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대세 될수록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해야…비트코인은 특별한 사상가들의 ‘도덕적인 발명품’
불공평한 비트코인?… 뒤늦게 뛰어든 대중은 손해 안고 출발하는 셈
[한경비즈니스 칼럼=오태민 지놈체인 대표(‘비트코인은 강했다’ ‘스마트콘트랙, 신뢰혁명’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자 여러 가지 분석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 월가 주류들의 태도 변화에 주목한다. 성공한 펀드매니저이자 암호화폐 투자자로 유명한 갤럭시디지털의 마이크 노보그라츠 최고경영자(CEO)는 2020년 12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월가가 비트코인을 수용할 가능성이 100%라고 확신했다. 그는 ‘자산의 1%는 비트코인에 투자하라’고 했던 과거의 자신의 권고를 5%로 상향 조정한다면서 날릴 위험이 거의 없는 자산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매스뮤추얼의 비트코인 투자가 결정적인 신호탄이 됐다. 170년이나 되는 보험회사가 1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이미 구입했고 시장 상황을 봐 가며 더 구입하겠다고 했다. JP모간은 매스뮤추얼의 투자를 기관 투자의 본격 진입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미국·유럽·일본의 연기금이 자산의 1%를 비트코인에 투입하면 6000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 추가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신고점 경신한 암호자산, 비트코인이 유일


주식이나 부동산과 함께 인플레이션의 대안으로서 비트코인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 특히 도덕적인 잣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에게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은 불쾌한 소식이다.


더구나 블록체인이 아니라 비트코인 자체가 이슈의 중심이기 때문에 불쾌감을 피하기 어렵다. 2017년 코인 시장 거품 당시에는 비트코인보다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번 상승장에서 2017년의 전고점을 넘어 신고점을 경신하고 있는 암호 자산은 비트코인이 유일하다. 일반인으로서는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미래 가치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는 테슬라와 같은 선상에 놓기 어렵다.


대중의 비이성적인 욕망이 빚어낸 신기루라는 것은 비단 노벨상을 받은 권위 있는 경제학자들의 판단만이 아니다.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이 수천만원의 가격에 거래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혹자들은 ‘디지털 금’이라고 하지만 이는 허황된 수식어일 뿐이다. 금은 장신구로도 쓰이고 최첨단 공업의 소재로도 활용되는 귀한 금속이다. 비트코인으로는 목걸이나 반지를 만들 수 없고 비트코인이 없어진다고 해서 당장 타격을 받을 기간산업도 없다.


하루 만에 20%나 가격이 오르내리는 데다 속도도 느려 1초에 7건밖에 처리하지 못한다고 하니 실용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비트코인은 마약 거래나 테러리스트들의 자금 세탁에 사용될 수 있고 해커들은 악성 코드를 풀어주는 대가로 비트코인을 요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은 불공평하다. 정체불명의 개인이 어느 날 새로운 화폐를 발명했다고 선언했다는데 화폐는 그런 게 아니다. 우연히 먼저 알게 된 이들은 손쉽게 억만장자가 됐으니 뒤따라 사용할 대중은 모두 손해를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만약 새로운 디지털 화폐가 불가피하다면 정부가 주도해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합당하다.


도덕적인 사람들의 날카로운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변명하는 작업은 생산성이 높지 않다. 현실주의자가 되라고 설득하는 편이 낫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누군가는 발명하게 돼 있던 사물이고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됐으니 그 자체로 인정하고 적응 방법을 찾는 게 현명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도덕적인 질문은 의미가 크다.


우선 비트코인은 특별한 사상을 가진 이들이 열망해 왔던 ‘도덕적인 발명품’이다. 대세에 순응하려는 실용적인 사람들 보다 도덕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던 이들이 투자 성과도 더 좋은 편이다. 궁극적인 질문에 해답을 얻지 못해 한동안 회의론자에 머무르던 이들이 한번 투자를 결심하면 시장이 흔들려도 공포에 휩싸이지 않고 소신 있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미국에서 개인의 무장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은 총의 가치를 기계적인 기능에 두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트코인의 기능을 열거하는 방법론으로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총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서 명백하게 위험한 물건이지만 총기 옹호론자들에게 총이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방파제를 상징한다.


정치철학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자체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다수가 동의하면 언제든지 게임의 규칙을 바꿔 승자와 패자를 뒤집을 수 있다. 실패자가 포함된 다수의 지지에 의지해 정부는 소수의 기본권을 훼손할 수 있는데 학계와 언론은 이런 행위를 공공의 이익이라고 포장해 주곤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2020년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침범할 수 없는 한계선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하게 만든 원년이다. 무장 권리를 개인의 자연권으로 해석한 미국 건국의 선조들은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나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할 생활인이기도 한 법관들로 구성된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난폭함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를 의심했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정부가 없앨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헌법을 수정해 총을 압수할 수 있는 정부라고 하더라도 비트코인은 없앨 수 없다. 비트코인을 없애려면 전 세계 정부들이 연합해 인터넷을 영구적으로 차단하든지 아니면 몇 달 동안 지구적 차원의 정전 사태를 유발해야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민주주의에 대한 방파제라는 맥락에서 비트코인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정부는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려고 한다.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이점은 과거에 진 빚을 가볍게 해 주는 것이다. 현재 세대로부터 표를 받는 것이 더 중요한 현실 정치인들로서는 인플레이션을 지지하는 경향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출발한다.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부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규칙을 바꾸는 소급 입법을 마다하지 않는 시대가 다가올수록 개인들은 정부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을 찾는다. 이 맥락에서 금은 정부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순도와 무게를 확인할 수 없는 개인들의 무능력을 빌미로 금 거래에 개입하기 시작한 정부가 종국에는 금의 거래를 금지하거나 유통망을 틀어쥔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조작할 수 없는 금융 자산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정부 엘리트들은 비트코인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만은 일찌감치 인지했다. 미국에선 2013년 말 이 문제가 일단락됐다. 그들의 전략은 지연이었다. 대중이 깨닫기 전에 시간을 최대한 끌어보려는 전략은 절반의 성공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현재 금융 엘리트들이 비트코인을 통해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 그 성공의 증거다. 한편 국가 엘리트들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 있게 떠들다가 아직도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집단적 낙오가 이 전략의 성공이 온전하지 못한 이유다.


지식인들을 믿었다가 투자 기회만 놓쳤다고 한탄하는 이들의 원망이 어느 순간 겁 없이 떠들던 이들에게 향할 날이 곧 올 것이다. 하지만 미리 말해 두자면 이는 지나친 ‘남 탓’이다. 날마다 치솟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야말로 공익을 내세우는 엘리트들을 믿고 투자를 결정하는 대중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라는 사실을 꼬집고 있다.


투자 기회를 놓친 이들은 국가 엘리트들을 믿었다기보다 스스로의 상식을 믿고 안주했던 것이다. 새로운 현상을 앞에 놓고 지식인과 미디어와 상식에 안주하는 행태야말로 전인미답의 혼란기를 살아내야 할 현대인들이 버려야 할 관습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0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