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2년째인 베테랑 경영자… ‘긍정의 힘’으로 위기 돌파

위기의 순간마다 빛난 승부사 기질
학력 : 1972년 경기여고 졸업. 1976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1979년 이화여대 대학원 사회학과 졸업. 1983년 페어리 디킨슨대 인간개발론 전공.

경력 : 1988년 대한여학사협회 재정분과위원. 1998년 걸스카우트연맹 중앙본부 이사. 1999년 대한적십자사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2002년 걸스카우트연맹 홍보·출판 분과위원장. 2003년 현대그룹 회장 취임. 2005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 2006년 중앙인사위원회 인사정책자문회의 위원. 2011년 주한 브라질 명예 영사. 2013년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취임.


2003년 10월 21일. 현정은(60) 현대그룹 회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갑작스러운 남편 정몽헌 회장의 죽음과 현대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어 당시 그룹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다. 취임 이후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가족 간의 경영권 분쟁이 두 차례나 벌어졌다. 2003년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벌인 ‘숙부의 난’, 2006년 정몽준 현대중공업 전 회장과 벌인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이 대표적이다. 2010년에는 현대상선의 주요 주주인 현대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현대차와 경쟁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고 2008년 중단된 대북 사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2013년 말에는 또다시 닥친 유동성 위기가 현 회장을 옥죄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현 회장은 ‘승부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렇게 현대그룹을 지켜낸 지 올해로 12년째다.


‘타고난’ 사업가…배짱도 두둑
현 회장이 처음 경영 일선에 나섰을 때만 해도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21세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던 현 회장이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평생 일군 대그룹을 떠맡을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로 드러났다. 현 회장은 고비 때마다 단호한 경영 혁신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 회장은 사업가 유전자를 타고난 것 같다”며 “배짱이 보통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실제로 ‘사업가 유전자’를 물려받기도 했다. 그는 현영원(2006년 작고) 신한해운 회장과 김용주 전방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86) 용문학원 이사장의 네 딸 중 둘째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 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현 회장의 경영 능력은 실적으로 확인됐다. 회장 취임 1년 후인 2004년 현대그룹의 주력 계력사인 현대상선이 사상 최대 순익(4279억 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 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 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 원)·현대증권(580억 원)·현대택배(74억 원)·현대경제연구원(3억 원)도 같은 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 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 원(2004년 말 6조6400억 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당시 19위)에 입성하겠다는 ‘2010 프로젝트’를 선포했다.

현 회장 취임 10년째인 2013년 현대그룹의 자산은 2003년 8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네 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5조 원에서 12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2013년 말 불어 닥친 유동성 위기도 성공적으로 탈출했다는 평가다. 현 회장은 주채권 은행인 KDB산업은행과 협의해 3조3000억 원의 선제적 자구안을 발표했다. 이후 현 회장은 빠르게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현대증권·현대로지스틱스 등 그룹의 핵심 사업을 매각하며 1년 만에 목표의 100%를 달성했다. 자신의 사재 440억 원을 출연해 현대상선과 현대유엔아이가 보유 중인 현대글로벌 주식 32.9%를 매입하는 과감함도 보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지배 구조도 개선했다.

여기에는 현 회장이 취임 이후 착실히 다져 왔던 ‘내실 경영’의 힘이 컸다. 현 회장은 영업을 최우선시하는 ‘슈퍼 세일즈 이니셔티브(SSP)’를 추진해 ‘영업의 현대’를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 그뿐만 아니라 전사적 비용 절감 캠페인을 펼치는 등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해 왔다.

현 회장은 중단된 현대아산의 ‘대북 사업(금강산 관광·개성 관광 및 공단 등)’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꾸준히 돌파구를 모색했다. 현대그룹에서 대북 사업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필생의 사업, 정몽헌 회장의 혼이 담긴 사업이다. 그런 사업이 중단된 지 벌써 7년째다.

현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 북한 철도 현대화 등 남북 경협에 대한 희망의 바람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만들어지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 그룹이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남북 경제협력의 선구자적 면모를 가져 달라”고 말했다.


내실 다지며 ‘대북 사업’ 돌파구 기대
대북 사업에 대한 현 회장의 강한 의지는 그동안의 행적에 그대로 묻어난다. 2009년 현대아산 직원 억류 사건으로 대북 사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 2박 3일 일정으로 방북 길에 올랐다. 당시 다섯 차례나 북한 체류 일정을 연장하는 등 끈질긴 기다림 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성사시켰다. 면담 후에는 북측 조선아태평화위원회와 이산가족 상봉 등 5개항 합의 성과도 얻었다.

2013년 8월 정몽헌 회장 10주기 추모식 때도 현 회장은 방북을 통해 김정은 제1비서의 구두 친서를 전달 받고 금강산 관광 사업의 불씨를 되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4년에도 세 번이나 북한을 다녀왔다. 2014년 12월에는 개성공단을 방문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친서를 전달 받았다. 2014년 11월 금강산 관광 16주년에도 방북해 기념행사를 열었다. 올 초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한 왕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의 오찬 행사에 참석해 왕 부총리에게 대북 경제협력 사업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했다. 2008년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대북 사업 전면 중단 조치로 현대아산이 얻은 누적 손실은 지난 7년간 1조 원에 달한다.

현 회장의 경영 능력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미국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월스트리트저널이 뽑은 ‘주목할 만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발표 ‘2011년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에 선정되는 등 경제계 리더로 자리 잡았다.

현 회장은 사내에서는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름철 복날에 전 직원에게 삼계탕을 보내기도 했다. 임직원들에게는 자녀 교육 책이나 수험생 자녀를 위한 목도리, 여직원들에겐 여성 다이어리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현 회장이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가장 큰 힘, 바로 ‘긍정의 힘을 믿는 마음’이다. ‘긍정의 마인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한다. 어떠한 역경이 있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바로 긍정의 힘’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 회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임직원들에게 자신감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현 회장 특유의 ‘긍정 리더십’이 임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최근 현 회장은 그룹의 재도약을 위한 청사진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 초 신년사를 통해 “2014년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 매각과 조직 슬림화 추진 등 고통스럽고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생존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올해 한 해도 내·외부적으로 많은 변화와 위기가 있겠지만 능동적으로 활로를 찾는다면 현대그룹이 한층 성장하고 단단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