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슈완스 앞세워 유통망 대거 확보하고 ‘비비고’ 브랜드 투입

[커버스토리] 해외서 훨훨 나는 한국 식품기업
미국의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아시안 푸드 브랜드들이 별도로 진열된 아시안 푸드존에서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비빔밥 제품을 고르고 있다.
미국의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아시안 푸드 브랜드들이 별도로 진열된 아시안 푸드존에서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비빔밥 제품을 고르고 있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의 해외 가공식품 매출은 4조원을 웃돌며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2020년 4분기 실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분기마다 해외 가공식품 매출이 1조원 이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확정적이다.

2018년까지만 해도 CJ제일제당의 해외 가공식품 매출은 약 7000억원 규모였는데 짧은 기간 동안 초고속 성장한 셈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CJ제일제당의 해외 식품 영토 확장 전략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속에서 빛을 발했다. CJ제일제당은 현재 전체 해외 가공식품 매출의 약 80%가 미국에서 나온다.

이런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은 단연 미국 시장을 겨냥한 과감한 인수·합병(M&A) 전략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된 우려 속에서도 CJ제일제당이 2019년 미국의 냉동식품 전문 기업 슈완스컴퍼니(이하 슈완스)를 인수한 것은 돌이켜보면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승자의 저주’ 우려를 깨부수다

CJ제일제당이 슈완스를 손에 넣기 위해 쓴 돈은 무려 2조원이다. CJ그룹 M&A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다. CJ그룹은 2011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1조7500억원을 써낸 바 있다.

슈완스는 레드배런 피자, 미세스 스미스(파이) 등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18개 브랜드를 가진 미국의 대형 식품 기업이다. 피자·파이·아시안 애피타이저 등 시장에서 현지 시장점유율 1·2위를 다툴 만큼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슈완스의 CJ제일제당 인수 소식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현지 유통업계에서도 주목할 만큼 대형 M&A였다.

CJ제일제당이 거액을 들여 슈완스를 인수한 배경은 미국 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어떻게든 해외 가공식품의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의지가 담겼다.

이 회장은 ‘한식의 세계화’라는 식품 사업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20여 년 전 미국을 전략 시장으로 삼고 진출을 결정한 바 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에서 안착한다면 다른 나라 진출이 그만큼 쉬워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앞으로 가공식품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미국 시장에서 거침없는 M&A 행보를 펼쳐나갔다.

2005년 현지 상온 식품 생산 업체 애니천 인수를 시작으로 2006년 냉동식품 업체인 옴니푸드를 인수했고 2012년 만두·국수 등을 생산하는 TMI푸드그룹을 손에 넣기도 했다.

2018년에는 냉동 가정 간편식(HMR) 업체 카히키를 인수하며 꾸준히 몸집을 불려 나갔다. 이와 동시에 ‘비비고’ 브랜드를 앞세워 미국 현지에서의 매출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2018년 CJ의 미국 가공식품 매출은 약 3600억원까지 늘어났고 이를 토대로 전체 해외 가공식품 매출 규모를 6700억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체 가공식품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올리겠다던 목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였기 때문이다.

2018년 CJ제일제당의 가공식품 식품 부문 매출은 약 5조원으로 해외 비율은 약 13%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이 결국 이 회장이 거액의 돈을 투입하며 슈완스를 손에 넣기로 한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비비고 만두’, 해외 인기로 1조원 매출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인수를 타진할 때부터 내부에서도 금액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이내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 보였다.

슈완스 인수 이후 CJ그룹의 재무 상황이 크게 나빠졌다. 급기야 CJ는 2019년 비상 경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차입금을 갚기 위해 CJ는 보유한 부동산 등을 정리하고 재무 구조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슈완스 인수로 CJ가 ‘승자에 저주’에 빠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런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이 입증됐다.

최근 상황만 놓고 보면 슈완스는 CJ의 효자라고 불릴 만하다. ‘승자의 저주’를 ‘슈완스 효과’라는 단어로 뒤바꿔 놓았다.

우선 슈완스의 실적이 급증하고 있다. 2019년 1분기만 해도 2400억원 정도였던 슈완스의 매출은 지난해 들어 분기마다 7000억원대를 기록할 정도로 불어났다.
CJ제일제당, ‘슈완스 효과’ 누리며 해외 식품 매출 4조원 돌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미국 현지에서 가공식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혜를 톡톡히 누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비고의 매출도 함께 오르는 시너지까지 누리게 됐다. 슈완수 인수를 통해 현지 생산 능력과 판매처를 더욱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완스는 미국 내 생산 공장 17개를 보유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이전에 캘리포니아·뉴욕·뉴저지·오하이오 등 5곳에 생산 기지를 갖고 있었는데 슈완스 인수를 통해 4배 이상인 22개로 생산 기지가 대폭 늘어나게 됐다.

또 미국의 대형 식품 회사답게 슈완스는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물류·유통·영업망을 갖췄는데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슈완스를 흡수하면서 그동안 현지 코스트코와 같은 대형 유통 채널에 집중돼 온 ‘비비고’ 등 CJ제일제당 브랜드 제품들이 북미 시장에 운영 중인 다양한 규모의 점포들에서 판매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북미를 본격 공략할 수 있는 추진력을 확보한 셈이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CJ제일제당의 미국 시장 주력 상품은 단연 ‘비비고 만두’다. 미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제품에 반영하기 위해 별도의 만두 연구·개발(R&D) 조직을 신설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인 끝에 미국에서 ‘K만두’ 열풍이 일어날 만큼 인기를 끄는 제품이 됐다.

이 제품은 지난해 식품 단일 품목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내외 매출 1조원을 올린 바 있는데 이 역시 슈완스의 힘이 컸다는 설명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비비고 만두 전체 매출 중 해외 판매량이 약 6700억원”이라며 “정확한 수치 공개는 어렵지만 대부분의 비비고 만두 매출의 60% 이상이 미국에서 나왔다. 슈완스 인수 이후 비비고 만두 판매처가 더욱 늘어난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슈완스 효과를 통해 지난해 CJ제일제당은 가공식품 매출의 절반을 해외에서 거두겠다는 경영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2020년 3분기까지의 실적을 보면 전체 식품 부문 매출액은 약 6조8000억원인데 3조1000억원(슈완스를 포함한 미국 매출 2조5000억원) 정도가 해외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시장을 필두로 식품 사업의 해외 매출 비율을 4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전망도 밝다. 코로나19가 종식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공식품 판매 증가세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비비고 등 CJ제일제당의 브랜드가 슈완스의 영업망을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역시 지난해 10월께 완료해 더욱 가파른 매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발맞춰 CJ제일제당은 올해 미국 중서부에 추가로 식품 생산 공장을 증설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늘어난 생산 능력과 함께 올해는 비비고 만두의 뒤를 이을 만한 히트 상품 개발과 마케팅에 보다 주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 외에도 중국·일본·베트남 등으로의 영토 확장에도 더욱 힘쓸 계획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세계 최대 식품 소비 시장인 미국에서 비비고 히트 상품을 계속 선보이고 북미에서의 성과가 다른 국가로 확산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