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해운업 침체로 업황 부진 이어져…FLNG 선박 세계 최초 건조 등 기술 경쟁력은 여전히 우위

한국은 국가 경제의 대부분을 대외무역, 특히 수출에 의존하는 수출 주도형 국가다. 국민총소득(GNI)을 전체 무역액으로 나눈 ‘무역의존도’는 이미 100%(2013년 기준 103%)를 넘어섰다. 수출이 국가 경제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뜻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을 택한 이후 한국 수출의 일등 공신은 조선 산업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가깝게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한국 조선은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주며 비틀거리고 있다. 최악의 부진을 기록했던 2014년의 악몽을 넘어 올해는 턴어라운드할 수 있을까.
세계 1등 저력…‘고부가가치’ 기술로 지킨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인구 규모는 2000만 명대에 불과했다.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을 논하기에는 국가 전체의 경제 규모가 너무 작았다. 우리 경제가 수출과 무역에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다. 그 사이 1960년 32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대외 수출액은 2014년 현재 5731억 달러에 이르게 됐고 무역 흑자만 474억 달러를 기록할 정도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국가 주도의 수출 주도형 시스템은 전략 산업 육성을 통해 이뤄졌다. 조선·반도체·자동차·전기전자·철강·반도체 같은 오늘날 한국의 주력 산업은 거의 대부분이 조세 감면, 독점 체제, 막대한 재정 지원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성장했다. 1970년대 들어 채택된 중화학공업 육성 전략은 당시 세계적인 고도성장과 맞물려 한국 경제의 고도화를 이룩하는 결정적 배경이 됐다. 이러한 중화학공업 발전의 핵심이 바로 조선 산업이었다.

1960년대가 조선 산업 발전의 기반을 닦은 시기였다면 1970년대부터 한국의 조선 산업은 비로소 후진성을 탈피하며 국제적인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 1973년에 완공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필두로 1975년엔 현대미포조선이, 1978년에는 대한조선공사(이후 대우그룹에 매각)의 옥포 제1도크가 완공됐다. 1977년에는 삼성그룹이 우진조선소를 인수해 2년 후인 1979년 1도크를 완공했다. 특히 1973년에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26만 톤급의 초대형 유조선(VLCC)은 우리 조선 산업이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신호탄으로 기록되고 있다.

1976년만 해도 조선 산업의 매출액과 부가가치가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육성 정책과 기업의 혁신을 발판으로 1985년 들어선 매출 3조3000억 원, 부가가치 1조3000억 원으로 전체 제조업 비중 가운데 4%를 차지할 정도가 됐다. 매년 30% 이상의 고속 성장을 유지했던 결과다. 1980년대 들어 오일쇼크 등으로 잠시 주춤했던 국제 조선 경기는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다시 한 번 호황을 맞았다. 당시 한국은 1990년에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선전문위원회(WP6)에 가입하며 새로운 조선 강국으로 떠오른 상태였다. 1993년에는 엔화 강세 등의 영향으로 비로소 일본을 제치며 사상 최대 수주 실적을 올렸다. 수주량 기준으로 세계시장 점유율이 36.7%를 기록했는데, 당시 일본의 수주량은 33.3%에 그쳤다.


산업 육성 20년 만에 세계 1위
조선 산업이 수출의 일등 공신으로 떠오르면서 전체 수출에 대한 조선 산업의 영향력도 갈수록 높아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선 산업의 수출 기여도(총수출액을 선박 수출액으로 나눈 값)는 2009년 12.4%에 달했고 2010~2011년에도 10%대를 유지했다.

조선업은 고용 부문에서도 효자 산업이다. 한국은행의 취업유발계수를 보면 조선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12.0이다. 선박 10억 원어치가 팔리면 12명의 새 일자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조선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다른 주력 산업인 반도체(4.3)의 28배, 석유제품(1.3)의 9배에 달한다. 수출의 본령인 외화벌이 면에서도 조선업의 위상이 나타난다. 전체 매출액의 95% 정도가 수출에서 발생하는데, 부품의 국산화율이 91.2%에 달해 외화가득률이 가장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비슷한 수출 주력 산업인 자동차의 부품 국산화율은 91.2%로 조선업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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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 자체에 대한 찬반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조선 산업은 대·중소기업 동반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가 큰 산업으로도 꼽힌다. 한 개의 대기업에 1000여 개의 중소업체가 협력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데, 실제로 수주 대금의 60~70%가 중소 협력 업체에 돌아가고 있다.

국가 주도의 전략적 육성 이후 20여 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라섰고 한국 수출의 젖줄이었던 조선 산업에 위기의 징후가 닥쳐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특히 중국의 기세가 무서운데, 중국은 이미 2010년부터 건조량에서 한국을 따돌리며 세계 1위에 올라섰고 2012~2013년에는 건조량·수주량·수주잔량 등 3대 지표에서 모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조선·해운 조사 전문 기관인 클락슨의 통계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건조 능력은 1600만 CGT(표준 화물선 환산톤)로 세계시장의 29.5%를 차지한데 비해 중국은 무려 39.4%에 달한다. 일본이 16.8%, 유럽이 6.6%로 뒤를 잇는다.


2010년부터 중국과 엎치락뒤치락
세계시장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면서 현실로 다가온 조선 산업의 위기는 2012년 들어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났다. 2011년까지 10%대를 유지했던 조선 산업의 국내 수출 기여도가 7.2%로 떨어진 것. 반도체와 1, 2위를 다퉜던 수출 순위도 2012년 들어 석유제품·반도체·일반 기계 등에 밀리며 6위로 떨어졌다. 2013년 기준으로 건조량 부문 세계 1위였던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 원이 넘는 사상 최악의 영업 적자를 기록하며 벼랑 끝에 몰린 실정이다.

사실 조선업의 불황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조선 산업은 해운업의 경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경기가 꺾이면서 줄어든 물동량은 해운업의 위축을 가져왔고 세계적 해운 선사들이 신규 조선 발주량을 줄이면서 그 타격을 고스란히 받는 식이다. 대표적인 해운 업황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는 2008년 5월 20일 1만1793을 정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해 2012년 2월 3일에는 647로 역사적인 저점을 찍었다. BDI는 1월 현재도 750대에 머물러 있다.

해운업이 침체에 빠지자 선박 발주량도 크게 줄었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2003~2007년 사이에 연평균 5877만 CGT에 달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3945만 CGT로 급락했다. 또 금융 위기 이전에는 매년 발주량이 건조량을 초과했지만 이후로는 발주량이 건조량에 미치지 못하면서 수주잔량(발주 후 선주에게 인도되기 직전까지의 선박의 양)도 줄어드는 추세다.

작년에도 조선업의 침체는 이어졌다. 2014년 11월 기준으로 전 세계 누적 신조선 수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31% 감소한 3587만 CGT에 그쳤다. 선박 건조량도 감소 추세를 이어 가면서 전년 동기 대비 8.7% 줄어든 3245만 CGT를 기록했다. 2014년 12월 초를 기준으로 한 수주잔량도 연초 대비 2.9% 줄어든 1억1364만 CGT로 집계됐다. 수주잔량은 금융 위기 이후 2013년 들어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2014년에 다시 감소하면서 상승 추세를 이어 가는 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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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선전한 지표는 신조선가지수(새로 지은 배의 가격으로, 1998년 신조선가를 100으로 봄)다. 2014년 11월 현재 신조선가지수는 139를 기록해 2013년 말에 비해 5.3% 상승했다. 시장을 이끈 건 액화석유가스(LPG)·액화천연가스(LNG) 같은 가스선이다. LPG선은 미국의 셰일 혁명과 타이트 오일 개발로 석유제품 생산이 늘면서 발주가 증가했다. LNG선은 해상 운임이 하향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야말 프로젝트(러시아·프랑스·중국 등이 2000억 달러를 투자해 시베리아 야말반도에서 천연가스를 채취하는 사업) 같은 대형 사업 연계 수요와 셰일가스 수출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 수요로 발주량이 많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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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LNG선이 그나마 선방
세계적인 업황 불황이 이어진 가운데 국내 조선업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국내 기업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인 해양 플랜트와 상선 시장이 동반 침체를 겪으며 수주량이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2014년 11월까지의 수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35.6% 감소한 1020만 CGT에 그쳤다. 금융 위기 전인 2007년 3000만 CGT를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2014년 11월 현재 수주액도 전년 동기 대비 34.5% 감소한 269억5000만 달러에 머물렀다.

선박 종류별로 살펴보면 가스선과 오일탱크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종의 수주가 크게 떨어졌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인 드릴십과 FPSO(부유식 석유 생산·저장 기지)는 단 1척만 수주하는 등 해양 플랜트 선박의 부진이 극심했다. 중국에 비해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및 고액 수주 전략을 펴왔던 우리 조선 업계에는 그야말로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연료비를 아낄 수 있는 에코십(친환경 선박) 발주가 세계적으로 줄어든 것도 한국 조선 업계에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선사로선 굳이 비싼 돈을 들여 기름값을 아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선박 건조량 역시 감소 추세다. 2014년 11월까지 건조량은 전년 동기 대비 6.3% 감소한 1113만 CGT로 집계됐다. 2012년 이후 이어진 감소 추세가 한풀 꺾였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수주잔량도 2013년의 증가세를 이어 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초 기준 수준잔량은 연초 대비 7% 감소한 3243만 CGT를 기록했다. 건조량은 6% 감소한데 비해 수주량은 35% 이상 감소한 것이 수주잔량이 줄어든 이유다.


초대형 유조선 등 기술 우위 전략 펼쳐야
올해 전망도 밝지는 않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15년 조선·해운 전망’을 통해 올해 수주량이 작년 대비 12% 감소한 950만 CGT, 수주액도 약 14% 줄어든 250억 달러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에코십, 해양 플랜트 등 국내 조선사가 강점을 지닌 선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건조량은 2013년 다량 수주의 영향으로 작년 대비 1.7% 증가한 1230만 CGT 수준으로 전망된다. 신규 수준 부진으로 수주잔량은 작년 말 대비 8.7% 감소할 전망이다.

전체적인 업황 부진 속에서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전망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VLCC(초대형 유조선), FLNG(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설비) 등의 전망이 비교적 밝다는 데 있다. 한국 조선 산업은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몇몇 대표 선종들의 활약으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초반까지는 해양 플랜트가 그랬고 2013년에는 MR탱커 등의 제품 운반선, 이후 초대형 상선의 세대교체를 가져 왔던 에코십, 2014년의 LNG선 등이 주인공들이었다.
세계 1등 저력…‘고부가가치’ 기술로 지킨다
FSRU는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설비’를 말한다. 바다에서 시추한 천연가스를 바다 위에 떠 있는 FSRU에서 영하 136도로 냉각해 저장했다가 다시 이를 기체로 바꿔 LNG선에 옮겨 싣는 배다. FLNG는 여기에 더해 직접 가스 채굴까지 가능한 배를 말한다. FLNG는 기존 LNG 설비에 비해 생산 단가를 30% 정도 절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점 덕분에 세계시장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강동진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발주만 된다면 우리 조선 기업이 독식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FLNG는 보통 한 건의 수주액이 3조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운송용 컨테이너선 수십 대와 맞먹는 가격이다.

삼성중공업은 2011년 영국의 에너지 기업인 로열더치쉘(Shell)로부터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FLNG 선박인 ‘프릴루드호’ 수주를 받았다. 2013년 11월 성공적으로 진수를 마친 프릴루드호는 현재 거제조선소 안벽에 정박해 상부 플랜트 모듈과 선체 내부 LNG 화물창 제작 등의 공정을 진행 중이다. 프릴루드호는 길이 488m, 폭 74m, 높이 110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으로, 화물을 가득 채우면 배수량이 60만 톤에 달한다. 항공모함 6척에 해당하는 무게다.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