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연 스타일리스트
패션잡지의 화보 컷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빠져든다. 모델의 표정에서부터 의상, 작은 소품으로 때론 독특하게, 때론 신비하게 현장을 연출하는 현장의 마법사, ‘스타일리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이면 속 혹독한 시간을 버텨야만 이름 석 자를 내걸 수 있는 직업, 패션 스타일리스트를 <직업의 세계>에서 만나봤다. 어떤 일을 하나?잡지나, 방송, 광고 등의 분야에서 의상에 대해 소재와 색, 디자인 등 스타일링을 하는 일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방송과 잡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지금은 잡지 분야에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부터 시작했나?
2002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13년차다. 대학생 때 잡지에서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씨의 기사를 읽고 이 직업을 처음 알게 됐다. 그 전까지는 코디네이터라 불렸는데,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왠지 멋있어 보여 도전하게 됐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당시만 해도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학원을 다녀야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와서 스타일리스트 학원에 들어갔다. 6개월 과정이었다. 학원에서 배우는 과정은 헤어, 메이크업, 의상 디자인 등이었다. 학원을 수료하고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학원에서 배우는 스타일링이 어렵진 않았나?
(학원 수강생들이) 대부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친구들이여서 수준이 높진 않았다. 사실 학원을 다니기 전에 수업 방식을 알았다면 굳이 학원을 다니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나 같은 경우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해서 대부분 아는 내용이었고, 학원비도 6개월에 300만~400만원 정도로 비쌌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알고 있는데.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했고, 학원을 다니면서도 실력을 인정받아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근데 막상 어시스턴트로 일을 해보니 정말 힘들었다. 1년 정도 어시스턴트를 했는데, 일을 하면서 나의 존재감은 없었다. 현장에서 심부름꾼에다 짐꾼인 것 같았다. ‘걸어 다니는 퀵 서비스’로 불릴 정도였다. 그래도 그때 힘들게 배웠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어시스턴트 시절에는 뭘 배우나?
주로 현장 대처능력을 배운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의상은 어디서 협찬을 받는지,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몸소 체험하면서 배우는 시기다.
어시스턴트 시절 혹독하게 가르치는 이유가 있나?
사실 현장에서 어떤 선배를 만나느냐에 따라 혹독할 수도, 오히려 편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스타일리스트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는 초반에 잘 배워놓지 않으면 독립하고 나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다보니 책임감이 막중하게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장 경험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촬영은 어떻게 진행되나?
보통 잡지의 경우 에디터와 전체적인 콘셉트를 정하고, 회의를 거쳐 페이지 구성이 나오면 의상 콘셉트를 정한다. 촬영 일자가 정해지면 스타일리스트가 미리 체크해 둔 의상을 협찬 받아 촬영하고 반납하는 시스템이다. 보통 촬영할 때 의상이 10벌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30~40벌의 의상을 준비해야 한다. 현장에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촬영 콘셉트에 맞는 의상을 많이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협찬 받은 의상이 많으면 간혹 분실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보통 한 번 촬영할 때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의 아이템이 100여개가 넘어서 잃어버리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대부분 스타일리스트가 변상을 한다. 그리고 협찬 받는 곳이 수 십 군데라 잘못 반납하는 경우도 생긴다.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나?
가장 중요한 건 책임감이다. 13년 동안 많은 스타일리스트 지망생들과 함께 일해봤지만,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2명뿐이다. 이 일을 시작할 때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친구들은 빨리 포기하더라.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끈기 있게 일하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는 일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한다. 의상을 선정할 때 콘셉트에 꼭 필요한 의상이 있으면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 패션 센스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책임감과 일에 대한 욕심, 부지런함이 있으면 좋은 스타일리스트가 될 수 있다.
스타일리스트에게 패션 센스는 어떤 의미인가?
패션 센스는 일을 하면서 느는 것 같다. 오히려 스타일리스트가 패션에 대한 고집이 강하면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스타일리스트는 다양한 패션을 연출해야 하는데, 자신의 패션 색깔이 강하면 어떤 스타일링에 묻어나기 마련이다. 과한 것보다 적당한 편이 좋다.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노하우가 있나?
촬영은 스타일리스트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화보촬영의 경우, 포토그래퍼, 에디터, 스타일리스트의 조화가 잘 이뤄져야만 좋은 작품이 나온다. 옷만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옷이 모델에 묻혀서도 안 된다. 촬영 현장이나 모델의 특성을 잘 파악해 스타일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대학은 필수인가?
처음엔 실력과 인맥이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10년 이상 이 일을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최근에 기업에서 스타일링클래스나 대학에서 강의 요청이 종종 들어와서 패션에 대한 전문지식을 더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이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는 대학 또는 대학원을 진학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패션 트렌드는 어디서 주로 파악하나?
동대문이나 가로수길 등 패션의 중심지를 자주 간다. 그리고 패션 잡지나 포털사이트에 블로그를 자주 챙겨보는 편이다.
직업의 장·단점은?
음···. 새로운 신상품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프리랜서이다 보니 일을 하는 만큼 수입이 늘고, 시간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단점은 시간이 불규칙하다보니 시간 조절을 잘 해야 한다. 바쁜 시즌에는 거의 한달 내내 일할 때도 있다.
연봉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보니 연봉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인맥관리를 잘하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대기업 연봉보다 훨씬 높다.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다양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쉽게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적어도 1년 정도는 미친 듯이 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만 후회가 없다. 한번 미친 듯이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걸 찾아도 되니까 초반에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글 강홍민 기자ㅣ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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