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M&A 스타일에 어긋나… “손 털기 위한 출구전략” 해석도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5.25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1.5.25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투자성향과 가장 비슷한 한국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바로 ‘게임 황제’ 김정주 NXC 대표 겸 넥슨 창업자다. 버핏 회장의 투자법은 일종의 인수·합병(M&A) 방식이다. 저평가된 기업의 지분을 대규모로 사들여 이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며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김정주 대표의 투자법도 이와 비슷하다. 김 대표는 게임회사 넥슨을 창업해 대성공을 거두며 거부가 됐다. 하지만 넥슨이 실제로 개발한 게임은 ‘바람의 나라’,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엔비’ 등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현재 넥슨이 보유한 게임 서비스의 대부분은 M&A를 통해 사들인 것이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4년 8월 기준으로 김 대표의 주식 가치는 1조4720억 원에 달한다. ‘재계의 상속자’가 아닌 ‘자수성가형 부자’로는 한국에서 가장 큰 부를 축적하고 있다. 결국 김 대표는 ‘게임 황제’가 아닌 ‘투자 황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도 ‘은둔의 경영자’로 불릴 정도로 전면에 나서지 않던 김 대표는 2011년 넥슨의 일본 상장 후 더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각종 언론에 다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유는 최근 불거진 엔씨소프트 경영권 분쟁이다. 그는 2012년 엔씨소프트 지분 15.1%를 인수한 최대 주주다. 하지만 엔씨소프트의 경영은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가 전담했다. 그런데 지난 2월 초 김정주 대표가 돌연 지분을 확대하며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1994년 창업한 ‘넥슨’이 성공 기반
앞서 말한 것처럼 김정주 대표의 성공 스토리는 M&A가 알파이자 오메가다. 1994년 김 대표가 창업한 넥슨은 2년 후인 1996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바람의 나라’를 내놓는다. ‘바람의 나라’는 그간 텍스트가 기반이었던 MMORPG를 그래픽 기반의 게임으로 재탄생시키며 선풍적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바람의 나라’가 인기만큼 큰 수익을 낸 것은 아니다. 2년 뒤인 1998년 김택진 대표가 세운 엔씨소프트의 ‘리지니’가 등장하며 인기 역시 한풀 꺾였다.

그 결과 당시 넥슨의 주요 수입원은 게임보다 소프트웨어 개발 용역이었다. 현대차·아시아나항공 등 대기업 홈페이지 제작을 맡았다. 업계에서 김정주 대표가 ‘개발 능력’보다 ‘사업 감각’이 그 누구보다 좋다고 평가 받게 되는 사례 중 하나다.
‘경영권 분쟁’ 김정주의 미스터리 행보
넥슨이 본격적인 게임 회사로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2001년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엔비’가 서비스되면서부터다. 또 3년 뒤인 2004년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가 기세를 이어 갔다. 하지만 이 두 게임은 ‘창의성’이 생명인 게임 회사의 콘텐츠로서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비엔비는 일본 허드슨사의 게임 ‘봄버맨’과 진행 방식과 구조가 거의 비슷해 논란이 됐고 카트라이더는 일본 닌텐도의 마리오카트와 상당 부분 유사한 구성이 지적됐다. 실제로 비엔비는 허드슨사와 게임 출시 후 3년 뒤인 2007년까지 송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게임은 넥슨의 효자 상품이었다. 이 게임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은 넥슨 그리고 김정주 대표가 쓴 M&A 전설을 가능하게 했다. 첫 타자는 2004년 12월 인수한 위젯의 ‘메이플스토리’다. 복잡한 MMORPG를 단순화한 메이플스토리는 지금까지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공부나 운동보다 메이플스토리를 잘하는 게 먼저’랄 정도로 인기가 높은 게임이다.

메이플스토리의 성공을 통해 업그레이드된 넥슨은 이후 왕성한 M&A를 통해 폭주 기관차처럼 빠르게 성장한다. 2005년에는 넥슨모바일의 전신인 엔텔리전트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모바일 게임 업계 3위로 뛰어올랐다. 이후 2006년에는 두빅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다.

2008년에는 네오플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약 3800억 원에 인수한 네오플은 넥슨의 가장 성공적인 M&A로 평가받는다. 당시 인수가가 높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발표한 2013년 네오플의 매출은 4528억 원, 영업이익은 3974억 원으로 영업이익률 91%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이후 김정주 대표는 2009년과 2010년 불과 2년 새 시메트릭스페이스·코퍼슨스·휴먼웍스·EXC게임즈 등 중소형사는 물론 엔도어즈·게임하이 등 대형 게임사까지 7개의 기업을 잇달아 인수했다.


M&A 행보 중 매우 특이한 사례
2011년 말 일본 상장 후에도 M&A는 이어졌다. 금융 투자 업계와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넥슨은 2011년 12월부터 국내외 게임 업체 총 11곳 이상에 대해 인수 및 투자를 단행했다. 넥슨은 2012년 6월 일본 모바일 소셜 게임 개발사 ‘인블루’, 10월 일본의 대형 모바일 게임 개발사 ‘글룹스’의 지분 전량을 사들였다. 북미 지역에서는 2013년 ‘로보토키’, ‘시크릿뉴코’, ‘럼블 엔터테인먼트’, ‘시버 엔터테인먼트’ 등 4개 현지 개발사에 지분 투자했다.

마침내 2012년 말에는 넥슨과 함께 한국 게임계의 ‘쌍두마차’인 엔씨소프트의 지분까지 인수했다. 김택진 대표의 개인 지분 14.7%를 8000억 원에 사들인 것이다.

김정주 대표의 ‘M&A 본능’은 단지 게임을 넘어 다양한 부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5년 게임 부문 넥슨과 투자 전문 지주사 NXC로 기업을 분할한 이유다. 그는 벨기에에 세운 투자회사 NXMH를 통해 2013년 6월 개인들이 레고 블록을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 ‘브릭링크’를 인수했다. 현재 브릭링크 홈페이지를 방문한 누적 방문자는 4억 명이 넘는다. 김정주 대표는 같은 해 12월 NXMH를 통해 노르웨이 유아 용품 업체 스토케를 인수했다. 스토케는 대당 가격이 100만 원이 넘는 ‘명품’ 유모차로 통한다.

회사 차원이 아닌 개인 투자를 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2014년 3월 김정주 대표는 게임 업체 징가의 공동 창업자 마크 핀커스 등과 함께 릿모터스에 100만 달러(약 11억 원)를 투자했다. 릿모터스는 한국계 미국인 다니엘 김이 세운 회사로, 바퀴 두 개짜리 전기차를 개발해 왔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탄탄한 투자 자문사 중 한 곳으로 평가받는 VIP투자자문 역시 그의 투자금이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가치 투자를 표방하는 VIP투자자문은 창업 초기 김정주 대표에게 100억 원을 투자받았다.
‘경영권 분쟁’ 김정주의 미스터리 행보
이런 그의 ‘투자 감각’ 때문에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엔씨소트트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일종의 ‘음모론’까지 떠돌고 있는 중이다. 즉 넥슨이 엔씨소프트의 경영에 참여한다고 공언한 것은 실제로 경영권을 갖기 위해서라기보다 투자한 지분 가치를 올린 후 ‘출구전략’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는 넥슨의 성장세가 2013년부터 둔화됐다는 데서 출발한다. 넥슨에 따르면 넥슨재팬의 연결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011년 876억 엔, 382억 엔, 2012년 1084억 엔, 473억 엔으로 연간 20% 이상 급성장했다. 그러나 2013년 들어 글룹스 인수 효과로 매출액은 1553억 엔으로 43.3% 늘었지만, 영업이익·순이익은 507억 엔, 303억 엔으로 각각 7.3%, 7.6% 증가하는데 그쳐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1~3분기 매출액이 1300억 엔으로 전년 동기보다 7.6% 증가하고 영업이익·순이익은 각각 8.2%, 1.9% 감소해 성장 정체가 뚜렷해졌다. 그 결과 넥슨의 주가도 2012년 상반기 1600엔대까지 올랐다가 2월 3일 기준 1110엔으로 떨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김정주 대표의 투자 스타일은 직접 경영권을 행사하기보다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을 찾아 지원하는 형태”라며 “오랜 친구이자 능력 있는 경영자인 김택진 대표와 각을 세우는 일은 그가 지금까지 해 왔던 M&A 행보 중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경영 참여’를 강조하며 지분 가치를 끌어올리고 여기에 묶였던 자금을 회수한 후 다른 곳에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중국의 게임 개발사들이 한국 개발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만큼 ‘출구전략’ 역시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올해 1월 2일 18만500원(종가 기준)에서 2월 5일 21만3000원까지 크게 뛰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