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선진국에, 생산력은 중국에 밀려…‘창조적 파괴’ 나서야
한국 경제가 활력을 잃고 ‘돈이 돌지 않는다’고 한다. 2010년 반등했던 기업의 장기 설비투자 추세는 다시 하락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국내 총투자율 역시 금융 위기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제조업의 경쟁력 저하, 장기 투자 부진, 노동 공급 능력 저하,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 지연 등의 악재가 맞물리면서 2040년께에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보일 것이란 관측까지 나왔다.세계경제에서 한국 제조업이 차지하는 명목 부가가치 비중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정체 국면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조선·가전·통신기기 등 한국의 강점이었던 선도형 산업에서도 이젠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 제조업은 대기업 위주의 정부 주도 정책에 따라 수출을 위주로 성장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과거 성공 요인들의 유효성이 떨어지면서 현시점에서는 오히려 한계 및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는 앞으로 중소·중견기업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경제 수준 대비 기업가 정신 낮게 평가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정부대로 할 일이 있겠지만 기업의 입장, 특히 중소·중견기업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다. 피터 드러커가 1996년 그의 저서에서 한국을 ‘세계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꼽았던 것과 비교하면 오늘날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가 정신 순위는 2014년을 기준으로 120개국 32위 수준인 것으로 평가됐다. 2013년 118개국 중 37위, 2012년 79개국 중 26위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한국의 경제 수준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2014년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미지 조사(복수 응답)에서는 대기업의 하청 업체라고 응답한 비율이 46.7%, 정부의 보호가 필요한 기업이라고 답한 비율이 36.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에 의존하고 정부의 보호하에 있는 기업은 안정성을 이유로 경쟁력 있는 세계적 기업으로의 성장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 중소기업들의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 대비 75% 수준에 정체돼 있다고 한다. 위의 조사에서 52%가 중소기업의 경쟁력 수준이 ‘선진국과 거리가 멀고 아직은 개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개도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에도 밀리는 형국이라는 의견도 25%에 달했다.
지금 제조업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변화를 거치고 있다. 보다 개인화되고 있는 수요 트렌드의 변화, 모듈화 및 스마트 기술 발전에 따른 제품 특성의 변화, 보다 빠른 속도로 소규모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3D 프린팅 기술 등에 따른 생산성의 변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고객에게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가치 사슬상의 변화 등이 그것이다. 새로운 제품이나 생산 방식을 시장에 도입함으로써 ‘창조적 파괴’를 시도하고 변화를 탐구하고 대응하며 동시에 그것을 기회로 이용하는 기업가 정신이 중소기업인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배경이다.
기업가 정신은 기술 개선, 유·무형의 가치를 포함한 신상품·신제품의 도입, 신시장 개척, 새로운 생산 방식 및 생산 체계 도입, 기업 생태계 구축, 조직 문화와 조직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현될 수 있다. 이는 경영자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에게도 요구되는 정신이기도 하다.
김준철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전무·제조업본부 리더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