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람의 구조조정 시대…다양성 활용하고 신사업 인재 확보해야

저성장 함정 넘는 ‘新인사 전략’
한국 기업,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국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동안 여러 돌발 위기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대처해 왔던 한국 기업들이지만 신흥국의 더딘 경제 회복, 유가 및 환율 불안 등에 성장의 발목이 잡혀 있는 모양새다.

국내 경영 환경도 그리 녹록한 상황은 아니다. 특히 이미 통과됐거나 검토 중인 고용 관련 법률 및 정부 정책들이 그 어느 때보다 기업 경영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년 60세 연장 법안 통과로 내년부터 공기업과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 등에 관련 법안이 적용된다. 오래 일하지만 효율이 낮은 근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현행 68시간인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법안도 검토 중이다. 이 밖에 고용 차별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방안 등이 정부 주도로 논의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이 인력 규모를 결정하고 고용 관계 및 임금 체계를 설정하는 등 전반적인 인력 운영 방향을 수립하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와 달라지는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사업 측면에서의 대응 방안을 찾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장을 선점하거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신성장 동력 발굴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쟁 우위 확보,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에 나선 기업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기업 경영의 중심이자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재 경영 측면에서도 미래 지속 성장을 위한 준비와 도약을 위해 점검해야 할 이슈들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문제 발생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산업 및 기업에 따라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최근의 화두는 단연코 ‘저성장’이다. 기업들은 저성장기일수록 보유 자원을 밀도 있고 효과적으로 투입할 필요가 있고 때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기존에는 투입하지 않았던 영역에 자원을 투입해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인력 다양성 함수
고용 인력 구조가 예전과 사뭇 달라지고 있다. 연도별 취업자를 분석한 결과 1994년 취업자 평균 연령은 34.8세였지만 2014년에는 약 6세 정도 늘어난 40.4세로 조사됐다(5인 이상 사업장 기준). 인력 구조도 1994년 40대 이상이 30%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40대 이상의 비중이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 가까웠다. 기업 내 인력의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이다. 앞으로 인구구조 등의 변화와 맞물려 정년 60세 의무화 관련 법안 통과로 기업 내 고령 인력의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취업자 평균연령이 높아지면서 세대의 다양성도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한 부서에 베이비부머 세대·X세대·Y세대가 공존하는 셈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다. 취업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취업자 성별 비중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1994년 여성 취업자 비중은 29%에 불과했지만 2014년에는 36%까지 증가했다. 경제활동을 위해 결혼 및 출산 시기를 늦추려는 여성들도 많고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노력(육아 휴직 활용 확대, 유연 근무제 시행 등)도 배가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비정규직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 증가, 일자리 형태나 일하는 방식의 다변화로 인력 구성의 다양성이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성이 높아질수록 이를 감안한 인재의 배치, 활용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령 인력들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조직의 역량으로 축적할 수 있는 방안들이 필요할 것이다. 이들이 여러 해에 걸쳐 체화한 지식과 기술은 쉽게 모방하거나 책을 통해 학습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소위 ‘망치만 두드려 봐도 어떤 부분에 이상이 있는지 알 수 있는 노하우’는 교육이나 일대일 전수 이외에는 조직 역량으로 흡수할 방법이 없다. 사내 강사 혹은 기능 전수자, 문제 해결 전문가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증가하고 있는 조직 내 여성 인력에 대한 역량 개발과 활용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성 인력은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감성과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남성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시장의 특성이나 고객 니즈 발굴로부터 또 다른 인사이트를 기대할 수도 있다.

인적 구성이 다양해질수록 조직 내에는 서로 각기 다른 경험과 가치관, 배경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게 되는데, 이들이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거나 관행 속에 존재하는 비효율들을 제거하는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기업의 고민이 배가돼야 할 것이다.


설 자리 잃어 가는 제너럴리스트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수익성을 중시하게 된다. 각종 비용 지출을 줄이고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일자리 조정에도 나서게 된다. 특히 가치 창출이 상대적으로 높은 일자리는 유지·강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자리는 계속 축소하거나 효율화의 방법을 찾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북미와 유럽의 기업들이 일본과 한국, 이제는 중국 기업들에 밀려 성장 한계에 봉착하자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게 일과 사람에 대한 구조조정이었다. 공통 업무나 여기저기 흩어져 수행하던 관리·지원 기능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기도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웃소싱을 통해 관련 인력을 구조조정하기도 했다. 유럽계 P사에 재직 중인 한 직원은 자신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최근 2년간 업무가 세 번 바뀌었다고 한다. 일이 사라지면서 퇴사해야 할 위기도 겪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조직이 있어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저성장기, 수익성 하락을 우려하는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인적자원의 효과적인 활용에 주목해야 한다.

단순 반복적인 업무는 아웃소싱으로 전환하거나 여러 사업 단위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을 통폐합해 효율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인재 채용에서도 기본 자질이 우수한 인력을 선발한 뒤 교육을 통해 실무 적응력을 키워 나가기보다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지원자의 스펙보다 역량을 채용의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지원자의 스펙을 보더라도 스펙의 양이나 다양성이 아니라 본인이 지원하는 분야와 관련된 스펙을 얼마나 깊이 있게 쌓았고 이를 통해 어떤 역량을 축적했는지 더욱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내부 인력의 활용, 개발에도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년이 증가하는 만큼 중·장년층 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고직급·고연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기업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에게 성장 비전을 제시하고 성과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각자가 보다 더 높은 가치를 회사에 제공할 수 있는 비밀 병기를 갖추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회사가 이들에 대한 전문성 교육을 강화하고 역량 수준에 대한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검증하고 인력 배치, 활용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조직과 구성원이 윈-윈하는 보상 체계 수립
직장 생활에서 처우나 복리후생은 직원들의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기업의 성과가 높아질수록 일종의 ‘노력에 대한 대가’로 이에 대한 직원들의 관심과 요구가 증가하기 마련이다. 최근에는 규모나 브랜드 측면에서 한국 기업의 위상이 크게 높아짐에 따라 글로벌 선진 기업 수준의 처우나 복리후생을 기대하는 직장인들도 많다.

그러나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는 무작정 자원의 투입 양을 늘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인건비·복리후생비의 증가가 원가 부담으로 이어져 기업의 이윤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직원에 대한 처우나 복리후생을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연계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기업들이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 함정 넘는 ‘新인사 전략’
이와 관련해 성과와 연계한 보상 시스템 구축,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복리후생 체계 마련 등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복리후생 체계 마련 등은 구성원 만족을 넘어 ‘일하기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해 우수한 인재를 유인하고 유지하는 데 상당히 기여할 수도 있다. 미국 구직자들에게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손꼽히는 구글이나 SAS 등을 보자. 이들 회사는 구성원들이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육아 및 의료 시설 등 각종 복리후생 제도를 갖추고 대학의 캠퍼스와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사업의 이윤과 함께 구성원의 만족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짐 굿나잇 SAS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의 처우나 복지 혜택을 강화하는 것이 구성원의 충성도와 비즈니스 성공이라는 보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신성장 동력을 이끌어 갈 핵심 인재의 포섭
결코 밝지만은 않은 국내외 상황이지만 이미 일부 기업들은 자원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미래의 먹을거리를 준비하기 위한 밑그림 구상을 꾸준히 해 왔다.

특히 2010년대 초반 신사업 구상에 몰입했던 기업들이 4~5년간 탐색 및 인프라 구축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사업화에 나서고 있다. 작년 연말 주요 기업들이 실시한 조직 개편에서도 이를 잘 엿볼 수 있다. LG전자는 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이노베이션사업센터’를 신설했고 LG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사업부를 신설했다. 삼성전기는 신상품 기획, 신사업의 조기 사업화를 전담할 ‘신사업추진팀’을 구축했고 SK C&C는 빅 데이터의 정보통신기술(ICT) 사업 전개를 가속화할 ‘ICT성장담당’ 조직을 신설한 바 있다. 이처럼 신사업 추진체를 구축하는 것은 책임을 부여하고 역량을 결집함으로써 실행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다.

미래 준비를 위해 전담 조직을 구축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사업을 개발하고 전개해 나갈 인재들을 선점·확보하는 것이다. 내 눈에 보석이 다른 사람에게도 귀하게 보이는 것처럼 돈 되는 사업에는 기업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성패를 가늠하는 것은 결국 신사업을 이끌어 갈 인재 확보 여부가 될 것이다. 게다가 신사업의 성격상 관련 인력들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인재 확보 전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향후 기업 경영의 환경은 부침이 매우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업뿐만 아니라 인사관리 측면에서 미래에 대한 분석과 예측, 대응 방안 마련에 더욱 고심해야 할 것이다. 인적 구성의 다양성 심화, 효율성 중심의 조직 운영 등이 대표적인 미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각 기업마다 이에 대한 나름의 처방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하듯이 인사관리가 강한 기업이 변화를 선도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가능성 또한 높다. 인사관리 부서는 과거의 주먹구구식 인사관리 관행에서 벗어나 보다 전문화되고 전략적인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경영진 또한 당장 코앞에 놓인 문제 해결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10년 미래를 내다본 인사를 해야 할 것이다.


조범상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bscho@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