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통해 통신비 낮추기 팔 걷은 정부, ‘요금 인가제’도 폐지할 듯

‘알뜰폰으론 부족’…제4이통사 출현하나
통신 시장의 빅뱅이 시작됐다. ‘알뜰폰’의 등장으로 기존 이동통신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 3사가 차지하고 있던 파이가 나뉘더니 최근에는 ‘제4이동통신사’ 출현이 예고되고 있어 향후 이통 시장 판도가 또 한 번 변화될 조짐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 선거 공약 중 하나인 ‘가계 통신비 경감’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모색해 왔다. 지난해 10월부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시행했고 한 해 동안 알뜰폰 시장 활성화 정책도 적극 추진했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으로 알뜰폰은 이통 3사가 주름잡던 통신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다. 알뜰폰 가입자는 지난 4월 기준으로 500만 명을 넘어섰다. 2013년 3월 말 당시 155만 명에 불과하던 것에서 2년 만에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이통 3사와 알뜰폰의 사용 비율을 보면 SK텔레콤 대 KT 대 LG유플러스 대 알뜰폰=45.49 대 26.59 대 19.25 대 8.66(단위 %, 3월 말 기준)이다.

‘알뜰폰’은 정부가 높은 통신비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내놓은 가상이동망사업자(MVNO)가 운영하는 서비스다. 주파수를 보유한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의 이동통신망사업자(MNO)의 망을 통해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매가격으로 통신망을 임차하고 마케팅 비용 등이 따로 들지 않아 ‘저렴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실제로 알뜰폰 이용 요금은 월평균 2만63원(연간 24만 원), 기존 이통사 대비 57%까지 통신비가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화 품질이나 데이터 통신망 등 서비스도 기존 3사 통신망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품질이다.

현재 알뜰폰 사업자는 30여 곳이다. SK텔레콤 망을 빌려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SK텔링크·유니컴즈 등 10개사, KT는 CJ헬로비전·에넥스텔레콤 등 14개사, LG유플러스는 스페이스네트·머천드코리아 등 7개사로 총 27개사다. 이 가운데 SK텔레콤 망 사업자는 233만5000명, KT망 사업자는 228만3000명, LG유플러스 사업자는 42만2000명으로 3사의 가입자 점유율은 4.6 대 4.5 대 0.9다.


알뜰폰 성장 ‘2라운드’ 예고
알뜰폰 가입자는 500만 명을 돌파하며 급성장했지만 정작 알뜰폰 업체들은 수년째 적자를 이어 가고 있다. KT와 손잡고 알뜰폰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던 홈플러스가 지난 4월 사업 철수를 결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에 따라 미래과학창조부는 알뜰폰 활성화를 위한 물꼬 트기에 적극 나섰다. 알뜰폰의 제2의 도약을 위한 ‘3차 알뜰폰 활성화 계획’을 5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미래부가 검토 중인 알뜰폰 활성화 정책은 ▷전파 사용료 감면을 연장하고 ▷알뜰폰 사업자들이 이통사에 지급하는 통신망 임대 가격을 가능한 한 큰 폭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또한 ▷알뜰폰 온라인 판매 사이트도 만든다. 알뜰폰의 사업성을 높여 이용객을 끌겠다는 의도다.

여기에 미래부는 기존 이통 3사에 이은 ‘제4이동통신’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제4이통사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완화하고 구조적 경쟁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래부 측은 “제4이통사가 알뜰폰에 기존 이통사보다 저렴한 도매 대가를 제시하면 통신비 인하 및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기존 이통사들은 가입자 요금 중심의 수익원을 ‘통신망 임대’ 등으로 넓히고 알뜰폰 사업자들은 특화 콘텐츠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광고 수익 등으로 가입자의 통신 요금을 낮춰 주는 수익 모델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CJ헬로비전·현대HCN(케이블TV) 등이 제4이통 도전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수차례 제4이통사 출범이 논의됐지만 고배를 마셨던 이유는 재정 능력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들의 출범을 결정짓는 최대 관건은 재정 능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 이들 업체가 제4이통에 진출한다면 결합 판매(통신·방송)를 통한 요금 인하 전략을 취할 수 있어 알뜰폰 업체엔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알뜰폰으론 부족’…제4이통사 출현하나
이미 알뜰폰은 이통 3사가 요금 인하 전략을 내세워 위험에 처한 상황이다. 이통사가 쉽사리 내놓지 못하던 ‘저가 요금제’가 최근 KT를 시작으로 2만 원대 음성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고 있다. ‘이통사보다 저렴한 요금’이라는 이점을 내세우던 알뜰폰 업계는 이 같은 전략이 달갑지 않다. 이에 따라 CJ헬로비전 등의 알뜰폰 업체도 2만 원대 음성 무제한 요금제를 준비한 상태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이미 포화 상태인 시장에 제4이통사의 출연은 출혈경쟁만 반복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알뜰폰 업계로서는 정부의 ‘3차 알뜰폰 활성화 정책’이 더욱 시급해진 상황이다.

통신 시장 재편을 위한 정부의 움직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엔 ‘요금 인가제’ 폐지다. 미래부는 지난 24년간 유지해 온 휴대전화 ‘요금 인가제’를 폐지하고 자율 경쟁을 통해 통신비를 낮춘다는 계획을 지난 5월 10일 밝혔다.


암묵적 ‘요금 담합’ 없앤다
요금 인가제는 이동통신 시장 1위인 SK텔레콤이 휴대전화 요금을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리지 못하게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규제하는 조치다. 이 제도는 휴대전화 서비스 초창기인 1991년에 도입됐다. 하지만 정부가 SK텔레콤의 휴대전화 요금을 정하면 2~3위 사업자인 KT·LG유플러스가 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싼 요금제를 내놓는 식으로 암묵적인 요금 담합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KT와 LG유플러스는 새 요금제를 낼 때 인가받을 필요 없이 당국에 신고만 하면 된다.

인가제가 폐지되면 SK텔레콤이 통신 요금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KT와 LG유플러스는 “이동통신 시장의 50%를 차지하는 SK텔레콤이 마음대로 요금제를 내놓으면 시장 쏠림이 더 심해질 것”이라며 인가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우려해 미래부는 유보 신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유보 신고제는 SK텔레콤이 제출한 새 요금제에 대해 소비자의 편익을 해치는 내용이 없는지 미래부가 2주 동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

미래부 측은 “인가제를 폐지할 때 요금이 인하되느냐에 답이 있어야 한다. 인가제 폐지가 자칫 우회적인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유보 조항을 둔 것”이라며 “요금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들이 싼 통신 요금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정책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김홍식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미래부가 현재 검토 중인 인가제 폐지는 국내 통신 산업 특성상 요금 경쟁 심화 가능성이 낮은 반면 향후 통신 요금 책정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크게 줄일 수 있어 긍정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정부의 유·무선 결합 상품(방송·통신) 규제 여부를 놓고 통신 업계의 설전이 치열하다. 결합 상품은 이동통신과 유선인터넷·IPTV 등을 묶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이달 5월 중 결합 상품 규제안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통신사들의 논쟁이 뜨겁다. SK텔레콤은 소비자 혜택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규제에 반대하고 있다. 반면 KT와 LG유플러스는 공정 경쟁을 해치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수 있다며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찬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학계가 통신사와 마찬가지로 엇갈리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어 주목된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