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SKT 등 ‘플랫폼 기업’ 변신 선언, 구체적이고 명확한 콘셉트 필요

‘거실을 선점하라’…스마트 홈 경쟁
“차세대 플랫폼 사업자로 도약하겠다.”

장동현 SK텔레콤 사장은 지난 4월 23일 이동통신 사업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SK텔레콤뿐만이 아니다. 통신사들은 물론이고 삼성전자·LG전자와 같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 대부분이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통신+제조’ 연합군, 스마트 홈 공략
스마트 카로 대표되는 자동차 산업, 모바일 헬스 케어 산업,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미디어 산업, 모바일 쇼핑을 필두로 한 유통 산업, 전자 결제 시스템을 비롯한 금융 산업까지…. 사실상 플랫폼 전쟁은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격전지는 다름 아닌 사물인터넷(IoT)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홈 시장이다. 냉장고·TV 등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일상에 가장 밀접한 ‘거실’을 선점한다면 플랫폼을 다른 영역으로 확대하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조사 업체 ABI리서치에 따르면 5년 뒤인 2019년 세계 스마트 홈 시장 규모는 60억 달러(6조1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거대한 시장을 두고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본격적인 전쟁 준비를 마친 지 오래다. 구글은 2014년 초 스마트 온도조절기 업체인 ‘네스트랩’을 인수하며 스마트 홈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바로 이 네스트(네스트랩이 개발한 실내 온도 조절기)를 플랫폼 삼아 웨어러블 기기와 가전을 결합하며 스마트 가전 시장을 공략한다는 복안이다. 구글은 네스트랩을 통해 사물인터넷 연합군인 ‘스레드(Thread)’를 주도하고 있는데, 삼성전자 또한 여기에 참여 중이다. 애플은 2014년 5월 스마트 홈 플랫폼인 ‘홈키트’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했다. 애플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기존의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집 안의 전등이나 출입문과 같은 각종 전자제품을 원격제어하는 서비스다.

창조경제연구회 최선 연구원은 “기존 스마트폰 시장의 플랫폼 주권을 장악하고 있는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절대적인 강자가 만들어지지 않은 새로운 시장인 만큼 국내 기업들 역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 역시 스마트 홈 시장 공략에 꽤 적극적이다. 최 연구원은 이어 “국내 기업은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플랫폼의 위력을 여지없이 실감한 만큼 새롭게 열리는 기회는 놓쳐선 안 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현재 국내의 스마트 홈 플랫폼 전쟁은 가전제품 제조업체와 통신사 간 연합작전을 펼치는 양상이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4월 2일 IoT 영역에서 협력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그동안 각자 추진해 오던 IoT 플랫폼을 연동하고 개방형 플랫폼을 바탕으로 한 생태계 조성에 특히 힘을 보태기로 했다. 삼성전자 스마트 홈 플랫폼의 첨병은 자체 개발 중인 스마트 홈 운영체제 ‘타이젠’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4월 14일 열린 가구 박람회에 참석해 “2020년까지 TV·냉장고·에어컨 등 생활 가전 모든 제품을 타이젠 OS로 통합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SK텔레콤은 5월부터 스마트 홈 플랫폼 ‘모비우스’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쉽게 말해 제습기·도어록·보일러 등 가정 내 다양한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센서가 탑재된 IoT 기기와 사용자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연결하는 일종의 인프라 형태 플랫폼인 셈이다. 스마트 홈에 연결될 수 있는 가전 기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동통신 업체의 특성 때문에 삼성전자·경동나비엔(보일러)·유진로봇(로봇청소기) 등 다양한 업체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과 SK텔레콤 연합군에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것은 LG 연합군이다. 삼성전자의 타이젠처럼 LG전자 역시 자체 운영체제 ‘웹OS 2.0’을 스마트 TV에 탑재할 계획이다. 다만 플랫폼 전략에서 삼성전자와 다른 점은 TV보다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메인 허브로 삼겠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LG유플러스와 함께 오는 8월 통합 플랫폼인 IoT 허브를 선보일 계획이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올해를 사물인터넷을 시작하는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지난 3월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 참석해 “LG유플러스는 IoT 분야 중에서도 홈 사물인터넷에 집중해 승부를 볼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LG전자와 LG유플러스는 IoT 통합 플랫폼을 통해 가전과 통신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TV·세탁기 등 LG전자의 제품을 LG유플러스 네트워크 통신 기술로 연결해 스마트폰으로 제어하겠다는 구상이다.


대기업들의 ‘플랫폼’ 무한 도전
사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LG전자와 LG유플러스 등 국내 대기업들이 하나같이 외치고 있는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K텔레콤만 하더라도 플랫폼 사업은 사실상 4~5년 전부터 꾸준히 강조해 온 핵심 전략 중 하나였다. 2010년 당시 정만원 사장은 “SK텔레콤은 결국 플랫폼 사업을 열심히 해야 한다”며 “그래야 다양한 영역에서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SK텔레콤의 플랫폼 기업 변신에 대해 업계에서 ‘반신반의’의 시각을 보내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모바일 플랫폼 업계의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은 이미 SK커뮤니케이션즈의 네이트온이나 싸이월드 등을 갖고 있었지만 플랫폼으로 키우는 데 실패하지 않았느냐”며 “지금까지 SK텔레콤에 플랫폼이 없어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를 키워 나가는 시스템과 조직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고민은 4월 23일 장동현 사장의 발언에서도 나타난다. 장 사장은 “그동안은 너무 공급자 쪽에서 플랫폼을 바라본 게 아닌가 싶다”고 자평하며 “통신 서비스에 의존했던 과거의 관점을 버리고 소비자의 보이지 않는 니즈(필요)까지 찾아내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탈바꿈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삼성전자 또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2009년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대항하기 위한 차세대 모바일 OS인 바다를 공식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플랫폼 패권이 결정된 시장 상황에서 바다 OS는 생태계를 갖추는 데 실패했다. 2012년 말 기준 세계시장 점유율은 불과 3%대에 그치는 수준이었고 결국 삼성전자는 2013년 2월 바다 OS를 타이젠 OS에 흡수해 운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공식적으로 바다 OS의 개발을 종료했다. 현재 삼성전자가 타이젠 OS를 통해 자체적인 플랫폼 독립을 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구글과 연대를 지속하고 있는 데는 이 같은 영향도 있다. 바다 OS의 이후 삼성전자는 타이젠 OS의 플랫폼 전략에도 변화를 줬다. 바다 OS가 실패한 데는 플랫폼을 공동으로 구성할 동맹군을 끌어들이기 어려운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 이에 따라 타이젠 OS는 강력한 제조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9년 연속 세계시장 매출 점유율 1위를 지켜 온 스마트 TV를 플랫폼 확장의 기반으로 삼은 이유다.

최병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원은 “플랫폼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시장이 커갈 수 있는 환경, 즉 생태계가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이 시장(플랫폼)에서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지 비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기업들은 각각의 특성이 명확하게 구별되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막연하게 플랫폼만 외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플랫폼’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뒷받침된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최병삼 연구원은 “특히 미래의 플랫폼 경쟁은 크게는 스마트 홈 시장부터 작게는 스마트 TV, 스마트 냉장고 등 수직적으로 다원화되거나 중층적 구조를 띠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플랫폼 경쟁 공간이 확장되고 세분화되는 만큼 국내 기업들이 플랫폼 전략을 잘 짜기만 한다면 패권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영역 또한 적지 않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용어 설명
사물인터넷(IoT)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의 정보를 상호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 및 서비스.

스마트 홈 가전제품을 비롯한 집 안의 모든 장치를 연결해 제어하는 기술.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