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통화 큰 폭 하락, 한국은 누적된 원화 강세 반작용
최근 재닛 옐런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여러 차례 연내 기준 금리의 정상화 개시를 암시하면서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란 핵협상 타결에 따른 원유 공급 우려와 중국의 금 보유량 공개 등도 원유·금 등 원자재 가격 하락과 이를 생산하는 신흥국 통화 약세를 부추겼다. 특히 1개월 만에 21% 폭락한 국제 유가(WTI)는 기대 인플레를 낮추면서 장기금리에 하락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난주부터는 한국 채권시장도 전 세계적인 장·단기 금리 차 축소 흐름에 동조화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외환시장의 흐름에 두 가지 특징이 관찰된다. 첫째, 달러 강세는 주로 신흥국 통화에 대해 진행 중이다. 최근 달러는 유로화와 엔화에 대해서는 약세를,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는 강세다. 큰 흐름에서 미국은 금리를 올리고 여타 중앙은행들은 여전히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달러가 강세 흐름을 나타내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고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반대로 모두 유동성 공급 속도를 늦추면서 오히려 달러에 대해 강세를 띠고 있는 것이다.
중국 리스크 여파로 원화 매도
유로화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 소멸로 약세 흐름이 한풀 꺾였다. 엔화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BOJ) 총재가 물가 상승에 자신감을 보이며 추가 양적·질적 완화(QQE)에 대해 보수적 자세를 보이면서 역시 약세 흐름에 제동이 걸렸다. 영국 중앙은행(BOE)이 내년 초 금리 인상을 암시하면서 영국 파운드화도 강세다. Fed로서는 오히려 금리 인상이 동반할 달러 강세의 부담을 덜어내고 있다.
둘째, 신흥국 및 원자재와 상대적으로 관련이 낮은 원화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1개월 동안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1% 하락하며 원자재 통화로 분류되는 브라질 헤알(-7.7%), 러시아 루블(-7.0%), 호주 호주 달러(-5.5%), 캐나다 캐나다 달러(-5.1%) 다음으로 약세 폭이 크다. 중국 경제의 위험이 높아지면서 중국과 관계가 높은 원화를 매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중국 당국이 무역 확대를 위해 위안화 1일 변동 폭 확대를 암시한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내수 부진을 채워 줘야 할 수출은 가격 경쟁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수출 부진과 한국 기업의 위기는 교역량 감소와 중국 경제 둔화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의 가격 경쟁력 상실에 기인한다. 그 이전까지 한국 기업들이 찬사를 받았던 2012년 이후 무역 가중치와 물가를 감안한 한국의 실질 실효 환율은 무려 16%나 절상됐다. 중국(21%)에 이은 압도적인 2위다. 같은 기간 일본의 실질 실효 환율은 34%나 절하됐다. 이쯤 되면 수출의 가격 경쟁력을 거의 잃어버린 셈이다.
누적된 원화 강세가 되돌려지기 전까지는 당국의 경기 부양책에 한계가 있다. 외국인의 채권 자금 이탈로 확산되지만 않는다면 약간의 주식 자금이 유출되더라도 원화 약세는 오히려 한국 기업들에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누적돼 온 원화의 상대적 강세 폭이 워낙 컸다. 최근 3개월간의 원화가 달러 대비 8% 이상 약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되돌리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이다.
외국인 자금 이탈 통상적 수준 그쳐
원화의 급격한 약세로 외국인의 자금 이탈 우려도 높다. 원·달러 환율은 4월 29일 달러당 1068.6원에서 약 3개월 만에 1167.9원까지 99.3원(-8.5%) 급등했다. 외국인은 6월 8일 이후 국내 주식시장에서 3조90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고 채권시장에서 원화 채권 보유 잔액은 7월 6일 106조2000억 원을 정점으로 7월 24일 현재 102조7000억 원까지 3조5000억 원이 감소했다.
하지만 연초 이후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와 채권 보유 잔액은 여전히 각각 6조 원, 2조3000억 원 증가한 상태다. 2010년 이후부터 집계하면 각각 46조1000억 원과 46조2000억 원이 증가했다. 지금까지의 매도 규모는 통상적인 수준이다. 경계감은 높지만 아직 추세적인 매도세로 보기에는 이르다.
이를 판단할 때 외국인의 장기 채권 매도는 중요하다. 외국인의 주식 매도는 변동성이 크고 민간 투자자들이 중심이지만 외국인의 장기채 매도는 한번 방향성을 잡으면 추세적인 성향이 강하고 주로 중앙은행의 외화보유액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의 매도는 통상적으로 ‘대한민국’을 파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7월 6일 이후 3주 만에 외국인의 원화 채권 보유 잔액이 3조5000억 원 급감했다. 잔액 감소 중 2조8000억 원은 만기 도래분이다. 이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순매도는 약 8000억 원에 불과하며 이는 통상적인 수준이다. 만기 도래분은 만기를 전후해 더 긴 채권으로 재투자되는 경향이 강하다. 3주 동안 외국인들은 주로 5~7년 만기 국채를 매도하고 3년과 10년 만기 채권을 매수했다. 여전히 장기채를 매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외국인의 채권 자금 이탈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Fed의 내부 전망 자료가 유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6월 공개시장위원회(FOMC) 당시 보고된 연구원들의 내부 전망이 실수로 홈페이지에 게시되자 이를 공개한 것이다. Fed 연구원들은 연방기금 금리를 2015년 0.35%, 2016년 1.26%로 전망하고 있다. 1년에 약 1.0% 포인트의 금리 인상 속도다. 1년에 8번인 FOMC 회의를 고려하면 두 차례에 한번 꼴로 기준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비교적 매파적인 인상 속도다.
그러나 정작 관심이 가는 것은 다른 데 있다. Fed의 연구원들은 미국 경제의 정점을 2016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초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여성 노동 참여 인력의 정체, 오바마 케어 실행에 따른 노동 인력의 감소로 2016년을 정점으로 미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향후 Fed의 기준 금리 인상 전망 속도는 지금 시장의 생각보다 더 느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의 전망대로라면 2020년까지도 물가가 2%를 넘지 않는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우상향하는 연방기금 금리와 국채 10년 금리 전망은 과도해 보인다. 금리 인상 컨센서스가 많이 낮아졌지만 앞으로도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 djshin@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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