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중국 지렛대로 정면 돌파 노려…극적 화해 가능성도

서방과 맞짱 뜬 푸틴의 ‘히든카드’
러시아는 자원 대국이자 대표적인 이머징 국가다. 작년 초만 해도 잘나가던 러시아가 하반기부터 무역수지 악화, 자본 유출, 루블화 폭락 등 암초에 부딪치고 있다. 이유는 뭘까. 경제적 요인은 러시아가 원유·가스 공급국이니 유가 급락이 틀림없다. 다른 요인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정치·군사적 요인으로 주변국인 우크라이나 사태를 꼽는다.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전략적 요충지다. 1991년 12월 소련 붕괴로 독립국가가 됐지만 대외 정책에서 늘 유럽·러시아 등거리 외교에 부심해 왔다. 2010년 들어선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에 2010년 4월 흑해함대의 크림반도 주둔을 2042년까지 연장해 준 한편 유럽과는 유럽연합(EU) 회원이 되기 위한 계약 체결에 노력하고 있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러시아의 대우크라이나 경제제재가 지나쳤던 것일까. 아니면 러시아의 표현대로 서방의 사주와 친서방 세력의 작품일까. 결국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졌고 정치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면 서방과 러시아의 빠른 주고받기가 진행됐다.

우선 우크라이나에서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고 친미·유럽파인 경제장관 출신 페트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연히 이전의 등거리 외교는 친미·친유럽 기조로 바뀌었다. 반면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친서방 노선에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구소련 때부터 우크라이나를 자국 영향권 국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으로 기울면 나토 가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어도 나토와의 군사협력이 강화돼 러시아에 심각한 군사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다. 첫째, 크림반도에 주둔하는 러시아 흑해함대가 사실상 계속 존속할 수 없게 되고 그 지역에서 나토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란 걱정이다. 둘째, 나토의 군사시설이 우크라이나로 들어올 가능성이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위 시스템이 우크라이나에 배치되면 러시아의 핵 억지력은 결정적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런 위협 때문에 러시아로서도 크림반도 영향력 확대가 중요한 안보 과제였던 셈이다. 크림반도의 민족 구성을 보면 러시아인 59%, 우크라이나인 24%로 러시아가 우세하다. 또 역사적으로도 러시아엔 특별한 지역이다. 왜냐하면 구소련 시대에 러시아공화국령에 속해 있다가 1954년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통합 300주년을 기념해 우크라이나령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 쪽에서 보면 크림반도 편입은 옛 영토의 회복일 뿐이다. 2014년 3월 주민투표는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편입 찬성이 95%로 압도적이었고 바로 러시아에 편입됐다.


나토 영향력 확대 우려
러시아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의 독립에 대해서도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 배경엔 구소련연방이 자국 영향권이라는 생각이 놓였다. 크림반도 편입 때 러시아 상원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거주 러시아계 주민을 보호할 군대 파견을 승인한 것도 이런 러시아의 시각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위기로 서방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당초 구상하던 두 가지 대외 정책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라시아연합과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동아시아 관계 강화가 그것이다.

첫째, 자국의 영향권이라고 생각하는 구소련 지역 외교, 즉 소위 ‘유라시아연합 구상’이다. 푸틴 대통령은 유라시아연합을 위해 러시아를 중심으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과의 통합을 가속화하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서방 개입 사건으로 보고 있고 서방이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연합을 방해하려는 것으로 판단한다. 2014년 5월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3국 정상은 유라시아경제동맹에 합의해 올해부터 조약이 발효되도록 돼 있다. 이 조약은 이전의 ‘3국간 경제 통합’을 더 강화한 것으로, 자유무역지구 설치·재화·서비스는 물론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등을 골자로 한다. 러시아에선 이 조약에 의해 개별 국가의 독립을 충분히 유지하면서도 경제협력 분야에서 보다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질 것으로 평가한다. 군사 협력 강화도 도모하고 있다. 2014년 6월 모스크바에서 이들 3개국 국방장관 회의가 개최됐고 향후 3개국에 대한 대외 위협에 대응하는 3개국 합동의 군사작전 계획도 승인됐다고 한다.


벨라루스·카자흐스탄과 ‘유라시아 연합’ 시동
둘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의 관계 강화다. 우크라이나 위기에 따른 서방과의 대립 때문에 러시아엔 중국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발전을 중시해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일관되게 모색해 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의 동아시아 외교를 더욱 적극화하는 계기가 됐다. 2014년 5월 푸틴 대통령의 중국 공식 방문은 중러 밀월 관계가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방문으로 러시아는 외교적 성과를 거뒀고 중국은 계약 기간 30년간 4000억 달러의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따내는 경제적 실익을 챙겼다. 물론 군사적 이해관계도 나름대로 일치해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해상 훈련 2014’에 양국 정상이 참석, 군사 협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이는 서방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동결한 직후여서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외 협력도 각국 이해관계가 꼭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에 ‘향후 전망=순항’으로 보는 의견이 많지는 않다. 첫째, 유라시아연합은 3국 간 장기적인 협력 관계 강화를 위해선 유라시아경제동맹 내부의 자유로운 물자 이동, 3개국의 관세와 규제 관련 제도의 일치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통합 강화에 대해 3국의 생각이 똑같지 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벨라루스는 대유럽 협력에 대해 내심 호의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러시아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어 유럽 관계 개선이 어렵다. 내부에선 유라시아경제동맹으로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많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1994년 스스로 유라시아연합 구상을 제의한 국가다. 따라서 개념 자체에 대해선 호의적이지만 러시아 주도에 대한 지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카자흐스탄은 2014년 1월 발표한 ‘2014~2020년 카자흐스탄의 대외 정책’에서 카자흐스탄의 경제 발전에는 다양한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벨라루스· 카자흐스탄·러시아가 원하는 유라시아 멤버 확대에 대해 경계 심리도 갖고 있다.

둘째,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도 러시아 생각대로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해 중국이 러시아 지지를 명확히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는 반대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은 우려된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또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통합 추진도 양국의 입장이 다르다. 중국은 독자적인 신실크로드 전략을 통해 중앙아시아로의 적극적인 진출을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언젠가는 러시아의 대CIS 영향력 확대 전략과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셋째, 그러면 향후 러시아와 서방 관계는 어떻게 될까. 더욱 악화될까, 아니면 어느 정도 선에서 관계 개선으로 전환될까. 지금 정치·외교 분위기로 봐서는 장기화될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들이 많지만 경제적으로 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 경제를 보면 유럽은 러시아의 최대 수출처다. 대유럽 관계가 악화되면 무역수지의 타격이 심각하다. 게다가 최근 유가 급락 이후 배럴당 50달러 전후로 계속 가면 러시아는 자본 유출, 루블화 급락 등 금융 위기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럽도 재정 위기 극복이 지지부진한데다 최근 그리스 등 좌파 정권 득세가 두드러지고 있어 불안 요인이 많다. 서로 모멘텀만 있으면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 겸 코차이경제금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