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겨낭 돌출 공약 봇물

공화당 주자들 ‘트럼프 따라하기’
미국 공화당 대통령 선거 경선 주자들의 막말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6월 16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멕시코 불법 체류자들은 성폭행범”이란 막말로 흥행에 성공하자 너도나도 ‘트럼프 따라하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8월 30일 미 언론들에 따르면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전날 뉴햄프셔 주 타운홀 미팅에서 불법 이민자 근절 대책의 하나로 미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의 동선을 국제 화물 운송 서비스 업체인 페덱스(FedEx)가 취급하는 화물처럼 추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불법 이민자 대책을 거론하던 중 “페덱스 온라인 시스템에서는 당신 화물이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지만 미국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입국과 함께 위치를 놓치게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비자 기한이 만료될 때까지 추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시스템을 통해 불법 체류자를 40%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면서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는 ‘사람을 화물처럼 취급하려고 하다니 제정신인가’, ‘경선에서 인기를 얻지 못하니 트럼프와 친구가 되려는 것인가’ 등의 비난 글이 쇄도했다.

공화당 유력 주자 중 하나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 전 주지사도 지난 8월 말 “아시아인들이 ‘출생 시민권 제도(미 영토 내 출생자에게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조직적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발언해 아시아계 이민 사회의 거센 반발을 야기한 바 있다.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 전까지는 이슈가 되지 않았다. 20년 장기 호황으로 이민자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려운 경기 상황에 내년 대통령 선거라는 큰 정치 일정이 겹치면서 이민 문제, 특히 불법 이민자 처리 문제가 미국의 갈등 이슈로 갑자기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대선 겹친 탓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미국 이민자는 4210만 명이다. 전체 인구의 13.3%다. 숫자나 비율로 사상 최대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비자 없이 불법 입국하거나 체류 기간이 지났는데도 출국하지 않는 불법 체류자들이다. 4210만 명 중 약 1100만 명이 이런 불법 체류자로 분류된다. 트럼프 후보는 이들을 강제 추방하고 이들이 넘어올 수 없게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자고 주장한다. 또 미 시민권 취득 목적의 ‘원정 출산’을 막기 위해 미 수정헌법 14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미국으로 귀화한 사람은 미국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 이민조사센터(CIS)는 매년 3만6000명의 원정 출산자들이 미국으로 입국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트럼프 후보를 비롯한 공화당 대선 주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민자를 규제하는 법 개정에 찬성한다. 이를 통해 미국적 가치와 법치주의를 보호하고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 언론들은 이에 동조하는 미 보수층의 속내는 다르다고 분석하고 있다. 가치관의 문제보다 일자리 등 현실적인 이해득실과 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