 스마트 스피커 등의 판매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 IDC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서유럽 지역의 노트북 판매량은 전년도 같은 분기 대비 25% 증가했고 PC 판매량은 10.2% 늘었다. 지난 6월 독일 연방 정부는 학교에서 노트북 등 홈스쿨링 관련 장비를 구비, 필요 학생에게 대여할 수 있도록 5억 유로의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고 대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들을 때 어려움이 없도록 노트북과 프린트기 등의 구매 비용에 대한 보조를 결정함에 따라 관련 전자 기기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구와 인테리어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집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 하거나 홈 오피스나 홈스쿨링에 필요한 가구를 구비하는 등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스태티스타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유럽의 가구·가정용품 관련 매출은 3억7030만 달러로 전년도 대비 20.2% 올랐다.
호텔이 홈 오피스가 되는 특별한 아이디어도 눈에 띈다. 유럽 지역에서 호텔과 안정적인 홈 오피스를 하고 싶어 하는 개인을 연결해 주는 플랫폼(homeoffice-im-hotel.de)도 생겨났다. 관광객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호텔과 홈 오피스 정책으로 인해 집에서 일해야 하지만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분리를 원하는 고객들이 서로의 니즈에 따라 호텔을 사무실로 임대하는 것을 중개한다. 특히 코로나19로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은 여행업계에서는 ‘홈’이라는 키워드에 따라 환골탈태의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달라진 취미 생활…성장하는 아웃도어 산업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을 헬스클럽과 수영장 등의 실내 운동 시설이 문을 닫게 되자 많은 사람이 야외 활동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유럽아웃도어협회(EOG)가 독일·영국·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주요 7개국의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58%의 응답자가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야외 활동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됐다고 응답했다.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데이터를 통해 명확하게 나타났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유럽의 스포츠·아웃도어 용품의 매출은 1억9830만 달러에 이르고 이는 전년도 대비 18.3% 증가한 것이다. 지난 9월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캠핑카 전시회 ‘카라반 살롱 2020’도 캠핑 산업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보여준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 전시회에 처음 방문한 사람이 42%에 이를 정도로 코로나19 위기 이후 아웃도어와 레저 산업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위기 이전부터 유럽의 교육 기관들은 디지털화를 장기적 목표로 삼고 차근차근 온라인 교육의 바탕을 마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인프라 미비와 다양한 법적·제도적 문제에 부딪쳐 이를 실현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이런 유럽의 상황을 코로나19 위기가 반강제적으로 변화시켰다. 봉쇄령으로 인해 홈스쿨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교육의 디지털화가 자연스럽게 시행됐다. 특히 유럽을 선도하는 에듀테크의 허브 런던에서는 마이튜토어·테크 윌 세이브 어스가, 헬싱키에서는 카이데 사이언스라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이 코로나19 위기 기간 동안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보통 대학과 학교를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제공하거나 홈 오피스를 하는 직원을 위한 온 보딩 교육 솔루션 등 교육 기관뿐만이 아니라 ‘교육’ 수단이 필요한 일반 기업에까지 그 적용 범위를 넓혀 활용도를 높였다.
‘위기는 기회’라는 상투적인 말로 1년이 점철되고 있는 유럽의 현재 승자는 다름 아닌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혁신을 꾀하는 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4호(2020.11.23 ~ 2020.11.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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