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 50% 참여 가능하지만 대기업은 예외···'기형적 규제' 비판

미국의 앨리뱅크(Ally Bank)는 인터넷 전문 은행이면서 미국 내 예금 기준 29위의 대형 은행이다. 78만4000명의 고객에 1015억 달러(119조 원)의 자산을 가진 이 은행의 설립 주체는 바로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다. GM의 자동차 할부 금융 자회사인 얼라이파이낸셜의 자회사로 미국 자동차 할부 금융 시장 1위로 부상했다.

자동차 딜러 대상의 기업 대출(46%)과 자동차 구매자 대상의 오토론(38.9%)을 통한 이자 수입이 주요 수익원이다. 미국 내 2위 인터넷 전문 은행을 산업자본이 설립해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 : 계열사 간 내부 시장)을 바탕으로 종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에는 소니뱅크(Sony Bank)가 있다. 일본의 대표 전자 회사인 소니가 2001년 계열사 소니파이낸셜홀딩스(80%)를 중심으로 사쿠라은행(16%) 등과 함께 설립한 인터넷 전문 은행이다. 지난해 12월 기준 자본금 310억 엔, 자기자본이익률(ROE) 5.4%, 총자산 2조554억 엔을 보유한 곳으로 인터넷 전문 은행 고객 창출 4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출(52%)과 유가증권(38%) 투자를 통한 이자 수입(72%)이 주요 수익원이다. 소니라는 브랜드를 업고 초기 시장을 선점해 인터넷 전문 은행 중 최초로 자산 관리 중심의 풀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밖에 통신사인 KDDI가 시중은행 UFJ와 50%씩 출자한 지분뱅크(Jibun Bank)도 대표적인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 사례다.

국내에도 인터넷 전문 은행의 길이 열리면서 이른바 ‘삼성은행’, ‘현대차은행’이 탄생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23년간 신규 허가가 막힌 은행업 진출은 대기업을 비롯한 산업자본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인터넷 은행을 계기로 막혔던 물꼬가 터질 것인지 눈길이 쏠린 가운데 결론적으로 보면 삼성은행은 가능하지 않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한국형 인터넷 전문 은행 도입 방안’에 따르면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를 50% 허용하면서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예외로 뒀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2014년 말 현재 자산 총액 5조 원 이상 61개 기업집단으로, 이른바 ‘재벌 기업’을 비롯해 상당수의 대기업집단이 포함돼 있다.
은산 분리에 막힌 ‘한국판 소니뱅크’
미국 GM의 ‘앨리뱅크’는 대형 은행
인터넷 전문 은행 출범의 핵심 쟁점은 바로 금산 분리, 그중에서도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한 ‘은산 분리’였다. 인터넷 전문 은행 인가에는 은행법이 적용되는데, 현재는 은산 분리 규제로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는 은행 지분을 4%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만약 의결권 미행사를 전제로 금융위의 승인을 받으면 10%까지는 보유할 수 있다. 재벌 기업의 ‘사금고화’와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산업자본을 은행에서 멀리 떼어놓는 조치였다.

당초 보유 지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뚜껑을 열자 반응은 엇갈렸다.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완화”라는 의견과 “일부만 진입 가능한 제한적 완화”라는 의견이 나온다. 가장 큰 과제는 예민한 이슈인 은산 분리 완화 방안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여부다. 1950년 은행법 제정 이후 지분 한도는 9%를 넘은 적이 없다.

소유 구조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남아 있는 상태다. 규제 완화 반대쪽에서는 ‘예외 조항’을 둬 금산 분리 완화의 ‘물꼬’를 터 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최예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현재 은행법 내 예외 조항으로 인터넷 전문 은행에 대해 50%를 허용하면 이를 계기로 계속 예외 조항이 생길 수 있고 금산 분리가 완전히 무력화될 수 있다”며 “4%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인터넷 전문 은행이 설립되도록 만드는 게 정책”이라고 말했다.

또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빠져 있음에도 또 다른 문제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500억 원에 불과한 자본금으로 일반 은행의 모든 업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금융시장 위험으로 직결될 수 있고 과거 저축은행 파동을 보더라도 규모가 작다고 해서 더 윤리적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주장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자본의 금융 지배를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 전문 은행에 대한 금산 분리 규제 완화를 반대한다”며 “인터넷 은행과 은산 분리는 연관이 없고 은행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도입을 진행해야 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은산 분리에 막힌 ‘한국판 소니뱅크’
은산 분리, 온라인 따로 오프라인 따로?
규제 완화 찬성 쪽에서는 ‘공정한 기회’를 언급한다. 실질적으로 진출 가능한 곳은 일부 IT 기업에 불과하며 가능성 있는 대기업의 기회를 원천 봉쇄한 규제라고 말한다. 또한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 취지인 핀테크 활성화 차원에서도 해외에 뒤처지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핀테크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노하우’라는 점 때문이다. 강임호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술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노하우가 우선이 된 상태에서 기술이 결합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수익 모델이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시너지”라고 말했다.

은산 분리 완화가 곧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을 의미하는 것은 ‘오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정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금산 분리가 없는 곳에서조차 은행을 규제 산업이자 라이선스를 주는 특혜 산업으로 보기 때문에 인가를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은산 분리를 전면적으로 풀고 금융 당국이 지배 구조, 모회사 거래 등을 검토하며 인가 및 관리 감독을 강화하면 되는데, 애초에 기회를 박탈하면 아이디어와 노하우가 있는 기업에서는 생각조차 안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선진국 중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를 막는 은산 분리는 미국·이탈리아 정도가 남아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별도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비금융주력자에 대해 25% 한도를 인정하고 있고 5% 이상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리포트 의무화 등을 통해 금융 당국의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해외 사례를 볼 때 국내의 4%는 전 세계적으로도 엄격한 수준이다. 다만 해외 사례와는 다른 국내의 독특한 재벌 기업 지배 구조와 기업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은행법상 ‘기형적 구조’라는 문제도 남아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전문 은행에 대해서만 별도로 규제하는 국가는 없다. 그런데 한국은 같은 은행법 내에서 ‘온라인 따로, 오프라인 따로’인 셈이 됐다. 비즈니스 방법만 다를 뿐 둘 다 ‘똑같은 은행’이라는 점에서 별도의 규제를 두고 있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약하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법 내 인터넷 은행을 별도로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고 인가 심사 과정에서 투명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은산 분리 이슈는 아직 ‘정서법’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직은 규제 완화 반대쪽이 우세하다. 그러나 제한적이나마 은산 분리 역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완화가 추진되는 만큼 인터넷 전문 은행을 계기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향후 국회 테이블에서 숫자가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단번에 50%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모든 논의의 전제는 복합 금융그룹에 대한 충분한 감독 체계 구축이라는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은산 분리 완화 과정에 돌입한 만큼 제도 정비와 감독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제2의 동양 사태’ 같은 사고를 방지할 수 있고 인터넷 전문 은행에 대한 투명성도 확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