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권태신(66) 한국경제연구원장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기업의 힘이 곧 나라의 힘’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원장은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공직 시절 대표적인 ‘국제 금융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행정고시 19회로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거시경제·예산·금융 분야를 두루 거쳤다. 청와대 비서실, 국무총리 실장을 지낸 그는 작년 3월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맡아 민간 싱크탱크의 수장으로 변신했다.
“7% 대기업 노조가 노동시장 왜곡”
기업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공무원 시절부터 늘 같은 주장을 해 왔어요.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는 겁니다. 1983년쯤 이런 생각을 처음 갖게 됐죠. 당시 ‘비료 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국내 비료 기업의 구조조정을 담당했어요. 기업을 매각하려고 미국 관료들과 접촉했는데 그들의 협상 포인트는 딱 한가지였죠. 미국 기업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겁니다. 다른 건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미국·영국·프랑스 등 잘사는 나라와 우리가 다른 점이 많지만 근본을 파고들면 단 하나죠. ‘그 나라에 좋은 기업이 얼마나 있느냐’예요.”


기업 환경이 나빠졌다고 보십니까.
“세계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공신력 있게 평가하는 곳은 두 곳이에요. 세계경제포럼(WEF)과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죠. 2014년 WEF 조사에서 한국의 순위는 19위에서 26위로 떨어졌어요. IMD 조사도 마찬가지죠. 22위에서 26위로 미끄러졌어요. 144개국을 대상으로 한 WEF 조사에서 지난 20여 년간 한국이 20위 밖으로 밀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순위 하락 원인은 하나입니다. 바로 ‘노동’ 부문이에요. 한국 노동자의 효율성은 132위, 유연성은 88위에 불과하거든요. 노동 부문의 경쟁력이 약화된 건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정치의 지나친 개입 때문이에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죠. 돈을 벌어 투자하고 투자 통해 더 큰 돈을 벌어요. 그런데 각종 규제로 투자가 막힌 겁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세계 대기업들은 대부분이 서비스업이죠. 애플은 제조업보다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에 특화된 서비스 기업이에요. 삼성전자는 서비스업에 진출하고 싶어도 규제에 막혀 진출이 불가능해요. 지금 애플과 삼성의 시가총액이 네 배 차이 나는 것도 결국 규제 때문인 거죠. 정치권이 부추기는 반기업 정서도 문제예요. 정치는 ‘표’를 위해 편 가르기를 조장해요. 부를 가진 소수를 공격해 그렇지 않은 다수의 표를 얻는 거죠. 그런 프레임이 계속 되풀이되니 반기업 정서가 점점 커지는 겁니다.”


역대 정부가 모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말’만 그런 거죠. 결과를 보세요. 지난 10년간 한국 기업이 외국에 투자한 금액은 3000억 달러예요. 반대로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1000억 달러에 불과해요. 2013년 외국인은 한국에 150억 달러를 투자했어요. 반면 경제 규모가 4분의 1밖에 안 되는 싱가포르에는 65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말만 많이 했지 제대로 추진된 게 없다는 뜻이죠.”


한국 경제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재도약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미래가 불안해요.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환율 절상 때문이죠. 1990년대 일본이 경험한 장기 침체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어요. 해법은 노동 개혁과 규제 개혁, 정부 개혁, 교육 개혁을 통해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밖에 없어요. 선진국이 되기 위해 또 하나 꼭 필요한 게 ‘신뢰’죠. 정부나 정치권에서 이런저런 핑계로 자꾸 제도를 바꾸고 노선을 수정하면 기업인들이 ‘믿고 일할 수’ 없어요. 투자 위축의 가장 큰 원인이죠.”


서비스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뭡니까.
“한국의 인건비는 중국의 6~7배 수준입니다. 일본과는 아직도 기술 격차가 있어요. 제조업만으로는 정면 승부가 어려운 이유죠.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을 키워야 해요. 서비스업은 의료·교육·관광·컨벤션·소프트웨어·법률·회계 컨설팅 등을 아우르죠. 간단한 예로 한국을 찾는 의료 관광객은 15만 명이에요. 싱가포르는 무려 150만 명에 달하죠. 싱가포르는 과감한 의료 시장 개방으로 이런 성과를 냈어요. 서비스 육성의 또 다른 장점은 일자리 창출이죠. 대형 종합병원 ‘한 층’의 고용 효과만 해도 300여 명에 달하거든요. 의사·간호사는 물론이고 청소원·행정요원까지 다양한 일자리가 생깁니다. 서비스업에 대한 대기업과 외국 기업의 규제를 풀고 이를 통해 투자를 늘려야 경제가 살아납니다.”


노동 부문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죠. 그 이유는 하나예요.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익 보호죠. 한국 임금 근로자 1700만 명 중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은 겨우 7% 남짓에 불과해요. 이들은 연봉 7000만~8000만 원의 고소득 근로자들이에요. 노동계에서 목소리가 큰 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규직 보호를 지나치게 강화해 놓았어요. 기업들은 정규직을 뽑고 싶어도 쉽게 뽑을 수 없어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양극화도 여기에서 파생된 문제죠. 해답은 분명해요. 과거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와 같은 같은 강력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싱크탱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싱크탱크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연구하고 이 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는 곳입니다. 한국 사회도 다양한 갈등에 쌓여 있어요. 한국경제연구원은 여러 갈등 중 ‘시장’에 대한 갈등을 연구하죠.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논리를 만들고 전파하는 ‘보루’죠. 그동안 한국 싱크탱크들은 갈등을 연구하고 논리를 만드는 데까지는 잘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거죠. 싱크탱크가 더 발전하려면 연구의 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구 성과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이를 실제 정책과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해 한국경제연구원 운영에 특별한 계획이 있습니까.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요. 연구원들에게 ‘아무도 모르는 연구’는 가치가 없다고 항상 말합니다.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연구 성과가 언론에서 더 많이 인용되고 정책에 더 많이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해요. 이를 위해 내부 운영 시스템과 인센티브 등을 개편해 왔고 이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겁니다.”


장승규·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