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혁신적·창조적 투자 확대’ 주문, 2020년까지 최대 80조 원 투자

"반도체에만 46조" 통큰 투자 행보
“어려울 때 투자를 조기에 집행하고 계획보다 확대하는 것이 대기업이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 8월 17일 ‘확대 경영회의’에서 했던 말이다. 사면 이후 곧바로 경영에 복귀한 최 회장이 ‘광폭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복귀 후 첫 경영회의였던 확대 경영회의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 역시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투자 확대’였다. 최 회장은 크게 세 분야에서 공격적인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SK그룹의 주춧돌에 해당하는 에너지화학, 1990년대 이후 성장을 이끌었던 정보통신, SK그룹의 재도약을 위한 반도체다. 2020년까지 최대 80조 원에 이르는 투자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낸드플래시 분야에 집중 투자 예상

경영에 복귀한 최 회장이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단연 ‘반도체’다. 가장 먼저 찾은 ‘현장’도 경기도 이천의 SK하이닉스 반도체 사업장이었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그룹 내 일부 경영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이 직접 인수를 강행했을 만큼 애정이 깊은 계열사다. 최근 SK텔레콤·SK이노베이션 등 기존 주력 계열사들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며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가장 먼저 투자 계획을 밝힌 곳 또한 반도체였다.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향후 5년간 46조 원에 달하는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 금액은 현재 건설 중인 이천 신공장 M14 생산 라인의 장비 투자 외에 2개의 신규 공장을 증설하는 데 쓰인다.

경기도 이천의 M14 생산 라인은 최신 메모리 반도체 생산 라인이다.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공장 건설과 1차 클린 룸(반도체 생산을 위한 진공 설비) 작업에만 2조3800억 원이 투입됐고 향후 설비를 다 채우려면 약 13조 원가량이 투입된다. 현재 건설 중인 이천 신공장 외에 2개의 신규 공장 증설 계획은 이날 처음 발표됐다. SK하이닉스는 청주 공장 인근 산업 용지 20여만㎡에 반도체 생산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이다. 착공 시기는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다.

세부적인 투자 방안에 대해서는 8월 25일 SK하이닉스 이천 공장 M14 생산 라인 준공식에 최 회장이 참석해 직접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새로 증설되는 2개 공장 역시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미지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D램 반도체보다 3D(3차원) 낸드플래시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2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뒤져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샌디스크·마이크론에 밀려 업계 4~5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박유악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대규모 투자금이 낸드플래시 분야에 집중 투하된다면 관련 분야에서 경쟁업 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는 데도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도체 분야에만 이렇듯 대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우려의 시선 또한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주가는 8월 17일 투자 발표 이후 8월 19일까지 3일 연속 하락세를 지속했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8월 17일 이후 외국인들의 대량 매도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미 포화 상태나 다름없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치킨게임이 재개된 것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규 공장 증설을 위한 자금 조달과 장비 조달 등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분기 연속 영업이익 1조 원 이상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신규 공장 2개를 단기간에 증설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반도체 최신 장비들은 상당수 제품들이 일본과 유럽의 일부 전문 기업에서만 제한적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단기간 물량을 확보하는 데 난관이 예상된다.

2017년 대규모 LNG 발전소 준공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 분야 또한 최 회장의 복귀로 큰 밑그림을 다시 그리게 됐다. 가장 먼저 그동안 움츠러들었던 인수·합병(M&A) 역시 ‘공격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SK그룹은 최 회장의 경영 공백 동안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 분야의 인수전에서 여러 차례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2013년 SK텔레콤은 보안 업체인 ADT캡스의 인수전에서 패배했고 SK에너지는 2014년 호주 유나이티드페트롤리엄(UP)의 지분 인수를 포기했다. SK네트웍스는 올해 초 KT렌탈 인수전에서 쓴잔을 삼켜야 했다. 이번 최 회장의 복귀를 계기로 에너지 화학과 정보통신 등 SK그룹의 주력 분야에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M&A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물인터넷(IoT)을 중심으로 한 신기술 투자 확대가 눈에 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SK그룹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통신 서비스 기술을 바탕으로 콘텐츠·물류 사업까지 ICT 기반을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투자 전략은 시대가 요구하는 사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기적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첫걸음이 대만 혼하이그룹과의 합작 법인 설립이다. SK그룹은 2014년 4월 혼하이그룹과 제휴 관계를 맺었지만 지난 1년간 두 그룹의 제휴 관계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최 회장은 사면이 확정되자마자 ‘대만의 삼성전자’라고 불리는 혼하이그룹과 정보기술(IT) 서비스 사업 관련 합작 법인 설립을 구체화했다. 혼하이그룹의 제조 설비·공정에 대한 IT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향후 중국 IT 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홍콩 스마트센서·IoT 부품 제조사인 다이와어소시에이트홀딩스 인수도 추진 중이다.

에너지 화학 분야에서는 현재 광양에 이어 장흥·문산에 건설 중인 액화 천연가스(LNG) 발전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SK그룹 내에서 LNG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K E&S는 2017년 장흥·문산에 LNG 복합 발전소를 완공할 예정이다. 장흥·문산발전소는 발전 용량이 1.8GW로 광양발전소보다 1.7배 더 큰 규모로 연간 사용할 LNG가 12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수익성 제고를 위해 LNG를 직접 도입하는 방안도 계획 중이다. 2016년부터 인도네시아 탕구 외 칼리만탄 가스전에서 2016년부터 연간 150만 톤 규모의 LNG를 직도입할 예정이다. LNG를 해외에서 직도입하기 위해서는 LNG 보관 터미널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현재 GS와 합작으로 충남 보령에 연 300만 톤을 처리할 수 있는 LNG 터미널을 건설 중으로, 2016년 완공 예정이다. 그러나 LNG 직도입 관련 노하우와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밖에 SK그룹이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 제약 분야 또한 활발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신약은 연구·개발(R&D) 분야로 임상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투자만 일어날 뿐 매출이 전무한 분야다. 따라서 최 회장의 바이오 제약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바이오 제약 분야의 투자 확대에 결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공영규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반도체·에너지·정보통신·바이오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서 투자를 확대하고 신규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구체적인 투자 계획이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인 만큼 어디에 어떻게 투자를 집행할 것인지에 따라 투자 성과가 갈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