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청와대에선]
-한·미 정상회담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보좌관 경질로 미·북 실무회담도 재개할 듯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9.6.30 청와대사진기자단 / 한국일보 류효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청와대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9.6.30 청와대사진기자단 / 한국일보 류효진
[김형호 한국경제 기자] 국내에서 한 달 넘게 ‘조국 정국’이 이어지고 있지만 청와대의 시선은 최근 미국을 향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를 전후해 마련된 주요국 정상 간 회담에 온통 시선이 쏠린 모습이다.

9월 23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9월 25일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회담은 한·일 간 경제 분쟁과 맞물린 상황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주목 받았다.

특히 청와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난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8개월여간 멈춰서 있던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실무 협상이 본격적인 재개 움직임을 보이는 데 고무된 모습이다.

◆ 유엔 총회에 총리 보내려 했다가 대통령 참석으로 바꿔

당초 청와대는 올해 유엔 총회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보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 국무총리실이 일찌감치 출입기자단의 출장 신청을 접수하고 여야 정당에 동행 방문을 요청하는 등 유엔 총회 참석 준비를 해왔다. 청와대 내에서도 “올해는 대통령이 안 갈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여부가 관건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간 협상이 교착상태인 상황에서 한·미 간 정상회담을 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9월 초 “유엔 총회에 가느냐, 마느냐는 한·미 정상 간 일정이 어떻게 잡힐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참석에 대해 “확정된 바 없다”며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다. 9월 10일엔 3박 5일 일정의 유엔 총회 참석 일정을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알렸다. 이는 북·미 간 대화 국면에 변화가 있다는 전조였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내 대표적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해임을 트위터를 통해 전격 발표했다. 볼턴 보좌관은 지난 2월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회동이 막판 결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들에게 볼턴 보좌관의 경질 배경을 설명하면서 ‘리비아 모델’의 부적절성을 언급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볼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 모델을 이야기하며 매우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2004년 모든 핵시설을 폐기한 무아마르 카다피는 7년 뒤인 2011년 재스민 혁명 당시 시민군에 의해 길거리에서 사살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리비아 모델을 언급해 비핵화 협상을 꼬이게 한 책임을 물어 경질했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리비아식 모델을 강요할 의향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 북한은 9월 16일 “북·미 실무 협상이 가까운 몇 주일 안에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호응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제도 안전을 보장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걸림돌인 제재를 제거하는 조치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 경질을 통해 북한이 체제를 위협할 의향이 없다는 메지시를 보내자 북한이 체제 안전과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미국과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한반도 평화를 향한 거대한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성사된 것도 미·북 간 협상을 앞두고 양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향후 전략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미·북 실무 협상을 앞두고 한·미 간 공조 체제를 전체적으로 돌아보는 성격도 띠고 있다. 자연스럽게 방위비 분담금 문제도 의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최근 미군기지 조기 반환 결정을 두고 일각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데 대해 “답답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8월 30일 용산 미군기지의 연내 반환 절차 개시를 비롯해 원주·부평·동두천 등 4개 기지를 최대한 일찍 반환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이 제기되는 와중에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미군기지 조기 반환 결정까지 나오자 일부에서는 “한·미동맹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내 80여 개의 미군기지 가운데 대부분 반환 절차를 마무리했지만 용산 등 26개는 기지 내 환경 처리 비용을 둘러싼 이견으로 반환 절차가 수년째 지연돼 왔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조기 반환을 추진하는 배경을 두고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둔 압박용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사실상 미국 측의 편의를 고려한 결정으로 알려졌다. 환경 처리 비용으로 기지 반환이 지연되자 한국 정부는 “일단 기지를 조기에 반환하고 환경 처리 비용은 추후에 논의하자”고 미국 측에 제안했고 미국도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환경 처리 비용을 따지다 보니 기지 내 오염 정도에 대한 조사와 오염 범위 그리고 이에 대한 비용 문제가 얽혀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며 “선(先) 기지 반환, 후(後) 처리비용 논의 속에 담긴 의미는 처리비용의 상당 부분을 한국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일부 진보 진영과 시민사회 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이례적으로 9월 18일 15개 주한미군 기지를 조속히 반환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으로 풀이된다. 양국이 물밑에서 진행하던 기지 반환 논의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환경 처리비용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 환경 처리비용 문제에 이처럼 전향적으로 돌아선 것은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양국 간 논란이 돼 온 환경 처리비용을 한국 정부가 상당 부분 책임지는 모습을 통해 미국의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 비핵화 논의가 한·일 갈등 푸는 지렛대 역할 할까

청와대가 한·미 정상회담과 미·북 비핵화 협상 재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일본을 겨냥한 포석도 깔려 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 보복은 한·일 간의 정치 동력만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개각을 통해 대한(對韓) 강경파들로 진용을 꾸렸다. 한국 정부도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데 이어 백색 국가 제외 등의 강경책으로 맞서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이 같은 한·일 간의 극한 대치 전선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인식이다.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논의를 위해 다시 마주 앉고 한국의 촉진자 역할이 시작되면 일본의 시각에서 이를 지켜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통해 대중 정치인으로 도약했던 아베 총리로선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재개되면 기존의 강경 일변도 방침만 고수하기에는 여의치 않다. 외무상에서 자리를 옮긴 고노 다로 방위상이 최근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을 비판하면서도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재개되는 시점에 나온 발언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청와대 내에서는 한·일 관계가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종속변수’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인 점을 이용해 일본은 한국을 향한 경제 보복에 나섰다”며 “미·북 협상이 시작되고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다시 궤도에 오르면 일본 내에서도 고립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