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정치꾼’ 아베의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중요한 시점

[한경비즈니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한·일 간 경제 보복 맞대결이 갈수록 꼬이는 양상이다. ‘일본 침략’이라는 역사적인 반일 감정과 ‘남북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특수성까지 결부돼 양국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상 게임 방식을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과정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대외 통상 정책의 최종 목표는 ‘미국의 재건’이다. 직전 오바마 정부의 태생적 한계였던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크게 손상된 국제 위상과 주도권의 반작용에서 나온 대외 정책 기조다. 한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미국 국익 간 상충될 때는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트럼프식 게임 이론’으로 풀어보는 한·일 경제 보복 행로 전망

◆트럼프 보호주의 색채 ‘역대 최고’

보호주의 색채로 본다면 ‘역대 최고’로 평가된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은 1930년대 대공황을 야기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 시절(스무트-홀리법 탄생)에 비유될 만큼 ‘극단적 보호주의’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난 2년 동안 보여준 대외 통상 정책에서 이전 정부와 구별되는 네 가지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과 책임만 지는 국제 규범과 협상에 대한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와 범태평양경제협의체(TPP) 탈퇴 의사, 파리 신기후협상 불참 통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혹은 폐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국가별로는 무역 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대미국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무역 적자 확대국에 대해 통상 압력을 가해 시정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문제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전부터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심상치 않다. 무역·통상·지식재산권·환율 등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등 경제 외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세계경제 양대 축인 두 국가 간 마찰은 그 파장이 의외로 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셋째, 목적을 도달하기 이해서는 모든 통상 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반덤핑 관세, 상계관세 등 WTO 규범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자국 법에 근거한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다. 심지어 새로운 상호 호혜세를 부과한다든가 미국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발동할 수 있는 슈퍼 301조까지 동원한다.

넷째, 통상 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국 통상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한다든가 대북한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통상 압력을 높이고 있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 정책에 쉽게 대처하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다섯째, 교역국을 상대로 한 통상 정책이 먹힐 것인지 여부를 중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도의 협상 전략가다. 성공한 욕심 많은 기업인 출신답게 참가자 모두가 이익을 취하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non zero-sum game)’보다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시식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즐긴다.
‘트럼프식 게임 이론’으로 풀어보는 한·일 경제 보복 행로 전망

◆대외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강화 시급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를 단독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아베 총리는 정치 3세대로 전형적인 금수저 출신 정치인이다. 선친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은 ‘우경화 성향’이 강한 정치인으로 국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도 취임한 이후 신사참배로 국제적으로 비난의 표적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아베 총리는 ‘정치가(statesman)’가 아니라 ‘정치꾼(politician)’으로 분류된다. 정치가는 ‘다음 세대’와 ‘국민’을 생각하는 데 반해 정치꾼은 ‘다음 선거’와 ‘자신의 자리’만을 연연하는 정치인을 말한다.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가 참의원 선거를 겨냥했다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는 일제에 국권이 피탈된 지 햇수로 110년이 된다. 일본의 공습이 재개됐다. ‘군사적 수단’에서 ‘경제적 수단’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은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에 반발한다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구조적 장기 침체론(L자형 장기 침체,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혹은 중진국 함정)’이 급부상하고 남북 관계를 풀어 나가는데 난항이 예상된다.

중요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서 보듯이 규범과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힘들다. WTO 분쟁처리기구(DSB)에 제소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아베 정부가 따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수입처 다변화도 그렇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다. 뒤늦게 국제 공조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키(key)’를 쥐고 있는 미국이 한국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의 긴밀한 관계(상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소원한 관계)를 감안하면 일본을 두둔할 가능성이 높다.

하루빨리 아베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 ‘옴니버스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 대응을 남북 관계 등의 다른 정책과 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베 정부가 북한과 연관해 추진하는 움직임과 맞지 않아 의외로 효과가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한·일 경제 보복 맞대결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대외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를 강화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sch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3호(2019.07.15 ~ 2019.07.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