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정책으로 기대감 커져, 계·할부 등 국제화 가능성 충분
#1. 스마트폰 뒷면에 신용카드를 가져다 댄다. 스마트폰에 장착된 근거리무선통신(NFC)을 통해 카드 정보를 자동으로 읽은 뒤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본인 인증 끝. 모바일 쇼핑 결제가 간편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공인 인증서를 다운받거나 전화 인증을 거치거나 혹은 스마트폰에 신용카드 정보를 일일이 입력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물론 스마트폰에 카드 정보를 입력할 일이 없으니 보안 문제도 더욱 안전하다. 핀테크 스타트업 한국NFC에서 개발한 ‘NFC간편결제’다.#2. 초보 주식 투자자도 40%의 수익률은 거뜬하다. 주식 투자를 ‘혼자서’ 하는 대신 주식 고수와 ‘같이’ 한다면 말이다. 핀테크 스타트업 두나무에서 개발한 ‘증권플러스’ 애플리케이션(앱)은 주식 투자 고수의 거래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개인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특정 고수’를 구독 신청하기만 하면 그 고수가 어떤 종목을 사거나 팔 때 구독자들에게 자동으로 신호를 준다. 2014년 2월 출시한 ‘증권플러스’ 앱은 벌써부터 투자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1년이 채 안 돼 벌써 25만 명의 회원이 이용 중이다.
핀테크를 그저 ‘정보기술(IT)과 금융의 만남’으로만 이해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김진화 코빗 이사는 “전통적으로 금융에서 IT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인터넷을 통해 금융거래를 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기존과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핀테크”라고 정의했다. 국내 은행과 증권사들마다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이나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이 있지만 국내에 다양한 핀테크 스타트업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존 금융사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다양한 ‘틈새 서비스’를 핀테크 스타트업이 채워줌으로써 보다 더 편리한 금융 서비스의 혁신이 가능한 것이다.
렌딩클럽도 한국선 불법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국내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 중에 정작 금융계 출신이 없다는 겁니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의 현실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의미를 묻자 그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금융계 출신들은 국내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운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쉽사리 덤비지 않는다. 오히려 IT 업계 출신들이나 외부 업계의 출신들이 ‘뭣 모르고(?)’ 핀테크 스타트업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 대표를 비롯해 대부분의 핀테크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은 IT 출신이고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 론칭을 앞두고 있는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치과의사 출신이다.
황 대표는 “사실 해외에서만 하더라도 핀테크 스타트업은 지급 결제, 해외 송금, 자산 관리, 개인 간 대출 등 그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며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손에 꼽을 만큼 그 수가 적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지급 결제 쪽에 치우쳐 있는 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송치형 두나무 대표는 “모바일 쇼핑 이용자들이 많아지면서 까다로운 지급 결제 과정이 큰 걸림돌로 등장했다”며 “그만큼 새로운 개선책에 대한 수요가 많은 분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국내 스타트업 대부분이 지급 결제 분야에 몰려 있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금융 규제 문제다. 대출이나 자산 관리 분야는 규제가 워낙 많기 때문에 그나마 규제를 ‘덜’ 받는 지급 결제 분야가 신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데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내 금융 규제가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지티브 방식은 ‘사업이 가능한 조건’을 명시하고 그 외의 것은 모두 금지하는 규제 방식이다.
황 대표는 “해외에서는 네거티브 방식(금지 사항 외의 모든 것을 허용)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스타트업이 기존 금융 서비스 외의 ‘새로운 분야’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 자체가 원천 봉쇄돼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NFC도 NFC간편결제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10개나 되는 규제를 극복해야 했다.
이는 최근 고군분투 중인 핀테크 스타트업 8퍼센트(8percent)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8퍼센트는 평균 대출금리 연 8%를 목표로 시장에 나온 P2P 대출 중계 서비스다. 미국의 개인 간 대출 중개 서비스 업체인 렌딩클럽을 모델로 하고 있다. 황 대표는 “렌딩클럽만 보더라도 기업공개(IPO) 이후 첫날 주가가 56%나 뛰어오를 만큼 주목 받고 있다”며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서비스를 한다면 ‘유사 수신’이 되기 때문에 불법 업체로 형사 처분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남은 황금 시장’
이 같은 상황에서 핀테크 스타트 업계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 1월 27일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IT·금융 융합 지원 방안’이다. 핵심 내용은 두 가지다. ‘핀테크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와 ‘2000억 원 지원’이다. 무엇보다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이 발표돼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황 대표는 “가장 고무적인 건 정부 관료들부터 핀테크 스타트업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핀테크 스타트업이 금융 당국자는 물론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회사의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만나자고 찾아올 만큼 분위기가 달라졌다.
최근 핀테크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핀테크포럼도 발족됐다. 핀테크 업계 종사자들 간의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된 이 포럼은 벌써 회원만 100여 명을 넘어섰다. 회원 중 절반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다. 비트코인과 관련한 업체가 30%, P2P 대출 10%, 본인 인증 관련 업체가 10%를 차지하는 등 분야도 다양해졌다.
이처럼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핀테크에서 기회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치형 대표는 “스타트업들은 본능적으로 기회가 많은 틈새 사업 분야를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며 “이미 경쟁이 치열한 게임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외에 스타트업들이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황금 시장’이 바로 핀테크”라고 설명했다.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대한 기대감도 높은 편이다. 김진화 이사는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인들이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익숙하다는 점을 큰 경쟁력으로 꼽는다”며 “IT 인프라가 잘 갖춰진데다가 이미 기술력 또한 글로벌 업체와 비교해 뒤처지지 않을 만큼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개인 간 대출 서비스인 렌딩클럽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오래전부터 행해져 오던 ‘계’를 온라인으로 옮긴 것이나 다름없다”며 “영국에서는 ‘신용카드 할부’ 개념을 활용한 핀테크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익숙한 금융 서비스가 해외에서는 생소한 게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해외시장에서 이를 잘 파고들면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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