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겨낭 돌출 공약 봇물
8월 30일 미 언론들에 따르면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전날 뉴햄프셔 주 타운홀 미팅에서 불법 이민자 근절 대책의 하나로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동선을 국제 화물 운송 서비스 업체인 페덱스(FedEx)가 취급하는 화물처럼 추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불법 이민자 대책을 거론하던 중 “페덱스 온라인 시스템에서는 당신 화물이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지만 미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입국과 함께 위치를 놓치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비자 기한이 만료될 때까지 추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시스템을 통해 불법 체류자를 40%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는 ‘사람을 화물처럼 취급하려고 하다니 제정신인가’, ‘경선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니 트럼프와 친구가 되려는 것인가’ 등의 비난 글이 쇄도했다.
공화당 유력 주자 중 하나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 전 주지사도 지난 8월 말 “아시아인들이 ‘출생 시민권 제도(미 영토 내 출생자에게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조직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발언해 아시아계 이민 사회의 거센 반발을 야기한 바 있다.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 전까지는 이슈가 되지 않았다. 20년 장기 호황으로 이민자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려운 경기 상황에 내년 대통령 선거라는 큰 정치 일정이 겹치면서 이민 문제, 특히 불법 이민자 처리 문제가 미국의 갈등 이슈로 갑자기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대선 겹친 탓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미국 이민자는 4210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13.3%다. 숫자나 비율로 사상 최대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비자 없이 불법 입국하거나 체류 기간이 지났는데도 출국하지 않는 불법 체류자들이다. 4210만 명 중 약 1100만 명이 이런 불법 체류자로 분류된다. 트럼프 후보는 이들을 강제 추방하고 이들이 넘어올 수 없게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자고 주장한다. 또 미 시민권 취득 목적의 ‘원정 출산’을 막기 위해 미 수정헌법 14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으로 귀화한 사람은 미국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 이민조사센터(CIS)는 매년 3만6000명의 원정 출산자들이 미국으로 입국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트럼프 후보를 비롯한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민자를 규제하는 법 개정에 찬성한다. 이를 통해 미국적 가치와 법치주의를 보호하고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 언론들은 이에 동조하는 미 보수층의 속내는 다르다고 분석하고 있다. 가치관의 문제보다 일자리 등 현실적인 이해득실과 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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