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 성장 패러다임 한계…웰빙·기회의 가치 반영한 새 지표로 주목
앨런 그린스펀 미국 중앙은행(Fed) 전 의장은 국내총생산(GDP) 통계 편제를 미국 상무부의 20세기 최대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GDP는 전쟁과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후 경제 재건이 최고의 가치가 된 1950년대부터 경제정책 수립의 핵심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은 GDP가 정책에 반영된 후 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폭이 줄어들면서 경제 안정화에 큰 효과를 거뒀다. GDP를 국가 정책 목표로 삼아 매진해 온 한국도 2014년에 1인당 GDP 3만2708달러를 달성할 정도로 경제가 성장했다.하지만 환경오염이 발생하면 삶의 질이 낮아지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비용이 GDP를 증가시킬 수 있다. 집에서 하는 가족끼리의 오붓한 저녁 식사는 GDP에 반영되지 않지만 외식은 GDP를 증가시킨다. 즉 GDP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만 반영하고 사회제도가 필요로 하는 환경·평등·신뢰 등 ‘사회적 가치’를 제외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GDP, 경제 현실 제대로 반영 못해
이런 가운데 개발된 ‘사회개발지수(SPI:Social Progress Index)’는 기본적인 인간 욕구(의료·주택·치안)나 웰빙(지식·소통·생활체육·친환경)뿐만 아니라 ‘기회(개인적 권리·선택, 관용·포용, 교육의 질)’라는 요소 등 사회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2015년 사회개발지수에 따르면 1인당 GDP가 약 8만 달러인 쿠웨이트의 SPI는 69점으로(국가 순위 47위), 1인당 GDP가 약 2만2000달러인 말레이시아와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된 반면 1인당 GDP가 약 1만8000달러에 불과한 우루과이의 SPI는 79점으로 1인당 GDP가 약 3만4000달러에 달하는 이탈리아(31위)의 SPI(77점)와 비슷하게 평가받고 있다. 단순히 GDP가 높다는 것은 사회 개발의 기본적 요소인 안전이나 보건을 높일 수 있지만 GDP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웰빙이나 개인에게 제공하는 기회 요소가 사회 발전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국의 SPI(77점) 순위는 29위로 대다수의 G7 국가들이 포함된 고득점권의 20개 국가군에 포함된다(기본적인 인간 욕구 89점, 웰빙 75점, 기회 68점). 인간 욕구 중 영양 및 기본 의료 지원은 매우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웰빙 중 생태계 지속 가능성에서는 45점이라는 낮은 점수에 머물렀다.
SPI는 국가 개발 계획의 목표로 사용될 수 있는데 2013년부터 SPI를 국가 정책 목표로 적용하고 있는 파라과이가 대표적이다. 이는 SPI를 통해 국가 정책의 성과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제공받을 수 있고 나아가 경제성장을 포함한 사회 발전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최근 성장의 한계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그렇지 못한지에 대한 고민을 연구한 경제사학자 론도 캐머런에 따르면 국가 간 경제 발전의 차이를 ‘기술 혁신’과 ‘사회제도’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다.
2014년 SPI에서 각각 1, 2, 3위를 차지한 노르웨이·스웨덴·스위스는 1인당 GDP가 5만 달러 이상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독특한 사회제도를 만들어 간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제 한국도 과거의 양적 성장과 G7 따라 하기라는 한계를 넘어 새로운 질적 성장을 위한 기술 혁신과 이에 부응하는 사회제도를 갖춰야 할 시점이다. 그 출발로 SPI를 통해 그동안 GDP만 좇느라 놓치고 있던 웰빙과 기회의 가치를 살펴봐야 한다. 기술 혁신과 사회제도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강동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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