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위기 이후 17년 만에 적자…‘글로벌 디벨로퍼’ 가속에 승부수

대림, ‘3세 경영’으로 위기 돌파
대림그룹의 지주사 격인 대림코퍼레이션이 대림I&S를 흡수 합병하면서 창업자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의 장남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대림코퍼레이션의 최대 주주에 올랐다. 이번 합병으로 사실상 경영 승계에 방점을 찍으면서 재계 순위 13위 대림그룹의 ‘3세 경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다.

대림코퍼레이션은 4월 22일 이사회를 열고 대림I&S와의 사업 통합을 위한 합병을 결의했다. 합병 방식은 대림코퍼레이션의 합병 신주를 피합병 법인인 대림I&S 주식과 교환하는 흡수 합병으로 진행된다.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I&S의 합병 비율은 1 대 4.19로 결정됐다. 양사는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오는 7월 1일 합병 절차를 최종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 합병의 핵심은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율 변화다. 합병 후 이준용 명예회장과 이해욱 부회장의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율은 각각 60.9%와 32.1%에서 42.7%와 52.3%로 변화하게 된다. 부자의 보유 비율도 93%에서 95%로 늘어나게 된다. 이 같은 보유 지분 상승은 대림I&S가 이 부회장이 89.69%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 개인 회사였기 때문이다.

대림코퍼레이션은 그룹의 주력 기업인 대림산업 지분 21.67%를 가진 최대 주주다. 즉 대림I&S를 대림코퍼레이션이 합병함으로써 기존 ‘이준용-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 체제에서 ‘이해욱-대림코퍼레이션-대림산업’ 체제로 바뀐 것이다.

대림그룹은 이번 합병의 이유를 ‘경영 시너지 창출’이라고 밝혔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대림코퍼레이션은 유화 트레이딩 및 물류업이라는 기존 사업 구조에 대림I&S의 정보기술(IT) 사업을 접목하게 돼 글로벌 디벨로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며 “대림I&S는 대림코퍼레이션이 보유하고 있는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IT 사업 영역을 해외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너십 강화 포석
다만 업계에선 이번 합병 작업이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확실하게 결정지은 계기로 보고 있다.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이 부회장 경영 체제가 시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며 “그동안 경영 수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림그룹이 이 회장이 건재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경영 승계를 마친 이유는 ‘오너십의 강화’를 통한 ‘위기 탈출’로 해석할 수 있다. 그룹의 핵심 기업인 대림산업은 국제회계기준(IFRS) 연결 기준으로 2014년도 실적이 매출 9조2961억 원, 영업손실 2703억 원, 당기순손실 4410억 원을 기록했다. 대림산업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대림산업은 건설 부문과 화학 부문 등 크게 두 업종으로 이뤄져 있다. 건설은 국내와 해외로 나눠 볼 수 있는데 해외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해외 공사 현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작년 4분기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 4곳과 쿠웨이트의 현장 1곳에서 약 4000억 원이라는 추가 비용이 들어가면서 휘청한 것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현지의 지속적인 인건비 상승, 하도급 업체 생산성 저하에 따른 공기 지연, 공기 준수를 위한 돌관 공사 비용 등이 비용 상승의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한 발 앞서 이 부회장 체제를 본격 가동함으로써 향후 생겨날 수 있는 불필요한 잡음을 없애는 것은 물론 그룹 전체가 제대로 된 ‘위기 탈출의 신호탄’을 쏘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대림그룹의 사업 구조 재편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대림그룹이 키울 핵심 사업의 힌트는 이 부회장이 발표한 2015년 신년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신년사에서 “디벨로퍼(종합 개발 사업자)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가자”고 주문했다. 즉 경기가 어려운 만큼 이제 기획부터 건설과 사후 운영까지 모두 맡아 진행해 수익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에 따라 대림그룹은 앞으로 세 가지 사업을 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다. ▷석유화학 및 에너지 ▷호텔 ▷기업형 임대주택 등이 그것이다. 석유화학 및 에너지는 이미 대림그룹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실적이 부진했던 2014년에도 대림산업은 석유화학 부문의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2% 증가한 190억 원을 달성했다.

여기에 디벨로퍼로서의 역량을 강화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대림은 지난해 투자·시공·운영까지 모두 담당한 포천LNG복합화력발전소를 준공하고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대림 관계자는 “석유화학 부문은 앞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 등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키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화학 및 에너지·호텔·임대주택 강화
호텔 부문도 적극 키울 계획이다. 호텔도 토지 매입부터 건설을 비롯해 시설 경영까지 맡는 원스톱 방식으로 키울 예정이다. 대림산업은 작년 12월부터 비즈니스호텔인 ‘글래드호텔 여의도’의 영업을 시작했다. 이 호텔은 대림산업의 비즈니스호텔 브랜드인 ‘글래드(Glad)’가 처음으로 적용됐다.

대림산업은 글래드호텔 여의도를 시작으로 서울 시내에서 호텔 수요가 많은 강남·마포·을지로 등에 글래드호텔을 더 세우기로 했다. 대림산업은 2015년까지 1차적으로 2000개 정도의 객실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4000개 객실의 호텔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대림산업은 지금도 제주도 그랜드호텔 등 전국에서 3000객실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형 임대주택도 건설 업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준비했다. 대림은 작년 10월부터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을 검토했고 올해 1월에는 주택임대사업팀을 별도로 만들었다. 대림산업은 지난 1월 기업형 임대주택 1호 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림, ‘3세 경영’으로 위기 돌파
이에 따라 대림산업은 인천도시공사와 인천 도화지구 5, 6-1블록에 기업형 임대주택 1960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주력으로 삼았던 수주 산업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힘든 구조”라며 “대림의 변화는 기존 건설사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 수익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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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세 경영’으로 위기 돌파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사실 재계 인사 중에서 그리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대림산업의 특성상 오너 일가가 외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일찍부터 경영 교육을 받으며 대림산업을 이끌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경복초·중앙중·경복고를 나와 미국 덴버대 경영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응용통계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95년부터 대림그룹에서 일해 왔고 2011년부터 대림산업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합리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엔 건설 업계에서 처음으로 ‘e편한세상’ 출범을 지휘하며 실용적인 디자인을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3남 2녀 중 장남이다. 이 부회장은 친지의 소개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 구훤미 씨의 딸 김선혜 씨를 만나 연애결혼했다. 또 고등학교 동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각별한 사이다. 야구광인 이해욱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가끔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