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 우선하는 6070세대와 차이… ‘애틋한 부정’은 여전

참으로 굴곡진 인생이었다. 1950년대 전쟁기에 태어나 피란 생활을 견디면서도 늘 가족들이 먼저였다. 상당수는 파독 광부, 베트남전쟁, 중동 건설 현장까지 타지 생활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그 어디에서도 ‘설 곳’이 없다. 몸은 가족들 사이에 있어도 어쩐 일인지 소외감은 커져가기만 한다. 6070세대 아버지들의 삶은 이렇듯이 험난하고 거칠기만 했다. 지금이라도 자녀들에게 다가가고 싶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아버지는 ‘자신을 알아 달라’고 고함 치고 자식은 그런 아버지에게 입을 닫아 버린다. 마치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와 그 자식들처럼 말이다.

한경비즈니스가 글로벌리서치와 함께 6070 아버지 200명과 3040 자녀 200명에게 물었다. 6070세대는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또 3040 자녀 세대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세대 차이, 윤리의식 vs 정치의식
조사 결과 3040 자녀 세대는 ‘가정생활의 만족도’에 대해 대체로 행복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44.5%가 ‘대체로 행복하다’고 답했고, ‘매우 행복하다’는 응답도 36.5%에 달했다. ‘그저 그렇다’는 응답은 16%였다. 이와 비교해 6070 아버지 세대는 가정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비교적 낮았다. 전체 응답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그저 그렇다’는 응답이 41.5%에 달했고 ‘대체로 행복하다’는 28%였다. ‘매우 행복하다’는 응답은 10.5%에 그쳤다.

눈에 띄는 것은 아버지 세대의 ‘소득수준’에 따라 가정생활 만족도에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가정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다. 연소득을 기준으로 2000만 원 이하의 응답자는 ‘그저 그렇다’ 47.4%, ‘별로 행복하지 않다’ 17.1%, ‘전혀 행복하지 않다’도 6.1%에 달했다. 이와 비교해 연소득 6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사이의 응답자는 ‘매우 행복하다’ 75%, ‘대체로 행복하다’ 25%였으며 그 외의 대답은 없었다.

실제로 ‘가정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도 경제적 이유가 가장 컸다. 아버지 54.4% 자녀 51.6%가 이렇게 응답했다. 세대를 불문하고 과반수가 가정생활의 가장 큰 조건으로 경제적 요인을 꼽은 셈이다. 두란노아버지학교 이사로 활동 중인 정운섭 변호사는 “6070 아버지 세대는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이들이 적지 않다”며 “그만큼 아버지 세대에서 경제적 능력에 대한 상실감이 크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밖에 아버지 세대는 건강 문제(28.1%), 자녀와의 갈등(5.6%), 아내와의 갈등(5.6%)을 가정생활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로 꼽았다. 자녀 세대는 건강 문제 14.5%, 부모와의 갈등 13.7%로 나타났다.

그러면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위상’은 어떻게 변해 가고 있을까. 가족들 간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 ‘아버지의 영향력’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 세대는 스스로 자신의 영향력을 약하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자녀 세대는 여전히 아버지를 가정 내에서 영향력이 큰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버지 세대는 ‘모르겠다’ 31%, ‘점점 줄어들고 있다’ 27%, ‘아내보다 약하다’ 18%였다. 반면 자녀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응답이 32%로 가장 많았지만 ‘어머니보다 강하다’는 응답도 25%에 달했다.

이남옥 서울부부가족치료연구소장은 “6070 아버지 세대는 어렸을 적 자신이 봤던 권위적인 아버지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며 “가족 내에서 자신의 ‘말발’이 서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이와 비교해 자녀 세대들의 달라진 사고방식으로 보면 여전히 아버지가 권위적인 존재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 간의 ‘세대 차이’를 보여주는 결과인 셈이다.
자녀 33.5% “친근한 아버지 원해”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떨까. 아버지와 자녀 세대 모두 ‘세대 차이를 자주 느낀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아버지 세대는 32.5%, 자녀 세대는 35%가 이렇게 답했다. 특히 아버지 세대는 23.5%가 자녀와 ‘항상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응답했다. 아들 세대에선 이런 응답이 15.5%였다. 아버지와 자녀 간 세대 차이를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이 적지 않이 달랐다. 아버지 세대는 윤리 의식이 다를 때(21.5%), 쓰는 말이 다를 때(15%),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때(13%)순이었다. 이와 비교해 자녀 세대는 정치 의식이 다를 때(21%),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때(17%), 윤리 의식이 다를 때(16.5%)순이었다.

그러면 고민이 있을 때 고민 상담의 대상은 누구일까. 아버지 세대는 56%가 아내를 가장 먼저 꼽았다. 친구는 16.5%였으며 자녀들은 7.5%에 불과했다. 자녀 세대 역시 이성 친구나 배우자가 가장 많았다. 30%에 달했다. 친구는 29.5%였다. 눈여겨볼 것은 그다음이다. 자녀 세대가 고민이 있을 때 어머니를 찾는다는 응답은 20%였지만 아버지를 찾는다는 응답은 6.5%에 불과했다. 아버지와 자녀 모두 서로를 고민 상담의 상대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정서적 거리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과다.


이상적인 아버지, 성실 vs 친근
자녀들에게 ‘최고의 것’만 물려주고 싶은 욕심은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6070 아버지 세대가 한평생 희생하며 살아온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6070 아버지 세대가 자녀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건강을 꼽은 응답자가 35.5%로 가장 많았다. 인생관이 26.5%, 재산이 10.5%로 뒤를 이었다. 반면 3040 아들 세대는 아버지에게 가장 물려받고 싶은 것으로 인생관을 꼽았다. 36%가 이렇게 답했다. 건강(19.5%)과 성격(19.5%)이 뒤를 이었다. 재산은 8%였다.

이 같은 결과는 ‘자녀와 관련한 가장 큰 걱정거리’를 묻는 질문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아버지 세대는 20%가 건강 문제를 꼽았고 결혼 19%, 경제 17.5%순이었다. 아들 세대 역시 이를 모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과 관련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건강이 29.5%로 가장 많았다. 이 밖에 진로 19%, 경제 14.5%, 결혼 14%로 비슷비슷하게 나타났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아버지 세대는 가장으로서 역할이 ‘별로 힘들지 않다’는 응답이 35.5%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힘겹다’는 반응 또한 적지 않았다. ‘어느 정도 힘겨운 편이다’가 22%, ‘많이 힘겹다’도 14.5%에 달했다. 정 변호사는 “6070 아버지 세대는 가족들을 위한 희생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대”라며 “당시에는 자신보다 더 고생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정작 자신은 고생한 편이 아니라고 말하는 아버지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아버지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자녀 세대의 평가 역시 긍정적이었다. 아버지로서 역할에 매우 충실하다는 응답이 59.5%로 가장 많았지만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힘겨워한다는 응답도 20%에 달했다.
자녀 33.5% “친근한 아버지 원해”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자녀 세대가 큰 차이를 보였다. 아버지 세대는 ‘뒷바라지 능력이 부족할 때’를 33.5%로 가장 많이 꼽았다. ‘자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할 때’는 21%, ‘자녀 교육·진로에 영향을 주지 못할 때’가 13.5%였다. 반면 자녀 세대는 ‘자녀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가 28%로 가장 많았다. ‘뒷바라지 능력이 부족할 때’는 12.5%에 그쳤으며 ‘자녀들에게 존중받지 못할 때’가 8.5%로 뒤를 이었다. 이 같은 결과는 6070 아버지 세대와 3040 자녀 세대가 ‘아버지의 역할’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변호사는 “굶어 죽을 만큼의 가난을 경험한 6070 아버지 세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이라며 “이와 비교해 3040 자녀 세대는 적어도 먹고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욕구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차이는 ‘이상적인 아버지상’을 묻는 질문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아버지 세대는 ‘성실한 아버지’를 48.5%로 가장 많이 꼽았다. ‘친근한 아버지’ 21%, ‘존경하는 아버지’ 13%였다. ‘지금의 자신과 이상적인 아버지상이 얼마나 근접한가’를 묻는 질문에는 45%가 보통, 26%가 대체로 비슷하다고 답했다. 매우 근접한다는 의견도 14.5%에 달했다. 반면 자녀 세대는 ‘친근한 아버지’가 33.5%로 가장 많았다. ‘성실한 아버지’ 31.5%, ‘존경하는 아버지’ 29.5%로 뒤를 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상적인 아버지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묻는 질문에는 보통 36%, 대체로 근접 35.5%, 매우 근접 17.5%로 나타났다.


아버지·자녀 모두 ‘가족’이 가장 중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자녀 세대가 모두 ‘가족’을 1순위로 꼽았다. 아버지 세대는 59%가 가족, 22%가 나를 꼽았다. 국가를 꼽은 사람도 11%에 달했다. 자녀 세대는 무려 70.5%가 가족을 꼽았다. 나 22.5%였으며 국가는 3%에 불과했다. 그러나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세대 간의 차이가 분명하다. 이 소장은 “최근 젊은 사람일수록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족 중심주의가 강해지고 있다”며 “다만 아버지와 아들 세대 간 ‘가족에 대한 관념’ 자체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아버지 세대는 가장의 권위가 살아있는 수직적인 가족 관계를 떠올리는 반면 아들 세대는 보다 수평적인 가족 관계를 이상적으로 꼽는다. 이 같은 차이로 아버지 세대와 자녀 세대가 모두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갈등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산상속과 관련해서는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서로 다른 기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 세대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의지가 있는가’란 질문에 36%가 자산이 없다고 답했다. 일부 상속은 25.5%, 전액 상속은 24.5%였다.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을 가능성’에 대해 자녀 세대는 일부 상속이 43%로 가장 많았다. 자산이 없다고 답한 사람은 22%였다. 아버지의 경제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아들 세대가 재산상속에 대해 더 큰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님의 노후 생활에 대해서는 어떨까. ‘노후에 자녀와 함께 살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아버지 세대는 ‘무조건 분가한다’가 43%에 이르렀다. ‘가능하면 분가한다’도 25%에 이르렀다. 특히 연소득 6000만 원 이상은 ‘무조건 분가한다’는 의견이 과반이었다. 노후 생활비 부담에 대한 의견 역시 비슷했다. 아버지 세대는 77%가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고 ‘자녀가 마련해야 한다’ 9%, ‘아들이 마련해야 한다’ 8%였다.

반면 아들 세대는 ‘노후에 부모님과 함께 살 의향이 있는가’란 질문에 ‘가능하면 함께 산다’가 41%에 달했다. ‘배우자의 의견에 따른다’ 19.5%, ‘당연히 함께 산다’도 14.5%였다. 특히 딸보다 아들이 ‘당연히 함께 산다’고 더 많이 응답했다. 아들은 23.1%, 딸은 7.3%가 여기에 해당했다. 부모님의 노후 생활비 부담은 ‘자녀가 해결해야 한다’는 응답이 45.5%로 가장 많았다. ‘부모님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26.5%, ‘정부나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가 15.5%였다. 특히 아들 중 14.3%는 아들이 부모님의 노후 생활비를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오히려 아버지 세대가 독립적인 노후 생활을 더 바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변호사는 “이번 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돈과 같은 물질적 보상이 아니다”며 “오히려 자녀와 말 한마디라도 더 나누길 원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조사 결과는 자녀 세대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확인했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적”이라며 “지금보다 더 많이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