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벤처는 ‘선택’ 아닌 ‘필수’…해외법인 한국 벤처에 펀드 투자 등 물길 터야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현재 매출 규모 1000억 원대 벤처기업 중 80.5%가 해외에 직접 수출하고 있고 이들 기업의 평균 수출액은 587억 원에 이른다. 그만큼 국내 벤처 업체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외 진출이 ‘선택’ 아닌 ‘필수’라는 얘기다.

국내 스타트업(창업 초기 벤처)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전문가 4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디캠프의 양석원 운영팀장,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케이스타트업(K-startup)의 변광준 아주대 교수와 스파크랩스의 김유진 상무, 국내 최초 비트코인 거래소인 글로벌벤처 코빗의 김진화 이사다. 국내 벤처 생태계는 얼마나 ‘글로벌’해진 것일까.
“서울에 해외 벤처 몰려야 글로벌화 성공”
최근 국내에 ‘글로벌 벤처’들이 많아진 배경은 무엇인가.
김진화 이사(이하 김 이사)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게 된 데는 ‘먹고살아야 하니까’라는 이유가 크다. 한국에서만 스타트업을 하기에는 시장 규모도 작고 새로운 서비스가 자리 잡기 쉬운 시장도 아니다. 스타트업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보다 큰 시장을 꿈꾸며 글로벌 시장을 필수적으로 꿈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석원 팀장(이하 양 팀장) 예를 들어 아이폰은 우리 벤처기업들의 콘텐츠를 해외 사용자들이 사용하기에도 쉽다. 그런데 예전에는 해외 사용자들이 싸이월드를 사용하려고 한다면 언어 장벽, 문화 장벽, 주민등록번호 등 장벽들이 많았다. 해외 유저들이 우리 벤처기업들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환경 자체가 쉬워진 영향이 크다.


이처럼 글로벌 벤처들이 늘어나는 데 정부의 ‘창조 경제’ 역할도 큰 것 같다.
변광준 교수(이하 변 교수) 물론이다. 2013년부터 2년을 돌이켜 봤을 대 정부에서 엔젤협회를 만드는 등 그야말로 자금을 쏟아부었다. 특히 벤처캐피털(VC)은 정책적으로 스타트업 펀드에 투자하도록 돼 있다. 이런 정책 드라이브가 없었다면 스타트업에 지금처럼 투자가 이뤄지고 벤처 붐이 일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양 팀장 특히 창조 경제를 통해 정부의 지원이 늘어나면서 국내 스타트업들을 데리고 해외에 나가 행사를 마련하는 곳이 많지 않다. 정부도 정책 광고를 해야 하니까 미디어를 동원하게 되고 그러면 떠들썩한 분위기에 해외 투자자들도 한 번씩 관심을 갖게 될 때도 많다. 얼마 전에는 중국의 화웨이에서 디캠프를 다녀갔다. 창조 경제를 계기로 디캠프가 들썩들썩하니까 화웨이에서도 국내 벤처 생태계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해외 투자자들의 국내 벤처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많이 늘고 있나.
변 교수 아직까지도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에게 한국은 굉장히 먼 시장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계 투자 자본이 많이 들어오는 분위기다.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것은 아직 매우 드문 일이다.

김유진 상무(이하 김 상무)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이제 더 이상 실리콘밸리에서만 기업을 찾지 않는다. 중국이나 이스라엘 등 전 세계의 벤처 업계로 눈을 돌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업체들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옆에 있는 한국이란 나라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측면이 강하다.

김 이사 우리 회사에 투자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한국이 ‘디지털 리터러시’가 매우 높은 나라라고 말한다. 싸이월드라든지 도토리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매우 익숙하고 또 능하다. 한국은 중국이란 큰 배후 시장을 둔 만큼 아시아 벤처 생태계의 거점으로 커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국내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이들 중에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 익숙한 이들도 많지 않나.
김 상무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생활하며 영어와 같은 언어도 익숙하고 그들의 문화도 잘 아는 친구들이 정말 많다. 이들이 실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해외의 투자자나 파트너들과 e메일이나 화상 채팅을 통해 회의를 진행하고 협업을 추진하는 등 한국에 앉아 있지만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은 상당히 글로벌화돼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벤처 업계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만은 분명하다.

김 이사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만큼이나 해외의 인재들이 국내 벤처 생태계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한 글로벌화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코빗에도 외국 국적의 개발자들이 적지 않고 지금도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비자 문제나 여러 가지 규제가 많아 아직은 외국 친구들이 한국에서 벤처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자면 단순히 외국인 직원들뿐만 아니라 해외의 우수한 인력들이 국내에 벤처기업을 직접 창업하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현재 인도 다음으로 정보기술(IT) 개발자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 곳이다. 이곳의 유능한 친구들이 한국에서 벤처를 만들어 성공하는 걸 꿈꾸게 된다면 그야말로 국내 벤처 생태계의 글로벌화가 이뤄진 게 아닐까 싶다.


국내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활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변 교수 글로벌 벤처라는 게 뭔지 한 번 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부도 현재 벤처기업들에 해외에 나가라고 많이 지원해 주고 있고 국내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법인을 설립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면 국내에서 자금을 투자받을 수 있는 경로가 반으로 줄어든다. 국내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VC들로부터 초기 투자 펀드를 받기가 어려워지고 그야말로 미국 회사로서 미국에서 투자자들을 상대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해외 진출하라고 해 보내 놓고 그냥 ‘알아서 살아 남아라’고 내팽개쳐 버리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 법인을 설립한 국내 벤처기업들에 국내 자본금이 투자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이사 미국은 정부가 주도하지는 않지만 개인들이 투자해 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선순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에 비해 이런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에게 세금 혜택 등이 적다고 들었다. 세제 혜택이든 뭐든 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사회·정리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