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비중 확대 기회일 수도…PER보다 PBR 보라

글로벌 주식시장이 동조화되다 보니 ‘주식은 10월에 사서 5월에 팔아라’라는 월가 증시 속설을 한국 주식 투자자마저 의식하는 듯하다. 이런 속설의 근거는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매크로 측면에서 보면 생산·투자·소비가 집중되는 연말·연초를 보내고 모멘텀이 가장 많이 소진된 기간이라는 설과 미국에서 작지 않은 규모의 헤지 펀드 법인들이 세금 회피 목적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이뤄진다는 설, 주요국 벤치마크 지수의 구성 종목 변경이 5~6월에 집중돼 선제적인 변경 작업이 글로벌 증시 변동성을 확대한다는 설 등이다. 딱 하나를 지적하기는 어렵지만 5월의 혼란은 2015년에도 찾아왔다.

뜨겁게 가열되던 한국 증시가 썰렁해졌다. 거짓말처럼 5월이 시작되자 호재보다 악재가 늘어난 듯 보였고 외국인과 기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매도 규모를 확대하는 변화를 보였다. 단순히 유동성에 의지하던 상승세가 꺾이다 보니 잠재돼 있던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투자자에게 각인됐다. 또 내츄럴엔도텍 이슈는 성장주에 열광하던 코스닥 투자자에게 충격을 줬다. 연속적으로 한국 증시가 급락하자 투자자의 태도는 너무 쉽게 바뀌었다.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냄비 장세 모습이 재현된 것이다.
오늘의 공포는 내일의 기회
최근의 한국 경제 상황과 상장 기업의 실적 변수를 대입하면 박스권 회귀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과 같은 반짝 상승이 이번에도 반복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가장 달라진 변화 중 하나는 금리 수준이다. 5월 주식시장이 급락할 때 마켓 플레이어가 더욱 주목한 것은 시장 금리 변화였다. 3년물 금리가 너무 빠르게 2%를 돌파하자 주식을 싸다고 느꼈던 외국인과 기관도 움찔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단기적으로 변화된 상황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단기적으로 금리 환경이 안정되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당분간 금리 상승세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


‘저금리·저성장’을 믿어야 할 때
정부와 한국은행은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험을 동시에 인지했다. 그리고 그 위험을 없애기 위한 선제적 조치에 나선 상황이다. 금융시장 참여자도 정책 당국의 방침에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채권시장이 급변했다고 해서 정책 기조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단정 짓기는 너무 이르다. 지금은 정책과 시장 금리 방향을 믿는 자세가 요구된다.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한국도 저금리 정책의 칼을 뽑았다. 선진국과 같은 제로 금리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 평균 물가 수준이 2%를 쉽게 밑돌지 않는 산업구조를 가진 쪽에서는 현재 기준 금리는 제로 금리에 준하는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미국·유럽·일본에서 벌어졌던 유동성 효과를 한국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선진국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 논란에 휩싸여 한국은 그 유동성의 맛도 못보고 쓴맛만 보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러나 조금만 유동성 지원을 받게 되면 기업의 투자가 확대되고 생산과 고용이 늘어나 가계 소득이 증가하고 소비가 개선되는 선순환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증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보다 한국이 가진 장점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유동성 장세가 시작되면 투자자는 바로 실적 장세를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상장 기업의 1분기 실적 결과에서 봤듯이 한국 기업의 단기 실적 변화 속도는 느릴 것이다. 글로벌 경제는 여전히 저성장의 늪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에 따라 주가수익률(PER)에 기준한 투자는 설득이 어렵다. 반면 시장 금리 하락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내재 가치 상승에 도움을 준다. 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각종 비용을 낮춰 주기 때문이다. 한동안 한국 증시에 대해 주가순자산배율(PBR) 매력을 어필하기 어려웠던 것은 기준 금리를 포함해 시장 금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금리 시대가 시작됐다. PBR 매력이 커질 때는 추세적 하락을 걱정하기보다 과감히 투자에 나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망자가 그토록 기다린 내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늘 당신이 느끼는 공포는 미래의 당신이 그토록 원했던 투자 기회일 수 있다.


김형렬 교보증권 매크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