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미국 ‘국채 10년’ 연중 최고치…달러 약세로 유로 캐리 청산 늘어
전 세계 장기 국채 금리가 가파른 속도로 상승 중이다. 하루하루 변동성도 상당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과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5월 13일 각각 0.72%와 2.29%까지 급등하며 나란히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독일 국채 10년 금리는 4월 20일 이후 무려 0.65% 포인트 폭등했다. 세계 최대 채권 펀드인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이자 한때 ‘채권왕’으로 불렸던 빌 그로스 씨가 트위터를 통해 “독일 국채 10년물을 매도할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미국이 11년 만에 기준 금리를 연내 인상할 것이라는 것이 현재의 컨센서스다.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2년 전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이 “연내 자산 매입 규모를 줄일 수도 있다”고 말하며 전 세계 금리가 급등했던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에 빗대 ‘슈퍼 테이퍼 탠트럼’ 혹은 ‘본드 탠트럼(Bond tantrum)’이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반적으로 장기금리는 경기와 인플레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때 오른다. 특히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더 상승하며 장·단기 금리 차가 확대되는 현상은 향후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유가 오르며 디플레 공포 사라져
그러나 최근에는 이상 조짐들이 관찰되고 있다. 달러 강세의 여파로 미국의 경제지표는 예년만 못한 채 예상치를 밑돌고 있고 그 영향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컨센서스는 6월에서 9월이나 12월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주식시장의 상승 탄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런데도 장기금리는 오히려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채권시장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전 세계 장기금리 급등의 근본적인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 지연과 달러 약세다. 달러 강세로 미국 경제지표가 둔화되면서 작년 말부터 Fed는 기준 금리 인상 시점을 늦출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 결과 3월 중순 이후 달러는 약세로 전환됐다. 첫째, 달러가 약세로 전환되자 국제 유가(WTI)가 급반등하기 시작했다. 국제 유가는 3월 중순 저점 대비 무려 40%가 폭등하면서 작년 연말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을 짓누르던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디플레 우려 완화는 금리의 상승 요인이다. 국제 유가는 달러로 호가돼 거래되기 때문에 달러가 강할 때는 하락 압력을, 달러가 약할 때는 강세 압력을 받는다. 산유국들은 달러가 약해지는 만큼 석유를 비싸게 팔아야 자국의 재정수입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달러 약세는 전통적으로 글로벌 경제가 호황일 때 위험 자산 선호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결과 달러 약세가 원자재 수요를 증가시켜 국제 유가가 상승한다.
둘째, 달러 대비 유로화가 강세로 전환되면서 유로화를 빌려 유로존의 주식과 채권을 매수했던 유로 캐리 트레이드(euro carry trade)가 청산되고 있다. 작년 4분기 이후 미국 경제가 주춤한 반면 유로존 경제는 유로화 약세의 영향으로 턴어라운드가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경제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는 지역은 유로존이 유일하다.
유로화가 강해지면 유로화를 빌린 투자자들은 환차손 위험에 노출된다. 3월 13일 이후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6.9% 상승했다. 유로화를 빌려 독일 국채를 매수한 투자자라면 금리 급등으로 자본 손실까지 감수해야 한다. 4월 20일 0.07% 금리에 독일 국채 10년을 매수한 투자자의 자본 손실은 마이너스 5.3%에 달한다. 채권을 팔아 유로화를 갚아야 한다. 이러한 유로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증가하면서 유로화는 더 강세로, 독일 국채 금리는 더 상승한다. 미국 금리와 달리 독일 금리는 첫째와 둘째 요인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독일 국채 10년 금리가 미국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오른 이유다.
미국 경제 부진에도 불구하고 장기금리가 상승하는 현상은 이러한 유로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과 관련돼 있다. 미국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미국의 금리 인상이 지연되면서 미국의 단기금리는 하락하고 달러는 약세를 보인다. 그러나 달러 대비 유로화 강세는 유로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시킨다. 독일의 장기금리가 오르고 미국의 장기금리도 동반 상승한다. 미국 경제 부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더 많이 오르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경기가 좋아진다는 시그널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 우려로 장기금리가 상승했다”는 설명도 옳지 않다.
미국 경기, 내년쯤 정점 찍을 듯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 완화(QE)를 통해 지속적으로 채권을 매입하는 데 채권 금리는 왜 상승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다. 그러나 이미 QE 1, 2, 3를 경험했던 미국의 사례를 감안하면 독일의 장기금리 상승은 자연스럽다.
미국의 장기금리는 QE가 시작되면 오르고 QE가 종료되면 하락하는 패턴을 보였다. 기대가 선반영되면서 미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히 QE3를 전후해 미국 경기 개선과 인플레 기대로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7개월 동안 저점 대비 약 65%나 반등했다. 모든 상황이 같지는 않겠지만 똑같이 65%가 오른다고 가정해 보면 독일 국채 10년 금리는 연말까지 1.30%까지 상승할 수 있다.
그러면 독일 금리와 함께 미국과 한국의 장기금리도 그만큼 오를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과 독일 국채 10년 금리의 차이(스프레드)는 2014년 6월 ECB가 마이너스 예치금 금리를 도입하고 전격적으로 기준 금리를 인하하면서부터 급격하게 확대됐다. 당시 1.20% 포인트였던 미국-독일의 10년 금리 차는 올해 3월 초 1.90% 포인트까지 확대됐다. 독일의 금리가 더 빠르게 하락했다는 의미다.
ECB의 국채 매입에 의해 형성된 과수요가 해소된다면 금리 차도 다시 1.20% 포인트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연말 독일의 국채 10년 금리가 1.30%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면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2.50% 수준까지 오르는 데 그칠 것이다. 현 수준에서 약 0.2~0.3% 포인트 상승에 불과하다. 미 의회예산국(CBO)과 Fed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2015~2016년 2%대 후반~3.0%를 정점으로 2017년 이후 완만한 성장률 둔화가 예상된다. 경제가 나빠져서라기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 오바마 케어 실행에 따른 취업 포기자 증가 등 구조적 변화가 배경이다.
올해와 내년이 미국 경제의 정점이라면 현재 컨센서스인 9월부터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 금리를 인상해 나갈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경기가 정점 부근에 다가서고 있는 상태에서 기준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만기 10년 이상의 장기 국채 금리는 오히려 그때부터 하락한다. 금리 인상으로 미래의 성장과 인플레 기대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기준 금리를 인상하기 전까지 미국의 장기금리는 소폭 상승하겠지만 실제로 금리를 인상하는 시점을 전후해 계속 상승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점을 형성하고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실장 djshin@hanafn.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