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

“송해 광고, 직원과 딸 모두 말렸죠”
1년 전 IBK기업은행을 떠난 조준희(61) 전 행장이 새삼 화제다. 금융권 ‘아이디어 뱅크’로 통하는 그는 행장 재직 시절(2010년 12월~2013년 12월) 경험담을 정리한 책 ‘송해를 품다’를 들고 다시 모습을 보였다.

“예, 나는 잘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학교와 기업에서 ‘변화의 중심에 서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다니는데, 60회가 넘었어요. 책은 주로 강의 내용을 엮은 것인데, 다 제 경험담이죠. 개혁, 혁신 이런 사례가 많아요.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하루 10~15시간씩 집필에 매달렸어요. 글 쓰는 게 보통 일 아닙디다.”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한결 홀가분해진 듯 들떠 있었다. 그가 말한 대로 책 ‘송해를 품다’는 그가 재임 시절 겪은 생생한 이야기다. 단순 에피소드가 아닌 그 안에서 최고경영자(CEO)의 자질과 역할, 꿈과 희망을 말한다.

무엇보다 관심 끄는 대목은 책 ‘제목’이다. 조 전 행장과 원로 코미디언 겸 MC인 송해(88) 씨와의 깊은 인연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과감하게 실행한 ‘역발상’전략
조 전 행장 재임 시절을 논할 때 ‘송해 광고’는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주변에서는 송해 광고를 두고 그의 ‘대표작’이라고까지 말한다. 실제 IBK기업은행은 송해 광고로 소위 ‘대박’을 쳤지만 광고가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0년 12월 조 전 행장이 취임했을 당시만 해도 IBK기업은행은 이름 때문에 기업들만 거래하는 은행으로 인식됐다. ‘이미지 전환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그는 광고를 직접 만들어 국민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또 고민에 빠졌다. 누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였다.

조 전 행장은 직접 광고 카피를 썼다. 그게 바로 공전의 히트를 친 ‘국민 여러분! 기업은행에 예금하면 기업을 살립니다. 그리고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가 늘어납니다’이다. 그리고 이 카피를 누가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여기서 그의 ‘역발상’이 나온다. 바로 송해 씨를 IBK기업은행 모델로 발탁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부 직원은 물론 광고 회사에 다니는 그의 딸까지 그를 말렸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유였다. 당시 송해 씨와 함께 후보자로 거론된 인물은 배우 최불암·김혜자 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화려하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한평생 서민들의 애환을 온몸으로 표현해 온 이들이라는 점이다.

사실 금융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당대의 톱스타나 유명인들을 광고 모델로 발탁한다. 광고 모델의 인기 부침에 따라 계약을 연장하거나 해지하며 수시로 ‘회사의 얼굴’이 되는 모델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조 전 행장은 끝까지 송해 씨를 고집했다. 그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행장 취임 직후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을 찾다가 송해 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이게 바로 ‘역발상’이죠.”

그는 ‘역발상’을 통해 과감한 실행을 단행했다. 직접 만든 광고 문구에 송해 씨의 따뜻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최대한 어필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11년부터 2014년 말까지 IBK기업은행 광고 제작을 맡아 온 김우중 대홍기획 어카운트솔루션 팀장은 “조 전 행장은 기업과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메시지로 정확하게 만들었고 왜 ‘송해’여야 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했다. 쉽게 나온 송해 광고가 아니다. 물론 처음 광고가 나가고 나서는 비웃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임팩트 있는 광고로 회자되기 시작했고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광고 덕에 은행의 인지도가 올라갔다. 예상 적중이다. 2011년 9월 16%에 불과했던 은행 인지도는 2013년 49%까지 수직 상승했다. 2012년 국회 국정감사에 따르면 시중은행 중 광고 호감도 조사에서도 IBK기업은행이 77.4%로 1위를 차지했다.

광고 후 신규 고객도 늘었다. IBK기업은행 50년 역사상 1년간 순수하게 증가한 신규 고객이 50만 명을 넘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광고 후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신규 고객이 생겨났다. 2012년 대한민국 광고 대상 특별상으로 송해 씨가 대상을 타기도 했다. 같은 해 한국광고학회에서 주관하는 ‘올해의 브랜드상’에서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역발상으로 창조하고 간절함으로 몰입하며 과감한 실행으로 추진한 결실, ‘송해 광고’가 그것을 증명해 준 겁니다.” 조 전 행장의 말이다.

이 광고를 계기로 조 전 행장과 송해 씨는 광고주와 모델의 관계를 뛰어넘어 돈독한 신뢰와 우애를 쌓아 가고 있다. 2011년 부터니 햇수로 5년째다. 이 둘의 살가운 에피소드도 많다. 2013년 IBK기업은행 소속 알토스 배구단의 경기도 화성 홈 경기장에서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이날 경기장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송해 광고, 직원과 딸 모두 말렸죠”
송해 씨가 배구단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불쑥 경기장에 모습을 보인 것이다. 송해 씨는 시합이 끝난 뒤 회식 자리에도 참석해 선수들을 하나하나 격려했다.

송해 씨에 대한 조 전 행장의 애정도 두텁다. IBK기업은행은 송해 씨가 카메오로 출연한 영화 ‘전국노래자랑’ 제작비 중 일정 금액을 지원했다. 송해 씨의 출연 분량은 수분에 불과하지만 그가 30년 가까이 진행을 맡고 있는 프로그램을 주제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IBK기업은행이 협찬을 결정한 것이다.

또 조 전 행장은 송해 씨에게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말을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송해 씨와 저녁 식사를 하며 조 전 행장이 인생 후배로서 은행 경영이나 세상살이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학교 다니며 하는 강의 계속 이어 갈 것”
“한 달에 한 번씩 송해 선생님과 인사동 밥집에서 만나 한잔합니다. 그거 있잖아요, 진로 빨간 딱지. 각자 두 병씩은 기본으로 하죠. 하하하.”

현재 조 전 행장은 퇴임 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마케팅부문 비상임 특별위원, 한국투자금융 지주 및 한국투자증권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1년간 조용했던 그가 갑자기 책을 내며 모습을 보이자 향후 계획을 궁금해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향후 계획이요? 별것 없습니다. 강의를 해 보니 선생님이란 직업의 보람을 알겠더군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학생들이 날 바라보는데, 정말 보람됩니다. 앞으로 이렇게 꾸준히 강의하면서 젊은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젊은 청년들에게 조언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큰 꿈을 갖길 바랍니다.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큰 인물이 돼야 합니다.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대기업만 선호하지 말고 중소기업에 취업해 일을 배우고, 창업에 도전해 정년 없는 인생을 살길 바랍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