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코로나19가 앞당긴 계층 양극화…빈곤층 포퓰리즘 맹신으로 벌어진 의회 점령
美 합중국, ‘바이든 국가’와 ‘트럼프 국가’로 쪼개지나?
[한경비즈니스 칼럼=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2021년 새해 벽두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만큼이나 커다란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먼저 영국이 1월 1일 회원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연합(EU)을 완전히 떠났다. 영국이 EU에 가입한 지 47년 만이다. 미국은 1월 20일을 기해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가고 조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다. 백신 상용화로 코로나19 사태도 점차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코로나19 사태는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세계 경제도 기존의 이론과 시스템을 무력화하면서 한순간에 ‘원시형 구조’로 바뀌었다. 원시형 경제는 앞날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절벽형’, 선점 여부가 중요한 ‘화전민식’, 하늘만 쳐다보는 ‘천우신조형’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美 합중국, ‘바이든 국가’와 ‘트럼프 국가’로 쪼개지나?
‘양적 완화’로 계층 양극화 심화

원시형 경제의 특징을 코로나19 이후 지금까지 세계 경제에 적용해 보면 사이먼 쿠츠네츠가 국민소득 통계를 개발했던 1937년 이후 최근처럼 세계 경제 앞날이 엇갈리는 적이 없었다. ‘I’자형, ‘L’자형, ‘W’자형, ‘U’자형, ‘나이키형’, ‘V’자형, 심지어 ‘로켓 반등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예측 시각이 나왔다.

각국의 경기 모습은 전적으로 경제 활동 재개 시기에 좌우됐다. ‘발병 진원지’라는 오명을 극복하고 가장 일찍 재개한 중국 경제는 지난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6.8%까지 급락한 이후 2분기 3.2%, 3분기에는 4.9%로 ‘V’자형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늦게 재개한 미국 경제는 4분기 이후 ‘W’자형으로 다시 둔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기 순환에서도 돈이 더 많이 풀리고 디지털 콘택트 산업이 부상하면서 진폭이 더 커지는 ‘순응성’이 심해지고 있다. 미국 경제는 작년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33.4%로 추락한 이후 3분기에는 33.4%로 급등한 것은 통계 방식에 따른 기저 효과 요인이 크지만 외부 충격에 대한 완충 능력이 취약하다는 점도 시사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구조가 원시형으로 바뀜에 따라 종전에 알려진 ‘거시 경제 변수 간 정형화된 사실’도 흐트러지고 있다. 성장률과 실업률 간의 역관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장에서 완전히 쫓겨나가는 영구 실업자가 급증해 성장률이 높아지더라도 고용이 늘어나지 않는 ‘더 거친 경기 회복(more harsh jobless recovery)’이 뚜렷해지는 추세다.

금융 위기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던 필립스 곡선의 평준화 현상도 더 심해져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놓고 헤매는 각국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돈을 무제한 푼다면 ‘굳이 미국 중앙은행(Fed)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받고 있을 정도다.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 간의 정관계도 흐트러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콘택트 산업의 범용화로 경기가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구조가 더 심화됐다. 뉴 노멀 착시 현상에 빠진 각국 중앙은행은 돈을 더 풀고 출구 전략을 지연시켜 각종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美 합중국, ‘바이든 국가’와 ‘트럼프 국가’로 쪼개지나?
의회 점령,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동시 위협

더 우려되는 것은 조 바이든 정부 출범을 눈앞에 두고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해 미국 의회가 점령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점이다. 테러와 반란 등의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미국의 양대 상징인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 경제’, 월가의 ‘자본주의’ 체제가 동시에 위협당하고 있다는 쪽으로 귀결되고 있다.

‘1인=1표’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참가자 간 완전 경쟁을 추구하는 시장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첫째, 체제 기반이 평평해야 하고 둘째, 그 위에서 활동하는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이 전제 조건은 3대 체제가 태동될 당시부터 ‘과연 충족할 수 있을까’라는 논쟁이 붙을 만큼 난제다.

3대 체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상징국인 미국에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봤던 금융 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부터다. 금융 위기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극복하는 방식도 3대 체제가 작동되기 위한 전제 조건을 복원시키는 것보다 더 악화시키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제로 금리’와 ‘양적 완화’로 대변되는 금융 위기 대처로 자산가와 노동자 간 소득 격차가 더 벌어지고 주가 등 자산 가격이 가치보다 훨씬 높게 올라가 ‘비이성적 과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증시에서 투자 기업의 가치와 주가로 나타나는 인간의 합리성은 가치에 합당하게 주가가 형성되면 ‘합리적’, 그렇지 못하면 ‘비합리적’으로 판단된다.

금융 위기로 금이 가기 시작한 3대 체제의 전제 조건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사태가 코로나19다. 발병 원인, 진행 방향 등 그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했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유일한 대처 방안은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을 격리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돈을 무제한 푸는 방식이다.

국가 주도의 강제적인 격리 방안은 ‘언택트(비대면)와 디지털 콘택트’라는 새로운 환경을 빠르게 정착시키면서 잘되는 기업과 계층은 더 잘되고 못되는 기업과 계층은 더 안 되는 ‘K’자형 구조를 심화시켰다. 소득 계층은 가장 두터워야 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하루에 1만원도 못 쓰는 BoP(Bottom of Pyramid), 즉 빈곤층이 세계 인구의 70%를 넘어섰다.

‘마이너스 금리’와 ‘무제한 양적 완화’로 대변되는 초(超)금융 완화 정책으로 주가는 비이성적인 논쟁을 뛰어넘어 ‘미쳤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높아졌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주가는 주가수익률(PER) 등과 같은 전통적인 평가 지표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수준까지 올랐다.

‘첨단 과학과 바이오 시대’라는 장밋빛 환상에 빠져 조기에 극복될 것이라는 봤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자 언택트(재택)는 영구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는 부정적 편향으로 악화됐고 디지털 콘택트는 BoP 계층 간의 연대성을 높여 사회적 불안의 분출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 이 점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 ‘트럼피즘’과 같은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정치인의 공통적인 특징은 외형상으로는 국민 다수의 BoP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자리와 이익에만 연연하는 정치꾼이라는 점이다. BoP 계층은 정치꾼의 실체가 드러나는 결정적인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포퓰리스트를 맹신한다.

의회 점령 사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4년 후 재임을 위해 ‘대선 불복종 프레임’을 유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점이다. 깨진다면 두 체제 복원에 희망을 걸어 보지만 더 두터워진다면 미국의 또 다른 상징인 합중국이 ‘바이든국’과 ‘트럼프국’으로 분리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2호(2021.01.18 ~ 2021.0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