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최대 시장, 중국도 자국인 쇼핑 수요 잡기 나서

세계가 면세점 확장 경쟁…진원지는 ‘유커’
세계 면세점 업계에 몸집 키우기 경쟁이 한창이다. 대형 인수·합병(M&A)과 점포 확대가 봇물을 이룬다.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해외여행 붐으로 세계 면세점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이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2013년 542억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면세점 시장이 2015년 6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산야에 초대형 면세점 개점
최고의 격전지는 아시아다. 2014년 유커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이 아시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커의 해외여행지 비중은 아시아가 89.5%, 유럽 3.5%, 아프리카 3.0%, 미주 지역 2.7%, 대양주 1.1%순이었다.

유커의 절대 다수가 찾는 아시아 내에서도 주목할 곳은 따로 있다. 유커 붐으로 지난해 최대 수혜를 본 한국과 지난해 말 엔저 현상과 맞물려 중국인의 방문이 다시 급증하는 일본 그리고 유커의 본고장 중국 등이다. 이들의 ‘면세점 삼국지’가 한창이다.

세계 면세점 시장 1위(매출액 기준)인 한국은 최근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에 따라 시내 및 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따려는 기업들로 붐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 중 63.6%가 1인당 500달러 이상을 쇼핑으로 지출했다. 이 가운데 60%가 면세점을 쇼핑 장소로 선택했다. 한국관광공사는 2020년 ‘유커 1500만 명 시대’가 오면 이들이 한국에서 쇼핑에 쓰는 돈은 3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엔화 약세로 일본 면세점의 상품 가격이 저렴해지자 지난해 말부터 일본을 찾는 유커가 늘고 있다. 유커들은 일본의 다양한 휴양·테마 관광 콘텐츠와 음식, 친절한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정부와 관광 업계는 더 많은 유커를 유치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지난해 240만 명(전년 대비 83% 증가)이 다녀간 일본은 공항 면세점과 시내 면세점 확대에 나섰다. 올가을 미쓰코시이세탄·일본공항·아리타국제공항이 공동으로 도쿄 긴자에 시내 면세점을 열 예정이다. 롯데면세점도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말 오사카와 함께 도쿄 긴자 지역의 시내 면세점 진출을 위해 일본 정부에 허가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이 밖에 일본의 다른 기업들도 대도시 중심부에 면세점 추가 출점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외국인 대상 면세 품목을 확대했다. 2015년 1월에는 중국인 관광객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며 유커 유치에 적극 나섰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하면서 일본의 면세점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의 견제도 심상치 않다. 중국은 한국에 이어 세계 면세점 시장 3위(2013년 기준) 규모다. 중국인이 세계 각국 면세점 시장에서 ‘큰손’으로 군림하자 중국 정부와 기업이 자국민의 쇼핑 수요를 내부로 흡수하기 위해 나섰다. 면세점 업체의 몸집 불리기가 가속화되고 있고 정부도 ‘쇼핑 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내 최대 여행업·면세점 업체인 국영 중국국제여행사(CITS)의 행보가 가장 눈에 띈다. CITS의 자회사인 중국면세품그룹은 2014년 8월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접경 지역인 훠얼궈쓰에 서북 지역 최초의 면세점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다른 면세점과 달리 비즈니스·관광 등을 위해 이 지역을 방문한 이들에게도 물건을 판매한다. 9월에는 ‘동방의 하와이’로 불리는 중국 하이난섬 산야에 세계 최대 규모 면세점 ‘CDF몰’을 열었다. 기존 하이난 산야의 시내 면세점에 추가해 지어진 이 면세점에는 롤렉스·샤넬 등 300여 개의 최고급 브랜드가 입점했다.

특히 이 면세점은 홍콩이나 중국의 다른 지역 면세점에서보다 30% 정도 가격이 저렴하다는 게 특징이다. 총면적은 7만2000㎡로, 한국 최대 규모인 롯데월드면세점의 6배가 넘는다. CDF몰은 고급 호텔, 오락 시설 등을 갖춰 중국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CITS는 올 1월 온라인 면세점을 새로 열었고 베이징 수도공항과 상하이 푸둥공항 면세점의 운영권 낙찰 가능성도 높아 추가 면세점 오픈도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CITS의 전체 매출은 4조 원을 웃돌 전망이다.


미국·유럽 업체도 M&A 나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오픈한 면세점과 기존 면세점의 성장을 감안하면 향후 3년간 중국의 면세점 영업이익 증가율은 20%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며 “중국의 면세 사업 시장은 1위인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홍콩 등도 유커를 잡기 위해 면세 사업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대만은 중국과 가까운 진먼섬의 군사보호구역을 개발해 대규모 면세점 ‘에버리치’를 열었다. 에버리치 측은 “중국과 대만·홍콩·마카오 관광객을 위한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메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쇼핑의 천국인 홍콩의 정부도 유커를 위해 면세점을 한곳에 모아 경쟁력을 키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세계가 면세점 확장 경쟁…진원지는 ‘유커’
비교적 여유 있는 유커들이 장기 여행지로 선호하는 유럽·미국 시장은 어떨까. 이들 지역의 면세점 업체들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면세점 업체의 대형 M&A가 이어지는 것도 중국인 관광객의 면세점 수요 증가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세계 1위 면세 업체인 듀프리를 중심으로 선두 업체들은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이다.

스위스 면세점 ‘듀프리’는 공격적인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 중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세계 2위였던 듀프리는 2014년 6월 스위스 면세 업체 ‘뉘앙스(7위)’를 인수하며 사실상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이어 듀프리는 지난 3월 이탈리아 면세 업체 월드듀티프리(WDF, 6위)를 추가 인수했다. 2014년 세계 면세점 업계의 공식적인 매출 집계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듀프리가 그동안 세계 1위 자리를 지켜 온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계열사 DFS를 밀어냈다는 분석도 있다. 듀프리의 글로벌 면세점 수는 영국·스페인·미국 등을 중심으로 2000곳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가 면세점 확장 경쟁…진원지는 ‘유커’
1위를 고수해 온 DFS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DFS는 최근 중국인 관광객의 면세점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들이 자주 찾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면세점을 추가 개점할 계획이다. 하지만 2014년 매출 잠정치가 LS트래블 리테일, 롯데면세점 등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보다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DFS는 2013년 유커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25% 매출 성장(40억6500만 유로)을 기록한 바 있다.

국내 선두 업체인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도 최근 활발한 M&A에 나섰다. 신라면세점은 미국 기내 면세점 1위 업체인 디패스(DFASS)를 인수했다. 롯데면세점은 듀프리가 가져간 WDF 인수전에 참여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한국 면세 시장이 규모로는 세계 1위이지만 국내 업체들의 브랜드 인지도나 해외시장 경험이 글로벌 경쟁사에 뒤지는 면이 많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