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김현미, 현실과 괴리된 통계로 시장 오판…집값 잡으려면 ‘공급 확대’만이 해법
현실과 괴리된 통계로 시장 오판...신임 국토부 장관에게 바란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한경비즈니스 칼럼=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 역대 최장수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뒤로한 채 국토교통부 장관이 물러났고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신임 장관 내정자로 지정됐다. 1년 5개월도 남지 않은 현 정권의 남은 기간은 산적한 현안을 처리하기에 빠듯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나 대선까지 남은 시간을 고려할 때 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현 정부의 기존 정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괴리된 통계로 시장 오판...신임 국토부 장관에게 바란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전임 장관의 공과는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2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내놓지 못한 면에서 보면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왜 이런 참혹한 결과가 나왔을까. 집값이라는 것이 국토부 장관 한 명의 의지나 능력에 따라 잡힐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집값 잡는 것에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다른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장관으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


그러면 왜 집값은 잡기 어려운 것일까. 집값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 상황이나 주택의 수급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집값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상당히 많지만 굳이 요약하자면 유동성·수요·공급 등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유동성은 시중에 돈이 얼마나 풀리고 그 돈이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는가를 따지는 지표다. 한마디로 시중에 돈이 흔해지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주가가 오르고 집값도 오르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집값이 한국에서만 오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이 올랐고 특히 올해 들어 이런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에서 돈을 많이 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국토부 장관이 조절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한 나라의 금융 정책은 그 나라 경제 정책의 근간이고 경제성장률 등 국가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경제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문제 때문에 금융 정책 자체를 흔들 수는 없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집값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다. 이 부분에서 정부와 국민 사이에 인식의 괴리가 크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서 먹혀들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부분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국토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 수는 1997만 9188가구, 주택 수는 그보다 많은 2081만8025채로, 주택 보급률은 104.2%다. 이론적으로 보면 전국에 83만8837채의 집이 남아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생각이다. 2081여만 개의 주택에는 폐가 수준의 주택이 포함된 단순한 수치다. 그중 일정 수준 이상 주거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주택 수는 그보다 훨씬 적다. 더구나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서 주거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도 따라 올라가고 있다. 1960~1970년대에는 판잣집이라도 눈비만 피할 수 있는 집이라도 있으면 만족이었다.
현실과 괴리된 통계로 시장 오판...신임 국토부 장관에게 바란다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수요자 눈높이 맞춘 양질의 주택 공급해야

1980~1990년대에는 벽돌로 지은 집이고 양변기와 싱크대가 갖춰진 집이라면 다가구 주택이든 다세대 주택이든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민소득이 점점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아파트로 향했다. 보안 문제 등 아파트가 갖는 장점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주택 종류별 시세 상승’ 표는 KB국민은행 통계가 시작된 1986년 1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주택 종류별 시세 상승률을 보여준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413% 오르는 동안 (다가구 주택이 포함된) 단독 주택은 70%, (다세대 주택, 빌라가 포함된) 연립 주택은 147% 상승에 그쳤다. 이를 두고 아파트 값의 시세 상승 기대감 때문에 아파트에 투자하는 사람이 많아 아파트 값이 오른 것이라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적 수요 때문에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이 다른 주택 종류보다 높다고 하면 전셋값 상승률의 차이에 관해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세는 100% 실수요다. 그런데도 아파트의 전셋값 상승률이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의 전셋값 상승률보다 훨씬 높은 것은 아파트의 주택 수요가 다른 주택의 수요보다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매가든 전셋값이든 아파트가 다른 주택 종류보다 많이 오른 이유는 주택 수요가 아파트에 많이 몰렸다는 의미고 반대로 표현하면 수요와 비교해 아파트의 공급이 적었다는 뜻도 된다.


그러던 것이 지난 몇 년 사이에 그 대상이 새 아파트로 바뀌고 있다. 입지가 좋은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낡은 아파트보다 새 아파트를 좋아하는 현상이 점점 심해졌다. 이에 따라 지방에서는 새 아파트와 낡은 아파트의 가격 차이가 역대 최대로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수요자의 눈이 계속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주택에 대한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물론 전임 국토부 장관의 말대로 아파트 공급이 빵을 만드는 것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금의 공급 부족 사태를 전임 국토부 장관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도 전임 국토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은 취임 초기에 사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재임 기간 중 ‘양질의 주택 공급’을 위한 노력을 등한시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신임 국토부 장관에게도 적용된다.


국토부 장관의 소임은 집값을 잡는 것이 아니다. 국토부 장관의 소임은 주택 수요를 줄이는 것도 아니다. 다른 것은 다른 부처에 맡기고 ‘양질의 주택 공급’ 딱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


물론 주택 공급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의 가시적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전의 장관들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도 공급을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다. 일은 본인이 하지만 그 혜택은 후임 장관이나 다른 정권이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는 국토부 장관의 가장 큰 목표가 돼야 한다. 가을에 본인이 추수하지 않는다고 봄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면 진정한 농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7호(2020.12.14 ~ 2020.12.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