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매사 신중한 것은 좋지만 친문과 싸울 땐 싸우고
자기 목소리 내야 하는데 그런 승부사 기질 안 보여”
![“위기의 이낙연, 친문에 얹혀 가려다 방향 잃고 스텝 꼬여” [홍영식의 정치판]](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1c5f2e65b182999819db4b17c5c0bbcc.jpg)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해 자신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 이 대표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2020년 8월 대표 경선 이전만 해도 ‘어대낙(어짜피 대표는 이낙연)’ 소리를 들으며 독주하던 지지율은 정작 대표 취임 이후 내리막길을 탔다. 한국갤럽의 2020년 7월 둘째 주 조사를 보면 다음번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물은 결과 이 대표가 24%,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3%, 윤석열 검찰총장이 7%를 각각 얻었다(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하지만 8월 둘째 주에 이 대표는 17%의 지지율로 이 지사(19%)에게 역전 당했다. 9월 둘째 주에는 이 대표가 21%, 이 지사가 22%를 각각 나타냈다. 11월 둘째 주에는 이 대표와 이 지사 모두 19%를 기록했지만 이후 이 지사의 지지율이 갈수록 올라 이 대표와의 차이를 더 벌려 나갔다. 올해 1월 둘째 주 조사에선 이 대표는 10%로 줄어들어 이 지사(23%)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윤 총장(13%)에게도 추월당했다.
지난해 연말과 올해 연초 실시된 10여 개의 각종 여론 조사에서 이 대표의 지지율이 1위를 기록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지사와 윤 총장에게도 밀렸다. 이 대표의 지지율이 불과 6개월 만에 반 토막이 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우선 ‘동조화 현상’을 꼽는다. 국무총리를 지낸 뒤 집권 여당의 대표를 맡으면서 대통령 지지율과 같은 흐름을 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당 대표로서 대통령, 정부와 국정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져야 하는 숙명 때문이다.
“사면 주장과 감사원·윤 총장 공격, 대통령에게 퇴짜 맞아”
친문(친문재인)과 한 배를 탄 것도 지지율 하락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대표 경선 때 당 지지 기반이 약한 이 대표로선 친문을 업을 수밖에 없었다. 친문도 친문계에서 뚜렷한 당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 대표와 전략적 동맹을 선택하는 것 이외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문제는 이 대표가 대표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친문 강경파의 눈치를 너무 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지지율을 지탱해 준 한 축인 중도층이 떨어져 나가면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 대표가 일반적 여론의 흐름과 달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에 대해 추 장관 편을 든 것도 친문 눈치 보기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친문을 중심으로 한 여권은 배수진을 치고 윤 총장 공격에 나섰다. 윤 총장이 자칫 월성 1호기 자료 파기 사건과 정권 연루 의혹이 제기되는 라임-옵티머스, 울산시장 선거 하명 수사 의혹, 신라젠·우리들병원 사태 등에 대해 깊게 파헤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위기의 이낙연, 친문에 얹혀 가려다 방향 잃고 스텝 꼬여” [홍영식의 정치판]](https://img.hankyung.com/photo/202101/51fbbfb8023f8e033fb5746fef2e71be.jpg)
하지만 결국 패착이었다.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 직무 배제 효력을 정지하고 직무 복귀를 결정함에 따라 이 대표는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 회견에서 윤 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대표의 ‘사퇴’ 압박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윤 총장의 지지율은 올라갔고 이 대표와 민주당 지지율은 더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대표의 월성 원전 삼중 수소 문제에 대한 감사원 비판도 성급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대표는 “지하수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라며 감사원을 겨냥해 “그동안 무엇을 감사했는지 매우 의아스럽다”고 공격했다. “원전 마피아와의 결탁”이라고까지 했다. 삼중 수소를 고리로 원전 경제성 조작과 관련한 공무원들의 자료 폐기 등을 밝혀내고 추가 감사에 나서겠다는 감사원을 우회적으로 공격한 것이란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신년 회견에서 감사원의 월성 원전 감사에 대해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감사원의 독립성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친문과 한 배를 탔지만 결과적으로 주요 사안마다 대통령은 딴소리를 했고 이 대표는 머쓱하게 됐다.
이 대표 특유의 신중한 성격이 때론 자기 발목을 잡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 민주당 비주류 의원은 이 대표에 대해 이런 불만을 나타냈다. “유력 대선 주자라면 친문과 뜻이 맞지 않을 때는 싸우기도 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야 하는데 이 대표에겐 그런 승부사적인 기질이 잘 안 보인다. 대선은 치열하게 싸워서 얻는 것이다. 매사 신중한 것은 좋지만 국가적 지도자라면 메시지를 분명하게 내야 할 때가 있다. 엘리트 출신의 한계로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지사와 비교된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던진 것은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한 하나의 승부수였다. 사면을 건의한 배경에 대해 당내에선 “청와대와 주파수를 맞췄다”, “순수한 독자적 결정이다” 등의 상반된 의견들이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이 대표가 친문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문 대통령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총대를 멨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만 사건이 됐다. 실제 이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언젠가는 판단해야 할 문제인데 짐을 덜어드리는 게 좋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사면, 끝까지 고수하든가 애초부터 꺼내지 말든가”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형이 확정된 이후(사면 제안 당시는 형 확정 이전)에 사면론이 불거질 것이고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제기해 통합과 화합 이미지를 만들어 중도층의 마음을 잡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친문들의 반대로 좌절되면서 이 대표는 큰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이 대표의 사면 발언 이틀 만에 민주당은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이·박 전 대통령)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거는 형식으로 이 대표의 건의를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다.
문 대통령도 쐐기를 박았다. 신년 기자 회견에서 “두 분의 전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사태”라면서도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 임기 내 사면 가능성에 대해서도 “미리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사면론을 꺼냈다가 이 대표는 리더십에 타격만 입었다.
이 대표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사면 좌절에 대해 “많이 야단맞았다. 어찌 됐건 대통령님의 말씀으로 일단 매듭지어졌으면 한다”고 물러섰다. 바로 이 지점에서도 이 대표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정치적인 승부수로 사면론을 던졌으면 반대를 뚫고 강력하게 밀고 나가든가,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꺼내지 말든가 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물러섰다는 것이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친문에 얹혀 가려다 방향을 잃고 스텝까지 꼬인 이 대표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신호탄을 쐈다가 맥없이 주저앉은 꼴이 됐다”고 혹평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13호(2021.01.25 ~ 2021.01.3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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