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의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원자재 값이 구조적인 상승장에 진입했다”는 전망은 투자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원자재 상장지수펀드(ETF)로 10년 대세 상승장에 올라탈까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추락했던 국제 유가가 되살아났다. 구리, 철광석, 은, 옥수수 등도 줄줄이 고공행진 중이다. 국내외에서 10년간 ‘원자재 슈퍼 사이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원자재 슈퍼 사이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0년대 중반에도 나타났다.1월 13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2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원유(WTI)는 1.07% 오른 배럴당 53.78달러에 거래됐고,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3월물 브렌트유는 1.17% 상승한 배럴당 57.24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직전인 지난해 1월 24일(54.19달러)과 2월 21일(57.94달러) 후 최고치로 접어들고 있다.
금속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구리는 1월 7일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2013년 1월 이후 최고가인 톤당 8172달러를 기록했다. 철광석(중국 수입가 기준)도 1월 12일 톤당 172.67달러로, 2013년 3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월가에서도 수혜가 예상되는 광산·철강주 찾기로 들썩인다. 최근 미국 CNBC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앞으로 10년간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 도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은 1월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배경 및 전망’ 보고서에서 “국제 원자재 가격은 글로벌 경기 회복, 위험 자산 선호 등에 크게 영향을 받아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다”고 전망했다.
2021년 원자재 최강자는 CRB(Commodity Research Bureau) 원자재지수는 1월 6일 기준 1만7211포인트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이전인 2월 수준까지 회복했다. 2020년 하반기 이후 농산물 > 산업금속 > 에너지 > 귀금속 순으로 가격 상승 폭이 컸다. 그렇다면 2021년 원자재 중 최강자는 어떤 상품이 될까.
골드만삭스는 우선 산업용 금속을 주목했다. “금속과 광산 업체 주가가 지난해 3월 이후 100% 넘게 상승했지만 아직 더 오를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NH투자증권도 2021년의 톱픽(top-pick)으로 산업금속인 구리를 주목했다. 구리는 세계 경제를 진단한다는 의미의 ‘닥터 코퍼(구리 박사)’로 불린다. 글로벌 경기 회복기에는 ‘구리가 최고’라는 것. 산업금속 섹터 전반의 최대 소비국인 중국발(發) 수요 증대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회복기에는 구리가 최고' 보고서에서 “주요국을 중심으로 시작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2021년 글로벌 경기 낙관론을 지지하는 만큼 구리 가격의 추가 강세 시도는 유효하다”고 진단했다. 구리 다음으로는 산업금속 중 니켈, 아연, 알루미늄 순으로 강세를 예상했다.
한편에선 산업금속 가격의 단기 급등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은행은 ‘해외경제 포커스’ 보고서를 통해 “곡물 및 비철금속 가격은 단기간 내 급등했기 때문에 가파른 오름세는 진정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대신 최근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는 유가가 가격 상승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국가 유가는 지난해 11월부터 오름세로 돌아섰다.
금·은 귀금속도 올해 투자 유망 대상이다. 최진영 이베스트 연구원은 ‘여전히 매력적인 은(sliver)’ 보고서에서 “최근 원자재 시장 내 주도주가 변화(금·은 → 구리)가 뚜렷해졌다 해서 귀금속 섹터가 약해질 것이라는 예단은 금물이라고 했다. 과거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 과정에서도 구리의 상대 성과가 강화됐지만, 귀금속 섹터 역시 유동성과 인플레이션 헤지 수요를 반영하면서 고공 행진했다는 것.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혼돈의 시장에서는 귀금속 섹터가 안전자산과 저금리로 고성과를 보였다면, 2021년에는 유동성과 인플레 헤지 수요를 반영하는 시기라고 해석했다.
최 연구원은 산업 수요까지 고려하면 귀금속 중에서 은은 가장 매력적인 투자 대상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탄소중립 이슈를 기대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은은 전체 산업용 수요 중 20% 정도가 태양광 수요다.
대신증권도 금을 포함한 귀금속을 인플레 헤지 상품으로 추천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플레 가능성이 기대되는 원자재 시장’ 보고서에서 “원자재 내 귀금속 섹터의 비중 확대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했다. 실질금리 상승 제한과 달러 약세 압력은 귀금속 가격 상승을 지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금 가격은 온스당 최고 2100달러로 제시했다. 금 외 귀금속 섹터도 좋은 투자 대안으로 꼽았다. 김 연구원은 “은을 비롯해 백금과 팔라듐은 상대적으로 산업재 비중이 크기 때문에 경기 회복 시기에 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유망 원자재 ETF는
원자재 가격이 너나할 것 없이 전부 오르는 추세에 어떤 ETF에 올라타는 것이 효과적일까.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이미 급등한 뒤여서 뒤늦게 원자재 시장에 뛰어드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최진영 연구원은 올해 은 가격이 온스당 25달러에서 최고 55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평균 가격은 온스당 38달러 수준으로 예측했다. 최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낙관적인 방향성을 고려해 온스당 25달러 하회 시 적극 매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했다.
ETF로는 은 현물 가격을 추종하는 ‘SLV ETF’와 은 생산 기업으로 구성된 ‘SIL ETF’를 추천했다. SLV는 실제 런던의 금고에 은을 보유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펀드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은 부문의 가장 규모가 큰 펀드로 거래가 용이하다. SIL은 은 채굴 산업 내에 속한 기업들의 시가총액 가중평균 지수를 추종한다.
현재 톤당 8000달러까지 도달한 구리 가격의 하락이 두렵다면, 역으로 조정을 기회로 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구리를 주도로 한 산업금속 섹터는 3분기 연속으로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경기 회복 기대와 타이트한 수급 전망이 지속되는 한 단기 가격 조정은 신규 자금 유입의 기회가 될 수 있다. NH투자증권은 2021년 구리 가격 목표로 톤당 9000달러를 제시했다.
구리 관련 ETF로는 국내에서는 타이거(TIGER) 구리실물과 코덱스(KODEX) 구리선물 ETF가 대표적이다. 황병진 연구원은 “KODEX 구리선물(H)은 환 헤지가 된 상품으로 달러 약세 국면에서 유리하고, TIGER 구리실물의 경우는 KODEX 구리선물(H) 대비 선물 롤오버 비용이 부재한 것이 강점이다”고 소개했다.
변동성을 줄이려면 구리 등 특정 상품보다 주요 산업금속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는 ETF를 통해 분산투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TIGER 금속선물(H) ETF는 구리와 알루미늄을 중심으로 니켈에도 일부 투자한다.
원자재 ETF는 이름이 비슷하다고 ‘상품명’만 보고 투자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원자재 가격을 그대로 추종하는 경우와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부터 구분해야 한다. 원자재 관련 기업 상품의 경우 기업의 이익과 재무 구조 등이 반영되기에, 원자재 가격의 흐름과는 차이가 상당할 수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원유선물에 투자하는 TIGER 원유선물과 원유 기업에 투자하는 ‘KB 스타(STAR)미국S&P원유생산기업ETF’의 최근 6개월 수익률(1월 19일 기준)은 각각 17.05%와 33.88%로 차이가 컸다. 지난해 연초 이후 유가 폭락 시기를 반영한 최근 1년 수익률은 –42.25%와 –26.69%를 기록했다. 배현정 한경 머니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