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했던 골목, 이색 테마· 스토리 달고 부활…새로운 관광 명소로

좁은 뒷골목과 샛길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허름했던 골목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개성을 입은 핫 플레이스가 됐다. 최신 트렌드가 아날로그 감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골목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며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서울의 억압과 구속을 벗어나 보려는 작은 노력일까. 한경비즈니스가 보물 같은 ‘숨은 골목 찾기’에 나섰다. 이번 설, 가족·지인들과 도심 속 상전벽해 골목의 현재를 걸어보시길….


한때는 ‘연남동’ 하면 ‘기사식당’이 떠올랐다. 이도 아니면 ‘중국집’이 전부였다. 이랬던 동네가 이젠 달라졌다. ‘촉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권하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자유분방하고 예술적 감성이 남다른 홍대 분위기를 이어받은 느낌이다. 홍대와 다른 점이라면 20대부터 60대까지 어느 세대가 와서 즐겨도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연남동 ‘한 지붕 다섯 가족’
요즘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길은 연남동에서도 동진시장 인근이다. 이곳에는 태국 음식점(툭툭 누들타이), 멕시코 음식점(베무초 칸티나)이 줄을 잇는다. 이국적인 식당들이 모여 뿜어내는 분위기가 마치 이태원 경리단길과 흡사해 이 길은 ‘넥스트 경리단길’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이 분위기는 1970년대 느낌을 간직한, 낡아서 더 새로운 동진시장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도심 속 오아시스’ 이색 골목길 탐방
길에서 만난 김연욱(32) 씨는 자신을 ‘연남동 마니아’라고 소개한다. “낡은 것은 낡은 대로, 모던한 것은 모던한 대로 분위기가 달라요. 그래서인지 마음도 편해지고요. 이태원이나 청담동 갈 때보다 옷차림도 덜 신경 쓰게 돼요(웃음).”

연남동은 동진시장 근처와 기사식당 골목 등이 발달했다. 하지만 대세에 따르는 것은 옛날 방식이다. ‘나만의 공간’을 찾는 발길은 점차 골목 깊숙이 파고든다. 홍대 공항철도역 인근 골목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창 공사 중인 공항철도 위 길가와 골목 안은 한두 걸음 차이인데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골목 안 주택가 사이사이에 터를 잡은 상점들을 찾는 일은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기분이다. ‘주택가’라는 특징을 살려 단독주택 한 채를 여럿이서 쓰는 가게도 눈에 띈다. ‘한 지붕 다섯 가족’이 모인 곳도 있다. 반지층에는 빵집(토미스 베이커리)과 아로마 카페(후니 팟)가, 1층에는 펍&레스토랑(퍼블릭 601, 신군&신양)이, 2층에는 이 동네에서 ‘뜨는’ 비즈니스로 꼽히는 게스트하우스(갈맥이 둥지)가 옹기종기 들어서 있다.

골목을 돌아서니 ‘한 지붕 여덟 가족’도 나온다. ‘어쩌다 가게’라고 불리는 이곳은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 2층을 개조한 건물에 8개의 작은 가게들이 모여 공간을 공유하는 곳이다. 일종의 ‘셰어 스토어’ 개념이다. ‘어쩌다’ 이런 공간이 생긴 걸까.

이곳은 ‘요즘 뜬다’ 하는 동네에서 어김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법칙을 깨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대개 좋은 가게가 하나 둘 몰려들며 트렌드가 형성되면 건물주가 임차료를 올리고 기존 가게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으면 프랜차이즈 업소나 건물주가 그 자리에 들어와 본래 느낌이 사라진다. ‘어쩌다 가게’는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 작은 가게도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5년 임차료 동결’을 대안을 꺼내 들었다. 마치 ‘도시판 정글의 법칙’ 같다. 입주자들은 일정 금액의 보증금과 월세를 부담하며 5년 동안의 임대 기간을 보장받는다. 새로운 개념의 이웃이 된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교류하며 지내는 진짜 이웃이 됐다. “함께 잘 살기 위해 모였다”는 이들의 외침이 절절이 느껴진다.

연남동 뜨는 골목은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빠져나와 큰 길을 따라가면 만난다.

가수 태진아와 비를 능가하는 컬래버레이션이 등장했다. 그것도 골목에서 말이다. 서강대 인근에 있는 마포구 신수동 광성로 일대에는 상점들끼리 컬래버레이션 열풍이 일었다. 카페(신수동리), 밥집·주점(요수정), 카페·꽃집(레망마지끄), 레스토랑(홈스타일) 등 네 가게가 공동 쿠폰 ‘신수동 한바퀴’를 만들었다. 각 상점마다 운영하는 쿠폰과 달리 이들은 공동 쿠폰을 이용해 네 곳 중 어디든 이용해 스탬프 12번을 받으면 선물을 주는 방식이다. 4개월째 운영 중인 이 쿠폰의 이름이 그래서 ‘신수동 한바퀴’다.

“나 혼자 잘산다고 해서 사는 게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같이 잘사는 게 중요하죠. 그래서 공동 쿠폰으로 이 동네 가게를 엮는 컬래버레이션을 생각했죠. 이익보다는 이 동네가 활성화되는 시너지를 원한 거죠. 그런데 생각만큼 손님들의 피드백이 빠르지 않아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정찬호 카페 신수동리 사장의 말이다. 처음 정 사장이 카페를 개업할 때만 해도 이 골목에는 신수동리밖에 없었다. 그 뒤로 하나둘씩 가게가 늘어났다. 업종은 다르지만 취향이나 콘셉트가 어우러져 이것을 잘 버무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공동 쿠폰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컬래버레이션에 꽂힌 인물은 신 사장만이 아니다. 요수정을 운영하는 신창현 사장은 최근 ‘신수동 한바퀴’ 외에 또 다른 컬래버레이션을 준비 중이다. 옆 가게 빵집(빅베어 브레드)과의 ‘브런치 프로젝트’다. 브런치에 들어가는 빵은 빵집에서, 빵 위에 얹는 토핑은 요수정에서 준비해 맛·디자인·가격이 동일한 이 브런치를 양쪽 가게에서 동시에 판매한다.

신 사장은 “골목 상권에서는 더더욱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수동 한바퀴’가 근원이 돼 이런 컬래버레이션을 생각해 낼 수 있었어요. 꽃집(레망마지끄)과도 계획하는 게 있고요. 각자의 재능을 잘 합쳐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며 협력해야 상권도 살아나고 서로에게 에너지가 되지 않겠어요?”


골목이 ‘커뮤니티’…방배 사이길
‘골목길’ 전성시대는 강북만의 얘긴 아니다. 1980년대 방배동은 ‘돈과 멋을 아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청춘의 거리였다. 돈과 유행이 만나니 유흥 1번지로도 통했다. 맛집과 술집이 즐비한 ‘방배동 카페거리’, ‘함지박 사거리’ 등이 생겨난 배경이다. 그런데 최근 이 동네 트렌드가 바뀌었다. ‘멋’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 이곳을 찾는다. 방배동 42길에 있는 ‘방배42길’이다. 방배로42길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지만 방배동을 대표하는 카페 골목과 서래마을 사이에 있다고 해서 ‘사잇길’이란 뜻도 있다. 이 길은 초입부터 끝까지 약 300m 쯤 된다. 2011년부터 이 골목 사이사이에 갤러리와 공방 등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30여 개의 각종 아트 숍이 들어섰다. ‘문화 예술 거리’가 된 셈이다.

평일 오후 이 골목은 제법 한산하다. 외국인 관광객이나 내국인들에게 아직 덜 알려져서인지 삼청동거리·가로수길에 비하면 아직 손이 ‘덜 탄’ 소박한 느낌이다. 도자기 핸드 페인팅 전문 스튜디오(세라워크)와 체코 유리 공예점(더 크리스탈), 아트 갤러리(갤러리 토스트, 아트 컴퍼니 긱, 미나 아뜰리에) 등 사이로 수십 년째 자리를 지켜 온 세탁소와 목욕탕이 자리 잡고 있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뒤섞인 모습이다. ‘육체노동’의 참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청년 목공수(키논)가 있는가 하면 작은 가게들의 가치를 알리겠다고 나선 젊은 청년들(나우앤뉴)도 있다. 신진 작가들이 만든 개성 넘치는 작품들과 각종 인테리어 소품도 눈길을 끈다. 털실·천으로 핸드 메이드 제품을 만드는 공방(인투)은 이 골목이 인기를 끌며 ‘네이버’의 골목 트렌드 프로젝트로 온라인 숍에 입점하기도 했다.

방배사이길의 매력은 이게 모두가 아니다. 이 길을 ‘예술거리’로 만들어 가는 이곳 상인들의 이야기다. 2011년 공방과 갤러리가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이 골목 상인들은 이곳을 문화·예술 거리로 활성화해야겠다고 생각해 공동체를 만들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자율적인 일이었다. 이른바 ‘방배사이길 예술거리조성회’다. 올해로 4년째를 맞은 이 모임은 회장·총무·홍보·감사·구역장 등 8명의 운영진을 비롯해 골목 안의 상인 30여 명이 모여 운영된다. 1년에 두 번(5, 10월) 방배동사이길 축제를 열고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사이데이(벼룩시장)도 연다. 모든 행사는 이 골목 안에서 진행된다. 올해 방배사이길 예술거리조성회 회장은 이수진 세라워크 대표가 맡았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있어 각자의 재능을 기부하며 손님과 그리고 상인들과 더부살이를 하고 있어요. 에너지가 솟고 정말 새로운 경험이에요. 맞은편 방배동 커피 골목에서 우리 골목이 부럽다고 한다던데요(웃음).”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 공동체 사안도 챙겨야 하니 때론 ‘내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회의가 들 때도 있다.

“그래도 보람돼요. 어떤 큰 결과물을 바라지도 않죠. 함께 잘 살아간다는 게 좋은 거잖아요. 엊그젠 회원이었던 한 분이 다른 동네로 이사 갔는데, (돈)봉투를 주고 간 거 있죠. 운영 기금으로 쓰라고요. 사람 사는 맛이 나지 않아요?”

결국 골목이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옛말이 된 요즘, 골목을 공유하는 개인 창업가들이 힘을 모아 골목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방배사이길은 함지박 사거리에서 서래초등학교 방향으로 7분 걸은 뒤 오른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다.
‘도심 속 오아시스’ 이색 골목길 탐방
‘도심 속 오아시스’ 이색 골목길 탐방
종로구·중구·용산구
▶ 한남동 T자 골목(제일기획 앞 메인 도로 안쪽, 소규모 패션 숍·개인 디자이너 의상, 소품 브랜드숍
▶ 우사단로(이슬람사원 인근 도로, 젊은 예술인들의 거리
▶ 세계음식특화거리(세계 각국의 음식이 맛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 앤티크가구거리(이태원 해밀턴 호텔 맞은편, 고가구 거리. 연 2회 벼룩시장 운영)
▶ 경리단길(외국식 펍, 음식점 등 즐비)
▶ 장진우골목(‘장진우’라는 1인 브랜드를 통해 새롭게 알려진 골목. 장진우 사장이 운영하는 경리단길의 카페, 음식점이 줄을 잇는다.
▶ 해방촌길(다양한 음식점 등이 들어서며 명소로 각광. 연 2회 골목 공연 운영)
▶ 서촌(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 작고 오래된 동네들이 모여 있는 서촌의 소박한 얼굴 뒤로 트렌디한 식당·주점·숍이 골목에 들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
▶ 청파동 만화의 거리(‘달려라 하니’ 등 각종 애니메이션부터 ‘미생’, ‘마음의 소리’ 웹툰 캐릭터를 볼 수 있는 골목)



은평구·마포구·서대문구
▶서강동 예찬길(예술가들의 음악거리)
▶신수동 광성로(공동 쿠폰, 동시 메뉴가 있는 컬래버레이션의 거리)
▶연남동 골목(모던함과 예스러움이 공존)
‘도심 속 오아시스’ 이색 골목길 탐방
강서구·양천구·영등포구·구로구
▶문래동 예술촌(공장과 예술의 동거, 공장들 사이에 있는 철공소 골목에 300여 명의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조성된 예술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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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강남구
▶방배동 사이길(벼룩시장, 축제가 열리는 예술 거리)
▶양재동 연인길(와인 바와 유럽풍 레스토랑이 뻗은 길)
‘도심 속 오아시스’ 이색 골목길 탐방
동대문구·중랑구·성동구·광진구
▶성수동 구두 거리(패션 디자이너, 아트갤러리 등 예술 거리)
‘도심 속 오아시스’ 이색 골목길 탐방
강동구·송파구
▶성내동, 천호3동 강풀만화거리(강동구의 골목골목마다 그의 웹툰을 그려 놓음)
‘도심 속 오아시스’ 이색 골목길 탐방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