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주의로 진화한 제국주의, ‘과잉 확장’딜레마 피할 수 없어

끝없는 탐욕…‘제국’의 4000년 흥망사
인류 최초의 제국은 어디였을까. 기원전 23~24세기 사르곤 대왕이 구축한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제국이다. 페르시아만에서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여러 민족이 합쳐진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통일 제국이었다. 그 후 이 지역에는 바빌로니아·히타이트·이집트·페르시아제국이 잇따라 세워진다.

그러면 면적으로 볼 때 역사상 최대 제국은 어디였을까.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1921년 세계 총면적 1억4843만㎢의 24.7%에 해당되는 3670만㎢를 장악한 대영제국이 1위를 차지한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9만9000㎢(남북한 영토는 22만㎢)이니 대영제국의 면적은 한국의 무려 370배에 이른다.


세계의 4분의 1을 차지한 대영제국
대영제국에 이은 2위는 몽골제국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당시 몽골은 1279년 세계 총면적의 22.6%를 장악했다. 그다음은 러시아(16.0%)·스페인(14.0%)·청나라(9.9%)·우마야드 칼리프(8.8%)·프랑스(8.2%)가 뒤를 이었다. 지중해 중심의 로마제국은 생각보다 작은 크기로 순위상 12위다. 15대 제국 중 아시아 제국이 8개로 유럽 제국의 7개를 가까스로 제치고 있다. 지금 중국에 해당되는 제국으로는 청나라·당나라·한나라가 있고 아시아 초원 제국으로는 몽골·돌궐·흉노가 있다.

한편 근대 들어 유럽 국가들이 주로 제국을 형성했다. 유럽 국가들은 처음에 희귀한 자원과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약한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16~18세기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중남미 지역에서 막대한 양의 은과 금속을 채굴해 본국으로 송환해 부국이 됐다. 17~18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영국은 미국 동부 해안 지역과 허드슨만을, 프랑스는 미국 내륙과 캐나다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어 실리를 챙겼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들어 미국이 독립하고 19세기 초반에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독립하자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본격 진출한다. 영국은 인도·버마·호주·뉴질랜드를 점유하고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일대를 차지한다.

19세기 후반 들어 아프리카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포르투갈·벨기에·스페인 등 유럽 열강들에 의해 갈가리 찢긴다. 프랑스가 아프리카 서부의 사하라 지역을 장악하자 영국은 남쪽의 케이프에서 북쪽의 이집트까지 아프리카 동부를 거의 관통하는 땅을 점유한다. 식민지 지배 강화를 위해 영국은 5000마일 이상의 장거리 철도를 부설하는 투자를 감행했다. 특히 벨기에는 아프리카 중부의 콩고를 점유했는데, 당시 벨기에령 콩고의 면적은 벨기에 본국 면적의 무려 76배에 달했다.

유럽 국가들은 왜 이렇게 식민지 지배에 광분했을까.

처음에는 자신들에게 필요한 귀금속·사치품·향료를 얻기 위해 해안 지역에 무역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이권을 키우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 무역 거점의 인접 지역으로 관할권을 늘리면서 식민지 지배를 강화한다. 처음에는 상아·후추 같은 상품이나 금은 같은 자연 자원을 얻다가 점차 노예무역에도 손을 댄다. 19세기까지 영국의 리버풀은 악명 높은 노예무역의 거점 도시였다.

산업혁명 후에는 대량생산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자원과 노동력이 필요했고 그다음에는 생산된 제품을 판매할 판매처를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가 필요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은 인도의 값싼 노동력과 면화로 면직을 만들고 면직을 다시 인도에서 팔아 아편을 사들이고 이 아편을 중국에 팔아 결국 다량의 은을 획득했다. 이른바 삼각무역이다. 이처럼 제국들은 식민지를 통해 자연 자원·상품·노동력을 확보한 다음 소비처로 사용하고 자본 투자처로도 사용해 식민지를 착취했다. 네덜란드·영국·프랑스의 동인도 회사, 일본의 동양척식회사가 이런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했다.

제국주의의 번성에는 열강끼리의 경쟁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영국·프랑스·네덜란드가 주도하며 지배 영토를 넓히자 후발 주자였던 독일·이탈리아·벨기에·러시아·일본도 뛰어들며 지구상에 독립국가로 남아 있는 국가가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동남아에서는 태국·네팔·부탄, 아프리카에서는 에티오피아·라이베리아·모로코, 중동에서는 페르시아·아프가니스탄만 식민 지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제국주의를 움직이는 숨은 동력
제국주의를 보는 시각은 경제적·정치적·군사적·문화적 접근 등 다양하다. ‘제국주의론(1902년)’의 저자인 존 홉슨 씨는 제국주의를 경제적 측면에서 봤다. 본국이 자국의 생산품을 판매하고 식량과 원료를 공급해 줄 식민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 제국주의 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특히 제국주의 정책을 배후에서 지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본가이며 국내에서 충분한 이윤을 얻지 못한 잉여 자본이 찾은 탈출구가 바로 식민지라는 논리다.

‘금융자본론(1910년)’의 저자인 루돌프 힐퍼딩 씨는 20세기 초 기업 집중과 보호무역주의가 팽배하던 독일 경제의 금융자본 관점에서 제국주의의 핵심을 도출하고자 했다. 자본주의 국가가 발전하면 마지막 단계는 금융자본 지배 단계이므로 금융자본가가 해외에서 금융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홉슨 씨에 이어 또 다른 ‘제국주의론(1917년)’의 저자이자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레닌 씨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국내에서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정책이 제국주의라고 주장한다. 국내 경쟁이 격화되고 투자에 비해 소비가 상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이윤이 저하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확보에 나선다는 것이다. 식민지는 본국이 필요로 하는 원료·노동 등을 제공하고 본국이 생산한 공산품을 소비해 본국의 잉여 자본의 투자 대상이 된다. 이처럼 레닌 씨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라고 못 박았다.

정치적·군사적 측면에서 제국주의를 보기도 한다. 적대적 민족주의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열강들이 다른 국가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경쟁의 소산이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막스 베버 씨는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 의한 국가 통치권의 확대가 지배 계급의 권위를 높이고 정치적 우월성을 강화해 준다고 봤다.
끝없는 탐욕…‘제국’의 4000년 흥망사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었던 1914년은 제국주의의 정점이었다. 침략적 영토 확장에 여념이 없던 유럽 열강들은 결국 서로 전쟁을 일삼았고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진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점차 잃게 됐다. 1960년대에 이르러 대부분의 식민지는 독립하게 된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도전하는 중국
제국주의 이후에 등장한 개념으로 패권주의(hegemonism)가 있다. 패권주의는 국제사회에 영향을 끼칠 만큼 강대한 국력을 지닌 국가가 권력을 앞세워 주변 국가들에 자국의 영향을 끼치려는 정치 성향을 일컫는 표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미국이 패권 국가에 해당한다. 패권 국가인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군사 무기인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인데, 그 와중에 보잉 같은 방위산업이 발달한다. 둘째는 식량 무기인 곡물 산업이다. 카길·ADM·콘아그라·콘티넨털 그레인 기업이 이에 해당된다. 셋째는 에너지 무기인 석유산업이다. 세계 각지에서 석유를 채굴하고 이를 가공해 다시 판매하는 엑슨모빌 같은 기업이 이에 해당된다. 넷째는 화폐 무기인 달러로 대표되는 금융 산업이다. 전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해 상당한 세뇨리지(segniorage:화폐 주조로 얻는 이익)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금융을 통해 상대 국가의 기업을 지배한다. 마지막은 도덕 무기인 인권이다. 대표적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상대방 국가의 인권 탄압을 비난하며 국가를 매도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곤 한다.

제국주의 국가나 패권 국가가 힘을 잃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패권 국가의 속성상 통제하는 지역이 자꾸 넓어지면 각 지역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분쟁에 개입하게 되면서 군사비 지출이 계속 늘어난다. 패권 국가의 경제력이 항상 늘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경제력과 군사비 지출의 균형이 깨지면 결국 지속적 확장을 지탱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른바 과잉 확장(overstretch) 문제에 봉착하는 것이다. 군사비 지출로 재정 적자가 누적되고 정부 부채가 과도해지면서 경제성장이 주춤하고 환율 가치 하락으로 주축 통화로서의 위상도 추락한다.

또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패권 국가의 문화가 세계의 많은 국가에 무리하게 전파되면서 각 나라의 종교나 문화와 충돌하게 된다. 현재 미국과 이슬람 간의 충돌이 바로 그렇다.

지금 막강한 부를 거머쥔 중국이 해상 실크로드와 철도 실크로드로 세력을 넓히면서 미국의 패권주의와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진정한 제국주의가 다시 나타난다면 이는 좁은 지구가 아니라 드넓은 우주로 그 무대가 바뀔 것이다. 역사상 큰 제국을 만든 적이 없는 한국은 이제 우주를 무대로 제국주의를 제대로 펼쳐야 한다. 과연 우리는 이런 대계를 가지고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