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어 중국도 '환 약세 드라이브'...정책 못편 한국만 뒤처져
중국이 전격적인 위안화 평가절하에 나섰다. 중국인민은행은 8월 11일, 12일, 13일 위안화 기준 환율을 달러당 각각 1.9%, 1.6%, 1.1% 상향하면서 1994년 이후 최대 폭의 평가절하를 단행했다.위안화 평가절하의 목적은 첫째, 수년간 달러 강세와 함께 심화된 달러·위안 환율의 절하 압력을 일부 용인하고 둘째, 이를 통해 실질실효환율의 초강세로 크게 약화된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며 셋째, 위안화 국제화의 필수 단계인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편입을 위한 시장화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과 한국이 겪는 위기는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2012년 이후 3년 반 동안 교역 가중치와 물가를 감안한 실질실효환율이 가장 많이 절상된 국가는 중국(21%)이며 2위는 한국(16%)이다. 같은 기간 동안 일본은 34%가 절하됐다. 중국과 한국은 과다 부채와 고령화 진전으로 이미 내수는 구조적인 부진을 겪고 있다. 전통적인 굴뚝 산업들의 산업구조 재편 작업도 느리다. 그나마 버텨 주던 수출은 2분기 기업 실적을 통해 3년 반 동안 누적된 자국 통화 강세의 영향으로 가격 경쟁력이 완전히 상실됐다는 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중국과 한국이 겪는 위기는 같아
민간 부문은 기업 이익 급감으로 신용 위험이 확대되고 있지만 정부 부문은 상당한 외화보유액과 재정 건전성, 경상흑자 등으로 안정적 흐름을 이어 가고 있다는 점, 과다 부채와 핵심 생산가능인구(25~49세) 감소 등으로 통화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동일하다.
중국의 7월 경제지표는 구조적인 경기 둔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과잉 재고에 따른 생산 증가율 둔화 ▷고정 투자와 수출 수요의 부족 ▷부동산 시장의 재고 부담에 따른 신규 착공 부진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의 괴리 확대가 반영하는 소비 및 서비스와 투자 및 수출 업종 간의 온도차다. 하반기 중국 경제는 상반기 서비스업(금융업 호황)의 성장 기여가 축소되고 환율 효과가 제조업의 구조적인 부진을 압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7%대 성장률을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아일랜드 등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화를 도입한 이후 6~7년에 걸쳐 실질실효환율이 약 15~20%가 절상되면서 재정 위기가 발생했다. 중국과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이 2012년 이후 각각 21%, 16%가 절상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격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양국은 적어도 남유럽이 겪었던 충격을 3년 반 만에 겪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변동환율제를 사용하고 있는 원화는 4월 말 1068원을 저점으로 약 9% 절하되며 충격을 완화하기 시작했지만 달러에 연동된 거의 고정환율제를 사용하고 있는 위안화의 평가절하 압력은 누적되고 있던 터였다.
전격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8월 11일, 12일 이틀 동안 달러 대비 전 세계에서 가장 약한 통화는 위안화(-2.8%)와 원화(-2.3%)였다. 말레이시아 링깃(-2.3%), 대만 대만 달러(-2.2%) 등 신흥 아시아의 충격이 컸다. 한편 최근 3개월 동안 원화 가치는 7.9% 절하되며 달러를 제외한 주요 24개 통화 중 러시아 루블(-22.2%), 브라질 헤알(-13.2%), 말레이시아 링깃(-10.2%), 뉴질랜드 뉴질랜드 달러(-10.1%), 노르웨이 크로네(-8.2%) 등 원자재 생산국들에 이어 여섯째로 약했다. 주요 24개 통화의 평균(-5.8%) 대비로는 약 2.1% 포인트가 더 약해졌다는 의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급격한 원화 약세가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갈 길은 아직 멀다. 버냉키 쇼크 이후 2년간 원화 가치는 6.7% 하락했지만 주요 24개 통화가치는 평균 18.9% 급락하며 약 12.3% 포인트의 간극이 벌어져 있다. 시야를 넓혀 한국 기업들이 찬사를 받았던 2012년 이후 3년 반 동안의 기간을 비교해 보면 간극은 더 확대된다. 원화 가치는 3.2% 하락에 그쳤지만 주요 24개 통화가치는 평균 18.8% 급락하며 15.7% 포인트나 더 벌어져 있다.
중국 당국은 위안화 절하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연초 엔화 약세에 힘입은 일본 업체들의 단가 인하에 이어 위안화 평가절하 직후 중국의 철강 업체들 역시 단가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8월 12일 장 마감 직전 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을 방어했지만 향후 고시 환율의 결정에는 시장 호가를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표명한 이상 추가적인 위안화 절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수년간 누적된 위안화 강세 폭을 감안할 때 당분간 위안화 환율은 완만한 약세 흐름이 불가피해 보인다. 외국인의 자본 유출을 채우기 위한 지준율 인하도 동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경쟁국인 신흥 아시아의 통화가치 절하를 유발하며 수출 경쟁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 이미 베트남은 베트남 동화의 환율 변동 폭을 확대하며 동반 절하에 나섰다. 위안화 평가절하는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하락과 함께 전 세계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중국산 제품들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교역 상대국들의 수입 물가가 대폭 하락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자국 통화 강세 압력에 노출된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 역시 양적 완화(QE)의 강화 내지 추가 완화 카드를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 역시 연내 기준 금리 인상을 시작하더라도 속도는 더욱 느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원자재를 생산하면서 달러 부채가 많은 기업들이나 신흥국의 신용 위험은 보다 높아질 것으로 판단된다. 전 세계적으로 장기금리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좀 더 길게 볼 때 위안화 환율 스탠스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의 자본 유출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누적된 실질실효환율 절상을 만회할 만큼의 절하를 유도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가격 변수를 통한 수출 진작에 의구심이 있기도 하고 위안화의 추세적인 약세가 신흥국의 자금 이탈로 연결돼 결국 수출 수요 감소로 되돌아올 위험도 있다.
또한 자본 유출이 계속되면 중국 내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한하고 구조적인 과잉투자와 부동산 경기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시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직접금융 육성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결국 외환시장이 정부의 통제 안에 있는 한 향후 위안화는 급격한 약세전환보다 완만한 약세 진행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비관적일 필요 없지만 낙관도 금물
원화 약세의 용인 외에 당국이 대응할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감안했을 때 원화 가치가 5~13%나 저평가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위안화 평가절하가 가져다줄 한국 경제의 위협과 충격 그리고 원화 약세에 대한 정책적 견해를 아직 정리하지 못한 듯하다. 경제부총리는 위안화 절하가 한국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말했고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 총재 역시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 모습으로 뚜렷한 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
환율 전쟁에서 뒤처진 부정적 영향이 내수와 수출 부진 그리고 기업 실적 악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적되면 신용 위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상당 폭의 원화 강세가 누적된 결과다. 최근 3개월 동안의 빠른 원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원화 강세 압력을 상쇄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환율이 변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야 경제지표에 영향을 준다는 ‘J 커브 효과’까지 고려하면 원화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 한국 경제는 그 시기 동안 어려운 환경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너무 비관적일 필요도 없겠지만 어설픈 낙관은 금물이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 djshin@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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