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통화·문자 완전 무료화, 데이터 사용량만 따지는 KT 새 요금제 파장

달라진 경쟁 틀…‘데이터’로 승부
KT는 지난 5월 7일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국내 이동통신사 중 처음으로 ‘데이터 선택 요금제’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데이터 사용량을 기준으로 요금제를 개편했다는 뜻이다.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그간의 이동통신 요금제는 ‘통화량’을 기준으로 설정돼 왔다. 통화량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요금을 물어야 했다는 뜻이다. 반면 KT가 선보인 데이터 선택 요금제는 월정액이 가장 적은 2만9900원 요금제에서도 휴대전화 간 통화 요금이 ‘제로(0)’다. 5만4900원 요금제부터는 유선과 무선을 가리지 않고 무료다. 문자 메시지 서비스는 아예 모든 요금제에서 이용료를 받지 않는다. KT의 데이터 선택 요금제에 가입한 고객이라면 ‘이달 무료 음성통화·메시지 사용량을 초과하였습니다’ 같은 안내 문자는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된다.


5일 만에 가입자 13만 명 몰려
KT의 실험은 순항 중이다. 출시 초기지만 소비자의 반응도 뜨겁다. 새로운 요금제가 출시된 지 닷새 만인 5월 13일 신규 가입자가 13만 명을 넘어섰다. 2013년 출시돼 자사 가입자 간 무료 통화를 지원했던 ‘모두다 올레’ 요금제가 사흘간 5만8000명을 그러모은 것과 비교해도 폭발적인 반응이다. 데이터 선택 요금제는 통신비 인하 효과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KT는 1인당 월 3590원이 절약될 것으로 예상했다. 1000만 명 기준으로 보면 연간 4304억 원의 가계 통신비가 절약되는 셈이다.
달라진 경쟁 틀…‘데이터’로 승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데이터 선택 요금제는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오래된 피처폰이나 3G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최소 월정액은 2만9900원으로 300MB의 데이터가 제공된다. 3만4900원 요금제는 1GB, 4만9900원 요금제는 6GB의 데이터를 쓸 수 있다. 월정액 5만9900원부터 가장 비싼 9만9900원까지는 10~30GB의 데이터가 주어진다. 599 요금제 이상에선 정해진 데이터를 소진해도 하루 2GB가 속도 제한 없이 추가로 제공된다. 2GB까지 다 쓴다고 하더라도 최대 3~5Mbps의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이용할 수 있다. 간단한 검색 정도는 무리 없는 속도다. 사실상 무제한 데이터 이용이 가능해진 셈이다.

그간 국내 이동통신사의 요금제는 음성통화(문자)와 데이터 사용량을 모두 고려한 식이었다. 여기에 유선 인터넷·IP TV·인터넷 집 전화 같은 서비스까지 결합되자 이동통신 요금제는 대리점 직원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데이터 선택 요금제는 요금의 기준이 데이터 하나뿐이다. 음성이나 문자는 어떤 요금제에서도 무료다. ‘내가 음성 통화를 많이 하는지, 데이터를 더 많이 사용하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음성 통화량이 많은 보험설계사가 비싼 정액 요금제를 쓰며 데이터가 남아도는 불합리한 사례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KT가 월 10만 원에 음성 통화를 무제한 제공했던 ‘무제한 정액 요금제’를 처음 선보인 게 2004년이다. 이번 데이터 선택 요금제 중 월정액이 가장 적은 299 요금제와 비교하면 약 10년 만에 음성 통화료가 70% 이상 떨어진 셈이다.

KT는 요금제와 관계없이 모바일 인터넷 전화(mVoIP)도 사용량 제한 없이 전면 허용했다. 예를 들어 카카카오톡의 ‘보이스톡’ 기능을 데이터 사용량에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음성통화가 완전 무료화된 마당에 더 이상 mVoIP와의 경쟁이 무의미해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mVoIP는 그간 음성 통화량이 많을수록 요금이 올라가는 기존 이동통신사의 서비스와 ‘천적’ 관계였다.


LG유플러스·SK텔레콤도 잇따라 가세
휴대전화를 개설하기 위해 대리점을 찾은 사람 중 요금제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처음 휴대전화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요금의 기준은 음성 통화와 문자 메시지뿐이었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통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기준이 바로 데이터다.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로는 데이터 사용에 따른 과금이 급기야 음성 통화 이용 금액을 넘어섰다.

이동통신사의 요금제 개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규 요금제가 쏟아져 나왔고 그럴수록 이동통신 요금제는 가입 회사별로, 통화량·데이터 사용량별로 복잡해지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 5월 8일부터 시작된 KT의 요금제 개편은 단순한 과금 방식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명칭은 데이터 ‘선택’ 요금제이지만 사실상 데이터 ‘전용’ 요금제일 만큼 모든 요금 체제가 철저하게 데이터 중심으로 짜였기 때문이다. 이는 음성 통화가 중심이었던 통신업의 기존 패러다임이 완전히 데이터로 옮겨왔다는 것을 뜻한다. 통화에 딸린 부가 기능으로 인식되던 데이터가 통신의 전면으로 부상한 결과다.

한국의 모바일 시장은 수년 전만 해도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애플의 야심작인 ‘아이폰’이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게 2007년 6월이었고 한국 출시는 그보다 2년이나 지난 2009년 11월이었다. 아이폰 출시와 함께 시작된 스마트폰 혁명은 불과 5년여 만에 국내 소비자들의 요금제 선택 기준을 통화에서 데이터로 옮겨왔다.

국내 모바일 환경의 극적인 변화는 통신사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 왔다. 글로벌 기업의 테스트베드로 유명한 한국 시장답게 모바일을 통한 데이터 사용량도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분석 업체 앱애니의 ‘앱 고객 확보 인사이트:2015년 1분기’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의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 지수는 125다. 미국(100)·일본(90)·영국(80)·독일(70) 등 모바일 인프라가 비교적 탄탄한 나라와 비교해도 단연 앞선 결과다.

이동통신사들의 데이터 중심 요금제 개편은 당분간 요금 인하에 따른 매출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데이터 위주 요금제가 정착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저가 데이터 요금제 가입자의 요금제 업그레이드 현상이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쟁사들도 비슷한 요금제 개편에 나서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 14일 ‘데이터 중심 LTE 음성자유 요금제’를 내놓았고, SK텔레콤도 현재보다 요금 인하 폭이 대폭 늘어나고 혜택이 커지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미래창조과학부가 인가하는 즉시 공개할 예정이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