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웅 다음 창업자…‘다음’떼고 ‘카카오’로 사명 바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다음 신화’
“즐거운 실험이 일단락되고 회사 이름은 소멸되지만 그 문화, 그 DNA 그리고 그 문화와 DNA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직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이재웅(47) 다음 창업자가 9월 2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다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밝혔다. 다음카카오가 9월 23일 열릴 임시 주주총회에서 회사 이름을 다음카카오에서 카카오로 변경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반응이었다. 이 창업자는 “실험이 성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세상이 더 빨리 바뀌었다면 자신도 바뀔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고 말했다.

다음·카카오 합병 1년 만의 변화
다음의 20년 역사는 격세지감을 실감나게 한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다음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을 발표한 지난해 10월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공식 출범 기자 간담회는 성대하게 치러졌고 최세훈·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 대표는 손을 맞잡고 파이팅을 외쳤다. 비록 2008년 경영 악화를 책임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로서 이 창업자는 다음의 새로운 내일을 응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다음카카오가 김범수 의장의 최측근인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를 다음카카오의 새 대표로 임명한 데 이어 사명을 변경하기로 하면서 회사 이름과 로고에서 다음은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다음카카오는 “포털 서비스 ‘다음’과 모바일 서비스 ‘카카오’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웹과 모바일을 대표하는 두 회사의 이름을 물리적으로 나란히 표기하는 ‘다음카카오’라는 회사 이름에는 기업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모호한 측면도 있었다”면서 사명 변경을 결정했다. 이 창업자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 창업자가 페이스북에 언급한 ‘즐거운 실험’은 다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업 문화였다.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고 구성원들이 직책이나 직급 대신 ‘~님’으로 부르도록 실험한 첫 회사였다. 파격적인 시도도 했다. ‘전인격적인 변화’를 통한 새로운 서비스를 꿈꾸며 본사를 제주도로 옮긴 실험이었다. 하지만 다음카카오의 합병 이후 역량을 판교에 집중하면서 제주 사옥은 핵심 서비스 육성에서 지역 기반 사업으로 성격이 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이 창업자의 즐거운 실험은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게 됐다. 이 창업자는 후회도 많이 남는다고 했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전설을 만드느라 모두 고생했고 고맙다”는 응원의 말도 전했다.

약력 : 1968년생. 연세대 컴퓨터학과 졸업. 다음커뮤니케이션 설립. 2008년 6월 다음 퇴사. 엔젤 투자자로 후진 양성. 사회적 기업 ‘소풍(Sopoong)’ 대표(현)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