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긴축정책 접고 부양 모드로 급선회, 연착륙 여부가 세계 증시 좌우
지난 1년 동안 거침없이 올랐던 중국 증시가 6월 중순 이후 급락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던 중국 증시에 대해 갑작스럽게 거품 논쟁과 함께 앞날을 보는 시각도 비관론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금융 위기 직전 차이나 펀드에 가입해 깊은 상처를 입었던 국내 투자자에게는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중국 증시의 급락 원인을 알아보려면 지난 1년 동안 급등한 배경부터 살펴봐야 한다. 주가 결정의 최대 요인인 경기를 좋다고 진단한 예측 기관이나 금융사는 거의 없었다. 작년 성장률은 7.4%로, 16년 만에 중국 정부의 목표치인 7.5%를 밑돌았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중·장기적으로 ‘중진국 함정’ 가능성을 놓고 작년 내내 논쟁이 지속됐다.
경기 침체 속에 주가가 급등하자 ‘후강퉁(상하이·홍콩 간 교차 거래) 효과’로 밀어붙이는 금융사도 많았다. 제도적으로 중국 주식에 직접 투자할 길이 열린다고 하더라도 경기가 침체된다면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 기초 여건이 받쳐 주지 못하면 투자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성장률 인식부터 잘못됐다는 얘기다.
투자 관점에서 성장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S자형 이론’에 대한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 이 이론은 사람의 성장곡선에서 유래됐다. 사람이 태어나 유아기를 거쳐 청소년 전반기에 들어서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이후 청소년 후반기에 들어서면 그 속도가 둔화되다가 장년기 이후 멈춘다는 것이 성장곡선의 핵심이다.
중국 경기 침체 진단의 잣대가 된 10%대 성장률을 S자형 이론에 적용하면 청소년 전반기에 해당한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진다면 3000달러 내외다. 작년에는 8000달러에 육박해 청소년 후반기에 들어섰다. 성장률이 둔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차트 분석상 10~12%에서 7%로 떨어졌다고 경기 침체로 보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경기가 침체됐다고 진단하면 날로 높아지는 중국의 국제 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모든 투자는 상대 수익률에 의해 결정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외환 위기 당시 예금 금리는 20%대였다. 이때 A은행이 20%, B은행이 23%를 지급한다면 시중 자금은 B은행으로 몰린다. 최근처럼 예금 금리 절대 수준이 1%대로 떨어져 A은행이 1%, B은행이 1.5%라면 결과는 외환 위기 당시와 동일하게 나온다. 금융 위기 이후 저성장 추세가 일반적이다. 중국의 성장률이 떨어졌기는 했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덜 떨어졌고 국제 위상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높아지는 국제 위상에 맞춰 양대 자유화 부문 중 경상거래에 비해 미흡했던 자본거래 자유화를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중국 국민뿐만 아니라 외국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했다.
S자형 이론을 중국 증시에 적용해 보면 이미 연초부터 주가가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 속도는 둔화될 가능성이 높았었다. 주가가 높아질수록 호재보다 악재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가가 낮아 악재보다 호재에 민감했던 1년 전에 비해서는 같은 1000포인트가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더 걸린다는 의미다.
주가가 1000포인트 올랐다고 하더라도 수익률은 1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상하이 지수가 1년 전 ‘2000’대였을 때는 상승 폭 1000포인트의 수익률이 50%였다. 하지만 ‘4000’대로 올라온 최근에는 25%에 불과하다. 통계 기법상의 ‘기저효과(분자가 같아도 분모에 따라 증감률이 달라지는 현상)’ 때문이다. 재테크의 양대 요인인 투자 기간이나 수익률 면에서 주가가 올라갈수록 이익을 보기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 증시에 먼저 투자해 높은 수익을 낸 스마트 머니가 주변에 속속 나타남에 따라 부러움과 시기심에 마음이 급해져 직접 투자하려는 일반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이런 심리에 편승해 중국 주식을 뒤늦게 사라고 권유하는 금융사도 있었다. 심지어 ‘작년 말까지 권유했던 브라질 국채를 팔고 그 대금으로 중국 증시에 투자하라’고 추천하는 증권사도 있었다.
투자자·금융사 모두가 과욕이다. 이런 때일수록 기본과 균형을 지키면서 신중하고 기다리는 투자를 해야 한다. 중국과 같은 신흥국 주식 투자일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이런 원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이 중국 증시가 폭락하는 사태를 맞고 있다.
증시 폭락, 경기 둔화, 부동산 거품, 그림자 금융. 현재 중국 경제가 당면한 4대 현안이다. 특히 감독권에서 벗어난 모든 유동성을 통칭하는 그림자 금융 규모가 워낙 커 올 6월 이후 주가 폭락이 자칫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이어져 ‘중국판 모기지 사태’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외연적 성장을 거칠 때 부동산(혹은 증시) 거품, 물가 앙등 등과 같은 심각한 성장통을 겪는다. 중국도 이런 후유증을 걷어낼 목적으로 1차로 2004년 하반기부터 1년 6개월 동안, 2차로 2010년부터 긴축정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중국 정부는 물가를 잡는 데 주력해 온 것이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긴축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던 금리 인상이 대내외 여건이 따르지 않아 실패했다. 1차 긴축기에는 의욕적으로 단행했던 금리 인상이 때맞춰 불어 닥친 증시 호황으로 국내 여신을 잡는 데 한계가 있었다. 2차 긴축기에는 미국 등 선진국이 금리를 대폭 내리자 중국과의 금리 차를 노린 핫머니가 대거 유입돼 증시보다 부동산 거품이 더 심하게 발생했다. 현재 주가순자산배율(PBR)은 5배,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B)은 9배다.
당초 계획보다 길어진 긴축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리 인상→ 핫머니 유입→ 통화 팽창→ 부동산 거품·물가 앙등→ 추가 금리 인상’의 나선형 악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금리 인상 폭도 커져 실물 경기마저 둔화되기 시작했다. 작년 성장률은 7.4%로, 16년 만에 목표 성장률 7.5%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때 그림자 금융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긴축을 단행하면 중국 경제는 곧바로 경기 순환상으로 ‘경착륙’에 추락할 위험이 높다. 중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긴축정책의 방향을 대거 수정했다. 작년 11월부터 예금과 대출금리 인하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부양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올해 6월 중순 이후 뜻하지 않은 증시 폭락으로 오히려 잠복돼 왔던 ‘그림자 금융발 위기설’까지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2단계 부양 조치로 ‘중국판 양적 완화’ 정책을 내놓은 데 이어 3단계 부양 조치로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를 단행했다. 최후 보루인 이 정책의 성공 여부가 올여름 휴가철 이후 세계 증시의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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