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사상 최대 돈 풀기에 달러 가치 하락…실물경제 어려운데 증시·집값은 들썩
美 다우지수 3만을 기록한 날, 한국 주가 최고점 찍은 이유
[한경비즈니스 칼럼=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2020년 11월 24일은 미국 증시 역사상 기록적인 날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다우지수가 3만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주식 시장이 뜨거운 것은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같은 날 발표된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96.1을 기록, 전달의 101.4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 지수는 미국 소비자들이 6개월 후 경기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이 지수가 100 이하라는 것은 앞으로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믿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앞으로 미국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가는 역사상 최고점을 기록하는 아이러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美 다우지수 3만을 기록한 날, 한국 주가 최고점 찍은 이유



美 다우지수 3만을 기록한 날, 한국 주가 최고점 찍은 이유



미국, 8개월 사이 통화량 3000조원 늘어


이런 현상은 주택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국 집값 흐름을 보면 매년 6월이 가장 비싸고 1월이 가장 싸다. 미국은 8월 말에서 9월 초에 학년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6월에 계약해 (60일의 에스크로 기간을 거쳐) 8월에 이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이 때문에 실수요가 몰리는 6월의 집값이 가장 비싸고 이사를 잘 다니지 않는 겨울의 집값이 가장 싼 것이다. 지난 10년간은 물론 과거에도 예외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전혀 다른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미국 평균 집값이 6월에 32만8900달러로 최고가를 기록한 것까지는 예년과 다를 바 없었는데 그 이후 집값이 꺾인 것이 아니라 7월에는 35만6200달러, 8월에는 36만8700달러, 9월에는 37만1500달러, 10월에는 37만2900달러로 계속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실수요가 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그동안 집값 상승을 주도해 왔던 실리콘밸리나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월세가 떨어지고 있다. 어차피 출퇴근하지 않을 것인데 굳이 비싼 월세를 내며 회사 근처에 거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물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데도 주가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것처럼 실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데도 미국 집값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물 시장과 자산 시장의 괴리가 일어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다시 말해 돈의 가치 하락 때문이다.


결국 미국에서 돈의 가치 하락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역대급으로 시중에 돈이 풀리기 때문이다.


는 미국의 통화량(M₂) 증가 추이를 보여주는 표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 대출) 부실 사태가 있던 200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의 통화량(M₂) 증가율을 나타낸 표다. 최근 특히 올해 3월 이후 통화량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국제 금융 위기 때보다 시중에 돈이 그만큼 화끈하게 풀리는 것을 의미하며 최근 들어 미국 돈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11월 초 기준으로 미국의 통화량은 19조672억 달러다. 이는 올해 2월 말의 15조4341억 달러에 비해 여덟 달 사이에 3조 달러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2015년 2월 말의 M₂가 11조8755억 달러였으니 지난 5년(2015년 2월~2020년 2월) 동안 시중에 풀린 돈보다 최근 8개월 보름 동안 풀린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전년 대비 통화량 증가율은 무려 25.3%에 달한다. 지난 1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6.1%였던 것을 감안하면 4배 이상 수준이다.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미국에서 벌어지는 인플레이션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가 아니라면 아무 상관없을까. 그것이 아니다.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환율 경쟁력 지켜라’ 인플레 전 세계 확산

A라는 나라의 화폐와 B라는 나라의 화폐 가치가 같으면 교환 비율은 일대일이다. A라는 나라의 화폐를 알파, B라는 나라의 화폐를 베타라고 부르면 A 나라에서 B나라로 여행을 가는 사람은 100알파를 가지고 100베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A라는 나라에서 갑자기 자국의 화폐인 알파를 단기간 내에 두 배로 발행하게 되면 어찌 될까. A라는 나라가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재화가 늘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B라는 나라에서는 1알파를 1베타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A 나라에서 B 나라로 여행을 가는 사람은 예전과 같이 100알파를 가지고 100베타로 바꿀 수 없고 100알파를 50베타로 교환해 주게 되는 것이다. 결국 어떤 나라의 통화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그 나라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원화 대비 달러 값도 많이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달러 가치가 원화 가치에 비해 급격히 내려가면 (다시 말해 환율이 내리면) 수출은 점점 어려워진다. B라는 나라에서 어떤 상품을 10베타에 A 나라에 수출할 때 예전에는 A 나라에서 10알파에 팔렸다고 하면 (A 나라에서 알파를 두 배로 발행해) 알파의 통화 가치가 반으로 떨어진 이후 20알파에 팔려야 예전과 같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그런데 A 나라 소비자로서는 물건 값이 갑자기 두 배가 뛴 것이기 때문에 그 물건의 수요는 급격히 줄어든다. B 나라로서는 수출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면 B 나라는 어찌 하면 될까. 맞불 작전, 다시 말해 베타의 통화량을 같이 늘려 베타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A 나라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환율과 교역’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B 나라로 확산되는 것이다.


한국은 원유 등 부존자원이 없는 관계로 수출을 하지 않고서는 먹고살 수 없는 나라다. 결국 수출을 하려면 원화 약세를 용인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달러를 푸는 속도만큼 원화를 시중에 풀지 않으면 환율이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원리로 미국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이 바다 건너 한국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미국 다우지수가 3만을 기록한 같은 날 한국 주식 시장의 코스피지수가 역대 최고치인 2600을 돌파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플레이션의 강물은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5호(2020.11.30 ~ 2020.12.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