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중심 재편으로 지배력 강화…창립 50주년 맞아 재도약 ‘시동’

‘범삼성家’ 한솔, 조동길 회장 체제 완성
한솔그룹이 지주회사 한솔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 구조 재편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특히 이 작업을 통해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의 지배력이 더 커졌다. 한솔그룹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만큼 지배 구조 재편을 마무리하는 한편 ‘100년 기업’을 향해 가는 그룹의 성장을 위해 한층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솔홀딩스 관계자는 “한솔제지에 대한 지분율을 높여 그룹 주력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순환 출자 구조 해소를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한편 지배 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솔그룹 “경영 투명성 더 높였다”
한솔홀딩스와 계열사 한솔로지스틱스는 5월 1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로얄호텔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한솔로지스틱스를 투자 부문과 사업 부문으로 인적분할한 뒤 한솔홀딩스가 한솔로지스틱스 투자 부문을 합병하는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를 통해 한솔홀딩스는 기존 한솔로지스틱스가 보유하던 핵심 계열사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기업 가치가 상승했다.

한솔그룹은 삼성과 한 뿌리 그룹사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장녀다. 현재 한솔그룹은 이 고문의 아들인 조동길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고문은 2001년 한솔제지 대표이사 자리를 조 회장에게 물려준 뒤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한솔그룹은 1965년 이병철 회장이 새한제지를 인수해 전주제지를 출범시키면서 시작됐다. 1991년 이인희 고문이 삼성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한솔제지로 사명을 바꾸며 그룹의 면모를 갖춰 가기 시작했다. 계열 분리 후 한솔그룹은 10여 년간 이 고문의 아들인 장남 조동혁(금융), 차남 조동만(IT), 3남 조동길(제지) 체제로 운영돼 왔다. 하지만 외환 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금융과 정보기술(IT) 부문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면서 제지업을 담당하던 조동길 회장이 그룹의 리더로 발돋움했다.

그동안 한솔그룹은 순환 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지배해 왔다. 순환 출자의 핵심에는 한솔로지스틱스(옛 한솔CSN)와 한솔제지가 있었다. 순환 출자는 한솔로지스틱스→한솔제지→한솔테크닉스→한솔라이팅→한솔EME→한솔로지스틱스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한솔그룹은 순환 출자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부터 그룹 지배 구조 재편을 추진해 왔다. 특히 지난해 말 한솔제지에서 지주회사 한솔홀딩스를 분리하며 재편의 7부 능선을 넘었다. 이전부터 주력인 한솔제지 위주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솔홀딩스의 설립으로 사실상 지주회사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유일한 변수는 한솔로지스틱스였다. 한솔로지스틱스는 단일 지분 기준으로 한솔제지의 최대 주주다. 지금도 한솔홀딩스 및 한솔제지 지분 8.07%를 들고 있다. 이 지분이 있는 한 한솔홀딩스 중심의 수직적 지배 구조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솔로지스틱스는 이번에 한솔홀딩스 지분 8.07%, 한솔제지 지분 8.07%, 한솔케미칼 지분 3.19%를 투자 부문으로 분할한 후 이를 한솔홀딩스에 합병하면서 ‘한솔홀딩스 중심의 지배 구조’를 공고히 했다.
‘범삼성家’ 한솔, 조동길 회장 체제 완성
분할·합병을 통해 한솔홀딩스의 한솔제지 지분율은 단번에 15.33%로 뛰어올랐다. 5%만 더 취득하면 공정거래법상 자회사 지분 요건(상장사 기준 20%)을 충족시킨다. 특히 이 고문 등 최대 주주가 10% 정도 지분을 더 들고 있어 지분 요건 충족은 별문제가 없다.


주요 계열사 실적도 ‘쑥쑥’
특히 조 회장은 이번 분할 합병 과정에서 한솔홀딩스의 지배력을 더 높였다. 한솔로지스틱스 2대 주주인 조 회장에게 한솔홀딩스 신주가 배정됐기 때문이다. 분할 합병 후 조 회장의 한솔홀딩스 지분율은 4.19%로 뛰어오르게 됐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의 한솔홀딩스 지분율은 어머니인 이 고문의 지분율(합병 후 2.42%)을 넘어서게 됐다. 또 한솔홀딩스의 자기 주식은 7.3%에서 10.8%로 늘어나면서 외부의 경영권 공격에 대한 방어책도 단단해졌다.

한편 이번 합병을 통해 조동길 회장의 한솔케미칼에 대한 영향력 강화도 눈에 띈다. 그간 한솔홀딩스는 한솔케미칼 보유 지분이 없었다. 현재 한솔케미칼의 1대 주주(14.34%)는 조동혁 명예회장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한솔케미칼은 조 명예회장의 영역으로 평가되며 ‘계열 분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특히 조 명예회장의 맏딸인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사장이 2014년부터 이 회사 경영에 합류하면서 이런 추측이 더 힘을 얻었다. 그러나 한솔홀딩스가 한솔케미칼의 지분을 확보하면서 당분간 계열 분리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한솔그룹 지배 구조 재편의 큰 줄기가 가시화된 만큼 이른 시일 내에 나머지 계열사 지분에 대한 정리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솔그룹은 지배 구조 재편을 계기로 새로 도약하겠다는 방침이다. 한솔그룹은 계열 분리 후 공격적인 사업 확장으로 2000년 자산 기준 11위를 차지한 명실상부한 대기업집단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주력 회사인 한솔제지 등이 경영 위기에 처하면서 상당수 계열사 및 자산을 매각하거나 축소했다. 2009년에는 공정위가 자산 5조 원이 넘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되는 불명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한솔그룹은 최근 2~3년 새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불리며 2013년 4월 발표된 대규모 기업집단에 42위로 재진입하는 등 다시 도약하고 있다. 현재 한솔그룹은 제지 사업군을 기반으로 첨단 화학 소재, 인테리어 건축자재, IT 소재, 플랜트와 발전 보일러, 제3자 물류, 종합 레저 사업, IT 솔루션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2000년 한솔PCS를 KT에 매각해 휴대전화 사업을 접은 지 14년 만에 다시 휴대전화 사업에 나서기도 했다. 한솔일렉트로닉스베트남을 설립해 삼성전자의 베트남 휴대전화 공장에 납품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솔그룹은 올 초 그룹의 핵심 회사인 한솔제지의 창립 50주년을 맞아 그룹의 핵심 가치와 행동 원칙을 담은 ‘한솔 경영 체계(HMS)’를 발표했다. 조동길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무한 생존 경쟁을 뚫고 100년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부터 일선 현장의 직원들이 이해하고 실천할 기업 이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HMS의 핵심은 “차별화를 통해 반드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올 들어 한솔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이 속속 좋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인 한솔케미칼이다. 김동원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5월 13일 한솔케미칼이 올해 수익성을 개선해 전년 대비 영업이익 137%(671억 원), 순이익이 152%(566억 원)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비상장자회사들의 실적 상승도 눈에 띈다. 김준섭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포장재인 골판지 원지를 생산하는 한솔페이퍼텍의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보이고 원주 오크밸리를 운영하는 자회사인 한솔개발의 실적도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또한 규모가 가장 큰 한솔제지 역시 펄프 가격 하락과 계열사 지원 등에 대한 불확실성 해소라는 호재로 실적 턴어라운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