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지수 35년 내 최고치…질로·레드핀·아이바잉 등 프롭테크 기업 급부상! [한경비즈니스 칼럼=최중혁 칼럼니스트 ericjunghyuk.choi@gmail.com] “(집값이) 확실히 미쳤다.” 한국의 집값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이야기다. CNBC에 출연한 부동산 플랫폼 회사 레드핀의 글렌 켈먼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 주거용 부동산은 끝 모르고 상승하는 중이다. 레드핀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 미국 주택 중간 가격은 전년 같은 달 대비 14% 오른 33만5519달러를 기록해 2014년 7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보였다. 미국 20개 주요 도시의 집값 인상률을 나타내는 ‘S&P 코어로직 케이스 실러 주택가격지수’도 2020년 10월 기준 지수가 229.23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8.4% 상승했다. 마찬가지로 2014년 3월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부동산 관심 없던 밀레니얼 집 구매 대열 합류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와 미국 은행 웰스파고가 발표하는 주택시장지수(HMI)는 2020년 11월 지난 35년 지수 역사상 사상 최고치인 90을 기록했다. NAHB의 HMI가 50을 초과하면 건설 업체의 주택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긍정적인 상태를 나타낸다.
미국 집값이 급등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이 가장 크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재택근무와 재택학습이 활성화됐고 이에 도심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더 넓은 공간을 찾아 교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집은 단순히 거주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학업·업무·여가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 곳이 된 것이다.
반면 팬데믹(세계적 유행)에 대한 우려로 집을 내놓는 사람을 줄어들어 공급은 역대 최저치다. 2020년 11월 말 기준 미국 주택 재고는 128만 채로, 이는 1982년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다. 현재 미국 주택은 시장에 평균 21일만 머무르며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리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막대한 현금이 공급해 시중 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을 찍은 것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미국 모기지(주택 담보 대출) 금리가 1971년 이후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미국의 국책 모기지 업체인 프레디맥이 발표한 12월 넷째 주 기준 평균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2.67%를 기록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집을 사기 시작한 것도 미국 집값을 밀어 올리는데 일조했다. 1980년 초부터 2000년 초반 사이에 출생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7210만 명에 달하며 미국 성인 인구 중 가장 많은 비율(약 22%)을 차지한다. 2018년만 하더라도 미국 밀레니얼의 집 소유비율(32.2%)은 X세대와 베이비붐 세대가 동일한 나이였을 때보다 집을 보유한 사람의 비율이 8%포인트나 낮았다. 이들은 학자금 대출에 대한 부담도 컸지만 교외의 집을 구매하는 것보다 문화를 누리며 도심에 거주하는 것을 선호했던 이유도 크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후 밀레니얼 세대 또한 집 구매 대열에 합류했다.
온라인에 친숙한 밀레니얼이 부동산 바이어가 되면서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을 합친 프롭테크(Proptech)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일례로 코로나19 우려로 집을 직접 보는 것이 쉽지 않아 구매자가 집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게 지원하는 가상현실(VR) 모델하우스의 활용이 늘었다. 2014년부터 매터포트의 기술을 사용해 온 레드핀은 팬데믹 이후 VR 모델하우스 가상 투어가 300% 이상 급증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 주거 형태는 한국 아파트와 같은 콘도보다 싱글 하우스가 많기 때문에 과거엔 집을 매매할 때 정량화된 주택 가격을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부동산 플랫폼 서비스들은 주소만 입력하면 집 주택 내부의 모습뿐만 아니라 적정 매매·임대 가격과 과거 거래 내역, 모기지 상환 추정액과 인근 학교들의 평점까지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블룸버그의 보도에 따르면 프롭테크 회사들이 나타나면서 주택 구입비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소비자들이 주택 구입이 쉬워진 덕에 주택 매물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복덕방 가고 프롭테크 뜬다
미국 프롭테크의 선두 주자는 단연 부동산 플랫폼 회사 질로다. 부동산 검색 포털 1위인 질로는 온라인을 통해 부동산 매매, 임대 매물 정보를 제공하고 온라인 모기지 대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2014년 부동산 플랫폼업계 2위 트루리아를 35억 달러에 인수한 질로는 6개의 부동산 관련 플랫폼을 거느리며 미국에서 업계 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9년 연간 81억 명이었던 질로의 방문자 수는 2020년 3분기에만 28억 명을 기록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런 열풍에 힘입어 질로닷컴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을 뜻하는 질로 스크롤러(Zillow Scroller)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무엇보다 유저들에게 어필한 질로의 가장 강력한 서비스는 아마존의 아마존웹서비스(AWS) 머신러닝을 통해 1억 개 이상의 방대한 주택 정보를 분석해 개발한 고유의 주택 감정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통해 예측한 거래 가격이 실제 가격과 5% 이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온라인에 올라온 매물 가격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질로는 2020년 1분기부터 3분기까지 25억5086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2% 늘어났다.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증가에 힘입어 질로는 2020년 3분기에 409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3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또 다른 미국 부동산 플랫폼 업체는 레드핀이다. 2006년 설립된 질로보다 조금 이른 2004년 설립된 레드핀은 부동산 광고 수익을 주력으로 하는 질로와 달리 온라인 부동산 중개를 주력으로 하며 이 분야에선 미국 내 1위다. 레드핀은 5~6%에 달하는 오프라인 중개 수수료에 비해 저렴한 수수료(1~1.5%)를 무기로 고객을 그러모았다. 과거엔 주택 구매자들이 온라인으로 집에 대한 정보만 얻으려고 했지 온라인으로 매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드핀은 온라인 VR 투어와 비디오 채팅 거래, 가상 집 꾸미기 서비스 등을 토대로 2020년 2분기 미국 주택 거래 중개 점유율의 0.9%를 차지했다. 약 3년 만에 두 배 가깝게 점유율이 늘었다. 여전히 미국 부동산 중개 시장은 아주 잘게 분화돼 있고 영세한 업체들이 많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부동산 중개 이용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주택을 매입한 뒤 수리해 재판매하는 아이바잉(iBuying) 비즈니스는 최근 미국에서 각광 받고 있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회사는 2020년 12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를 통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오픈도어와 비상장 회사인 오퍼패드다. 질로도 2018년 아이바잉 시장에 진출했다. 오픈도어는 자동화된 밸류에이션 모델을 토대로 약 10% 저렴한 금액에 집을 구매한 뒤 한 달 이내에 집을 수리해 재판매한다. 주택 매도자로서는 다소 낮은 가격이지만 빠르게 현금을 지급받을 수 있고 매수자도 깨끗하게 정비된 집을 구매할 수 있어 선호하는 편이다. 현재 미국에서 아이바잉의 거래 비율은 전체 거래 중 3~5%를 차지하고 있고 오픈도어가 상장하며 밝힌 2023년 목표 점유율은 4%로 매출 500억 달러를 기록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구매하는 재화 중 가장 비싼 것이 부동산이다. 과거엔 직접 만나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해야 할 정도로 신중해야 했지만 이젠 부동산도 주식을 사듯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내 집을 찾으려면 발품이 아니라 ‘손품’을 팔아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1호(2021.01.04 ~ 2021.01.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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