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회장, 류성룡의 13세 후손…드라마 후원 등 자부심 남달라
류성룡 열기는 출판계를 거쳐 드라마에 상륙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징비록’ 관련 도서가 소설·연구서·청소년도서에 이르기까지 10여 권을 훌쩍 넘겼다. KBS는 지난해 ‘정도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재상 사극’, ‘정통 사극’ 열기를 이어 나가겠다며 2월 중순부터 ‘징비록’ 방영을 시작했다. 8회까지 10% 안팎의 시청률을 올리며 순항 중이다. 그런데 드라마 ‘징비록’ 자막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제작 후원에 풍산그룹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하드라마를 후원하는 기업이 워낙 드물 뿐만 아니라 동 가공과 방산 분야로 B2B 사업을 하는 풍산이 후원에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본관 이름 따 그룹 이름 ‘풍산’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풍산 류씨라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바로 류 회장이 류성룡의 13세 직계 후손으로, 안동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풍산그룹 관계자는 “조상의 이야기니까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주제인 국방과 그룹 성격이 잘 맞아떨어지는 이유도 있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류 회장은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다. 평소 “선조인 서애 선생의 정신을 알리고 실천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여러 지원 사업을 펼친 바 있다. 풍산이 설립한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통해 ‘국역 서애전서’를 출간하고 ‘징비록’ 영역본 발간을 후원한 게 대표적이다. 드라마 ‘징비록’도 서애선생기념사업회를 통해 자료 등을 제공하며 돕고 있다.
이는 부친인 고(故) 류찬우 전 회장의 창업 정신을 이어 받은 것이다. 류성룡의 12세손인 류 전 회장은 “풍산의 목표는 자주국방”이라면서 “서애 할아버지의 정신을 이어 받아 자주국방에 앞장서는 게 풍산을 세운 이유”라고 강조했다. 1968년 구리 가공 업체인 풍산금속을 세울 때 풍산 류씨 본관을 따 사명을 지은 것이다. 평소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류 전 회장의 인생관은 2세 경영인 류진 회장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류 전 회장의 차남인 류진 회장은 아버지가 설립한 서애기념사업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 사업을 전개해 왔다.
류진 회장이 이끄는 풍산은 ‘동전과 총알의 왕국’으로 불린다. 1970년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주화용 소전(동전으로 가공하기 전 동전의 원형) 제조업체로 지정된 이후 급성장했다. 구리를 가공해 건설·자동차·정보기술(IT) 분야 등으로 판매하는데 ‘비철금속 업계 3인방’으로 불리며 ‘과점’ 형태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경제 공업화를 위한 5대 핵심 사업체의 하나로 지정돼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소구경탄·박격포탄·직사포탄을 개발하는 등 군에서 쓰이는 전 품종을 생산해 95%의 국산화했다. 2013년 기준 매출액 3조 원, 영업이익 1300억 원을 기록했다. 이 중 매출의 약 30%가 방산 비중이다.
풍산은 2008년 지주사 체제로 지배 구조를 바꿨다. 류진 회장-풍산홀딩스(지주사)-풍산 축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있다. 풍산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지분 34.9%를 보유한 류진 회장이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녀인 부인 노혜경 씨가 3.4%를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류영우 씨를 비롯한 친인척들이 1%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류 회장과 친인척이 약 42%의 풍산홀딩스 지분을 갖고 그룹을 지배하는 단순한 구조로 큰 리스크는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화려한 해외 인맥 자랑
류진 회장은 해외 인맥이 화려하기로도 유명하다. 류 전 회장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일본에서 아메리칸고를 졸업해 일본어에 능통하고 서울대 영문학과와 미국 다트머스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수료한 덕분에 영어 회화도 수준급 실력이다. 류 회장은 미국의 정·재계에 인맥이 넓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방미 수행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는 각별한 사이로, 풍산 류씨 한 관계자는 “한국에 부시 대통령이 왔다고 하면 100% 류진 회장이 모신 것이다. 부시 대통령에게 ‘대디’라고 부를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고 귀띔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와도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이와 같은 친화력의 비결 중 하나가 가문의 힘이다. 해외 지인들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안동 종가에서 전통 체험을 안내하는 등 풍산 류씨의 가풍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류진 회장을 비롯해 류성룡의 후예들은 명문가라는 이름으로 집안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약 2만 명의 소규모 문중임에도 불구하고 대종회 등을 통해 자주 교류하고 안동 종가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집안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류진 회장은 한 해 절반 가까이를 해외 출장길에 오르면서도 매년 한두 번은 고향에 들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1970년대 설립된 서애선생기념사업회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류성룡의 직계 후손들은 풍산 이외에도 재계·정계·학계 등으로 폭넓게 진출해 있다. 대표적으로 류우익 전 통일부 장관이 있다. 류성룡의 12세손으로 2009년 주중대사로 일할 당시 한국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징비록’을 선물해 화제를 불러 모았다. 또한 13대·14대 국회의원과 3개 은행장을 지낸 류돈우 전 한국주택은행장도 류 씨 일가다. 그는 풍산 류씨 대종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류한섭 전 신세계백화점 회장이 15세손이며 가문 내에서 풍산그룹 다음으로 큰 유성기업의 류홍우 회장도 12세손이다. 자동차 엔진 부품 생산 업체인 유성기업은 현대차의 핵심 부품 회사로 피스톤링 및 실린더라이너 국내 점유율 70% 수준의 독과점 업체다. 이 밖에 탤런트 류시원 씨와 권투 세계챔피언 류명우 씨도 모두 류성룡의 후손들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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