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올해 3분기 이후 한국 경제 전망…성장인지 분배인지 불명확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

[한경비즈니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한국 경제 2분기 성장률이 발표됐다.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4%로 워낙 낮았던 만큼 플러스 성장률은 기대했던 수준에는 못 미쳤다. 벌써부터 3분기 성장률이 걱정된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수출이 부진할 경우 재차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장기 침체를 예고하는 ‘W’자형 경기 순환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올해 하반기 한국 경제가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을 겪을 대표 국가로 꼽히고 있는 점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미국 헤지펀드 업체인 시브리즈파티너스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와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과 구별된다. 후자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경기가 침체되면서 지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지만 전자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쥐어짤 만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체감 물가, 즉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국민으로선 전자가 나타나면 후자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스크루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경제 고통(실업률+물가상승률-성장률)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손에 들어오는 소득이 줄어 쥐어짜더라도 체감 물가가 올라 살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 경기 얘기를 하면 우리 국민 입에서 처음 떨어지는 이 하소연을 정책 당국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태크플레이션보다 무서운‘스크루플레이션’, 경제 고통 커진다

◆한국 경제 부진,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

한국 경기가 이처럼 부진한 것은 ‘외부 요인’보다 ‘내부 요인’에 더 문제가 있다. 현 정부 출범 초부터 한국 경제는 기본 설계와 경제정책 운용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불확실성 시대일수록 미국 등 주요 국가는 ‘성장’을 확실하게 지향하는데 소득 주도 성장은 ‘성장’인지 ‘분배’인지 불명확하고 오히려 후자에 가깝다.

경제정책 운용도 ‘갈라파고스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올 만큼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사례가 많았다. 정부의 역할이 세계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지만 한국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거시경제 목표도 ‘성장’ 대비 ‘소득 주도 성장(성장과 분배 간 경계 모호)’, 제조업 정책은 ‘리쇼링’ 대비 ‘오프쇼링’, 기업 정책은 ‘우호적’ 대비 ‘비우호적’이다.

규제 정책은 ‘프리 존’ 대비 ‘유니크 존’, 상법 개정은 ‘경영권 보호’ 대비 ‘경영권 노출’, 세제 정책은 ‘세금 감면’ 대비 ‘세금 인상’, 노동정책은 ‘노사 균등’ 대비 ‘노조 우대’로 대조적이다. 명시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부 정책 결정과 집행권자의 의식과 가치가 이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뒤늦게 내리기는 했지만 작년 11월 말 금리를 올린 것도 문제였다. 한국은행의 1선 목표(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대로라면 오히려 낮췄어야 했다. 하지만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라는 모호한 이유를 들어 금리를 올린 것이 결과적으로 경기를 더 어렵게 했다. 한국보다 경기가 더 좋은 미국은 금융 완화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과 대조가 된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1분기와 마찬가지로 2분기에도 정부 지출 기여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재정수입이 기업과 국민의 경제활동에 부담이 될 정도로 많이 걷었거나 재정지출이 늘어난 공무원 봉급 등 일반 경직성 경비와 복지비 등 단순 소득 이전 항목을 중심으로 집행돼 경기적인 측면에서 재정정책이 잘못 운영됐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패를 훤히, 그것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증강현실(AR) 시대에서는 ‘3분기 이후 성장률이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추측과 기대감에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 미·중 간 마찰 장기화, 일본 경제 보복, 갈수록 꼬이는 중동 정세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변수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스태크플레이션보다 무서운‘스크루플레이션’, 경제 고통 커진다

◆정책은 ‘타이밍’…‘경제’ 우선순위 맞춰야

뼈를 깎는 노력은 모두가 해야 한다. 경기와 관련해 우리 내부에서는 이분법적인 사고 악습이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더 심하게 나타난다. 경기 부진의 모든 책임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당국에 있다는 고질병이다. 심지어 집권당 국회의원조차 그런 성향을 갖고 있다.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다

현 정부도 출범한 지 어느덧 3년째를 맞았다. 솔직하고 객관적인 출범 2년 평가를 토대로 국정 운영의 틀을 재점검해야 할 때다. 시급한 것은 지난 2년 동안 국민이 쉽게 납득이 안 되고 우려해 온 남북문제에 쏠려 있는 국정 운영의 우선순위를 ‘경제’ 쪽으로 돌려야 한다. 갑작스러운 선회가 부담스럽다면 최소한 ‘경제’와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경제’ 우선의 국정 운영 틀이 잡히면 기본 설계를 바로잡고 경제 리더십을 강화하는 일이 그다음 과제다. ‘혁신 성장’은 아주 잘된 작품이다. 반면 소득 주도 성장은 아직도 말이 많고 2년 이상 기다렸는데 뚜렷한 성과가 없다.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 등 소득 주도 성장 실천 과제도 같은 맥락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서 미국과 중국처럼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없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은 한국과 같은 국가의 기본 성장 전략이다. 특히 기업 정책은 세계적인 추세와 맞춰야 한다. 그 어느 국가보다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갈라파고스 함정(세계와 격리)’에 빠졌다는 비판을 듣는 여건에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도 책임이 크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시급하고 경기 부양 효과가 큰 경제정책일수록 당리당략에 얽매여 제때 결정해 주지 못한 것이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했다. 국회의원이 제 역할만 했더라면 코스피지수가 3000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은 한번쯤은 곱새겨 볼 대목이다.

기업과 국민도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이 많다. 정부와 국회의원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경제 대국이 된 미국과 중국은 마지막 1초까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데 정부와 국회의원 탓만 해서는 ‘과부하(over load)→속도 저하(stall out)→‘자유낙하(free fall)’되는 생존 여건에서는 경쟁에서 탈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sch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5호(2019.07.29 ~ 2019.08.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