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인사이트]
-‘성장’ 중심으로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
-발권력 동원하는 ‘현대통화이론’도 확산
선제적 금리 인하 나선 Fed, 1995년 ‘성장주 랠리’ 재연될까
[한경비즈니스 칼럼=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트럼프의 시대다. TV 프로그램 ‘어프랜티스’에서 보여준 경영 수완을 그저 연기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기에는 그의 성취가 기대 이상이다.

1981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떠오른다. 재임 초기 영화배우가 무슨 미국의 대통령이냐는 냉소도 있었지만 결국 그가 시작한 ‘강한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 체제’를 붕괴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중국이 스스로 글로벌 질서 안에 들어오도록 압박해 왔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후에도 글로벌 패권 경쟁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치밀한 계획 아래 중국을 견제하면서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경제 총력전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향한 선거운동은 이미 시작됐다.

◆7월 기준금리 인하 임박

굳건한 미국 경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력한 지원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안은 적절했고 일자리는 늘어났으며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경제만 놓고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는 1990년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비길 만하다.

클린턴 집권기(1993~2001년) 미국은 장기 경제 호황 속에서 정보기술(IT) 산업을 기반으로 경제 시스템을 재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고 이는 미 중앙은행(Fed)의 정책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근 상황은 1995년과 매우 유사하다. 두 시기 모두 신기술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성장주가 증시를 견인했다. 이러한 경제 호황과 성장주의 강세를 뒷받침한 것은 Fed의 역할 변화였다. Fed는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이미지가 강하다.

월리엄 맥체스니 주니어(1951~1970년)와 폴 보커(1972~1987년), 이들 두 Fed 의장의 그림자가 짙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기준금리 사이클과 현 상황은 다르다. 오히려 1994년 기준금리를 3.25%에서 6%까지 인상한 뒤 금리 인상으로 경제지표가 부진해지자 1995년 7월 금리를 재차 인하했고 이러한 정책 효과에 힘입어 미국 성장주의 랠리가 가속화했다.

1995년 금리 인하는 당시 Fed 의장인 앨런 블라인더에 의해 ‘보험적 금리 인하(insurance cuts)’로 표현됐다. 경기 침체 확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단행되는 선제적 금리 인하를 의미한다. 1995년 7월과 2019년 7월은 맞닿아 있다.

여전히 미국 경제의 침체 확률이 높지 않은 상황이지만 2018년 Fed의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부담이 돼 왔기 때문이다. 2018년 말 Fed의 금리 인상 컨센서스는 두 차례였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고민은 Fed가 금리 인하를 몇 차례나 할 것이냐는 것이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 6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인내심’ 문구를 삭제하면서 시장은 Fed가 금리 인하에 대한 인내심을 버렸다고 환호했다. 시장은 7월과 9월, 12월 세 차례의 금리 인상을 금리에 반영했다.

파월 의장은 6월 25일 “더 큰 불확실성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변화에 과도한 대응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했고 대표적 비둘기파인 세인트루이스 Fed의 제임스 블라드 총재도 0.5%포인트 인하에 대해 “과도하다”고 말했다.

7월 50bp(0.01%포인트) 인하보다 25bp 인하 이후 1~2차례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시장의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금리 인하가 경기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보험성 인하’라고 주장해 왔다.

즉 경기의 둔화를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과거 경기 침체와 함께했던 금리 인하와 무엇이 다를까.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Fed의 통화정책이 효과를 미치는 시간은 정책 집행 후 1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의 금리 인하가 보험성 정책으로서도 늦을 수 있다. 이러한 반응들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또 두 차례 이상의 금리 인하를 반영하고 있다.

현재 기준금리 상하단인 2.25~ 2.5%의 평균값으로 생각하면 기준금리는 2.37%다. 25bp 인하는 2.17%, 두 차례 인하라면 1.92%다. 밴드로는 2~2.25%, 1.75~2%가 된다.

이쯤에서 이제는 정말로 금융 체계, 아니 경제의 전반적 체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겹도록 들었던 저금리·저성장 시대라는 단어가 단순히 금융 위기에 따른 경제 모멘텀 침체의 여파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경제의 전반적 변화가 저성장을 지속하고 이 때문에 금리나 정책의 방향이 경제를 지탱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최근 논의되는 현대통화이론(MMT)이 이론적으로 성립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단순히 금리 이론으로서의 MMT라면 현대경제이론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부터 최근까지 중앙은행들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 금융 위기 이후 많은 국가가 금리를 급격히 낮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금리 인하를 통해 수요를 창출한다는 중앙은행의 전통적 기능이다.

하지만 기준금리만으로 성장을 이끌어 가기 어려워진 중앙은행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양적 완화(QE)를 실시하게 된다. 한마디로 국채를 사들여 시중에 돈을 풀기 시작하는 것이다.

◆‘Fed는 인플레이션 파이터’ 공식 퇴색

기준금리 인하와 QE를 통해 위기 구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기를 넘어 성장으로의 전환은 두 가지 정책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에서 신봉하는 필립스 곡선의 핵심은 두 가지다.

실업률이 내려가면 임금이 상승하고 실업률이 내려가면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후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실업률이 내려가고 임금이 인상돼도 물가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노동생산성의 하락, 즉 우리가 원하는 만큼 기술 수준의 발전이 빠르지 않다는 것도 이유지만 근본적 배경에는 QE와 기준금리 인하가 자산 가격의 상승에 가장 크게 사용된다는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MMT는 정부의 발권을 통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늘어나는 통화량이 전액 사용되는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은 아직 MMT가 고려될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미국의 기준금리는 2.25~2.5%로 경기 성장을 위해 내려야 할 기준금리 여력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로존과 일본의 시각에서 판단한다면 어떨까. 경기 성장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금리는 0% 수준이고 추가적 양적 완화의 효과는 불확실하다.

굳이 시장에서 얘기되는 MMT의 형태가 아니라도 정부의 재정 집행을 늘릴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발권량을 일부 늘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미국 정치권에서 MMT 논쟁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주자로 꼽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직접적으로 MMT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론 자체만 놓고 보면 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더 연상된다.

달러가 약해져야 하고 재정 적자 비율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준금리를 0%로 고정해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과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어 한다. 그는 Fed에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냈고 Fed도 일정 부분 이에 반응했다. MMT를 적용하면 통화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공공 부채 증가가 나타나지 않아 사실상 부채 한도 이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시장이 원하는 정책의 본질이 결국은 MMT와 유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알고 있다. 여기에 Fed의 역할은 경기의 성장으로 흐르고 있고 성장을 위한 통화정책은 금리의 하락 속도를 높인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대해 온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Fed는 사라지고 있다. 물론 MMT가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효과를 보여주는 정책 조합이 금융시장에 반영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된 돌출 행동이 글로벌 유동성의 위험 자산 선호를 자극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2호(2019.07.08 ~ 2019.07.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